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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오미크론' 변이 확산

[워싱턴 인사이트] 오미크론 환자 '가벼운 증세' 의미는?…남아공 의사 안젤리크 쿠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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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첫 오미크론 확진…백악관 브리핑실에 등장한 파우치



오늘(2일) 미국에서도 오미크론 첫 확진자가 공식 발표됐습니다. 11월 22일 남아공에서 입국한 캘리포니아 주민인데, 11월 29일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 중이라고 합니다. 오래간만에 파우치 백악관 수석의료 보좌관이 브리핑실에 직접 나와 발표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것이지만, 막상 오미크론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니 브리핑의 긴장도는 확연하게 높았습니다. 재작년 초반,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코로나 브리핑을 하던 파우치 박사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는데, 안 깨는 꿈을 꾸는 거 같아서 더 끔찍했습니다. 이미 지난 주 입국한 사람이 이제 보고되는 걸 보면, 앞으로 미국에서도 다른 오미크론 감염자가 쏟아질 거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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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행 제한 조치도 보다 강화될 예정입니다. 기존에는 백신을 맞은 사람은 출국 사흘 전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 됐지만, 앞으로 하루 전 검사로 당겨지고, 입국 후에도 검사를 또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근데 일단 발표는 했지만 앞으로 실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됩니다. 우리나라처럼 행정력이 세세히 미치는 게 어려운 미국에서 입국 후 코로나 검사를 전부 받아서 누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일부 시골 보안관들은 얼마 전까지도 주지사의 마스크 의무화 조치 단속도 안한다고 드러눕기도 했었습니다. 일단 발표는 됐지만, 미국도 앞으로 한동안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오미크론 변이에 대응하기 위해 방역 조치를 강화한다는 방침은 보건 전문가들에게 큰 환영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해야 할 기본 방역 조치를 하지 않아서 지금도 하루 코로나 감염자가 7, 8만 명씩 나오는 상황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 기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6천만 명 넘는 사람들이 한 번도 백신을 맞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변이 바이러스가 공격할 수 있는 가장 큰 표적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파우치 박사는 오늘도 이들의 백신 접종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사실상 이들에게 백신 접종을 하는 건 불가능해보입니다. 부스터 샷을 접종하면 면역 수준이 높아져서 오미크론에도 잘 대항할 수 있을 거라고 파우치 박사는 설득했지만, 한 번도 안 맞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부스터 샷은 갈 길이 더 멀어 보입니다. 미국에서 백신은 문화 전쟁의 대상이 돼버려서 과학적인 설명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상태입니다.

오미크론 확진자 없는데 왜 입국금지?…파우치 당황케 한 질문



오늘 백악관 브리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은 아프리카 국가 출신으로 추정되는 한 흑인 기자가 미국이 왜 짐바브웨, 나미비아, 모잠비크처럼 오미크론 확진자가 없는 국가들을 입국 금지 국가로 정했냐고 물어봤던 것입니다. 미국이 정한 남아공 등 8개국 입국 금지 국가 대상은 국제 표준처럼 정해져서 우리나라도 그대로 채택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들 국가에서 오미크론 확진자가 아직 공식적으로 없다는 얘기인데, 파우치 박사는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받으면서,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 조치이니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입국 금지를 해제하기를 희망한다고 얼버무리듯 답변했습니다.

이들 국가는 오미크론을 가장 먼저 발견해 국제 사회에 알린 남아공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싸잡아서 매를 맞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열악한 진단 검사 인프라를 감안하면 이미 오미크론이 만연했을 거라는 추정밖에 없습니다. 이런 추정도 적어도 '과학'에 근거한 것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이들 국가의 수괴(?)급인 남아공은 입장을 바꿔보면 상을 받아도 모자란 상황에 왜 이런 수모를 당하나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괜히 오미크론을 밝혀냈다가 주변 국가들까지 싸잡아 매타작을 당했으니 더 민망한 상황입니다. 코로나 초기, 정보 은폐와 비협조로 일관했던 중국의 편한 전철을 밟았다면 이런 모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미 네덜란드에서 남아공 발생하기 이전에 오미크론 검체가 나왔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이래저래 아프리카 국가들은 억울한 게 많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남아공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열정은 역사로 기록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남아공 코로나 브리핑을 일부 찾아봤는데, 사실 굉장히 수준이 높았습니다. 등장하는 감염병 학자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가들이었고, 오히려 미국의 코로나 브리핑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미국 코로나 브리핑은 비전문가들인 기자들이 대상으로 하는 게 명확해 대중의 언어를 많이 구사하는 편입니다.) 남아공은 HIV 관련한 연구자들이 워낙 많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수준의 학자와 연구소들이 있다고 합니다. 파우치 박사도 남아공 감염병 전문가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오미크론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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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변이 감염자와 완전히 달랐다"…쿠체 박사가 변이 직감했던 이유는?



오미크론이 변이로 이름을 얻게 되는 데는 남아공의 안젤리크 쿠체 박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남아공 의사협회장이면서 개업의사이기도 한 쿠체 박사는 BBC나 텔레그래프 같은 언론과 오미크론 환자들의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인터뷰한 게 대서특필된 바 있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대답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 근거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임상적인 근거에 기초한 대답이겠지만, 워낙 괴물 변이라고 과학자들이 긴장하고 있는 오미크론이 어떤 작용을 하는 건지 실제 눈으로 본 사람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했습니다. 연락처를 뒤져 이메일도 보내 답을 받고, 섭외를 위해 직접 통화까지 했는데, 환자를 돌보는 시간을 쪼개서 인터뷰 시간을 마련해줘서 고마웠습니다. 화상 통화로 잡힌 시간이 워싱턴 시간으로는 새벽이었지만, 오미크론을 처음 발견한 의사의 말을 직접 듣는 흥분감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언어만 통하면 국경이라는 게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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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체 박사가 설명하는 오미크론 감염환자의 주요 증세는 극도의 피로감과 몸살, 목이 따끔거리는 느낌 등이었습니다. 남아공은 델타 변이가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우세종인데, 이런 증세의 환자는 기존에는 못 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델타는 위력이 대단해서 미각, 후각을 잃어버리고, 결국 산소 호흡기를 착용해야 되는 환자들이 속출하는데 그런 강렬한 델타에 비하면 '증세가 가볍다'(mild symptoms)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확진은 됐는데, 증세가 가벼우니 쿠체 박사는 자신이 뭔가 놓치는 게 있는 건 아닐지 매우 불안했다고 합니다. 의료 정보를 같이 논의하는 의사 그룹이 있는데 비슷한 증세의 환자를 받은 의사들이 있었고, 이건 아무래도 유전자 검사를 해보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쿠체 박사는 남아공 백신자문 위원이기도 했기 때문에 정부에 의견을 내는 게 쉬운 편이었던 듯합니다. 그렇게 검사를 의뢰한 시점이 지난 달 18일입니다. 그래서 델타와는 완전히 다른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가 이름을 얻고 가면을 벗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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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쿠체 박사는 증세가 가볍다는 부분만 대서특필된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불편해했습니다. 물론 쿠체 박사가 돌본 환자들의 증세가 가벼웠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말한 취지는 오미크론의 증세가 이렇게 가벼울 수도 있으니, 이걸 무시하지 말고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보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근데 인터뷰를 했더니 외신들도 증세가 가볍다는 말에 그냥 꽂혀서 뒤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기억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외신들도 하도 그렇게 많이 써서 그런지 "가벼운 증세라고 해서 바이러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게 아니다"고 힘줘서 강조했습니다. 증세를 무시하지 말라는 설명을 이렇게 길게 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픈 사람 더 많이 나올 것…백신 접종자들이 덜 아프고 회복 빨라"



오미크론 확산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직 육지에 상륙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비바람을 몰고 바다에 떠서 북상하는 태풍 같은 존재입니다.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봤더니 쿠체 박사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앞으로 아픈 사람이 더 많이 나오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자신이 돌본 환자들은 40세 미만의 젊은 환자들이 대부분인데, 곧 지역 사회 전파를 통해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층의 감염이 확산할 것이고 그러면 지금보다 더 큰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같이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만 나오기를 희망하지만, 앞으로 1, 2주 뒤에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고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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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에 기존 코로나 백신이 효과가 있는 거냐는 문제는 과학적인 데이터가 나오는데 앞으로 몇 주 시간이 더 걸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자신의 환자들을 봤을 때는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덜 아프고, 회복도 빨랐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런 의사의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현장의 '촉'은 나중에 데이터를 모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자들도 거대 담론을 취재할 때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더 데이터가 취합돼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위안 삼을 수 있었던 발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미크론은 백신 불평등이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쿠체 박사는 HIV 감염 등으로 면역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백신을 맞지 않고 코로나에 감염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변이 압박이 더 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백신 접종이 필요한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에 조언해줄 게 있냐고 물어봤더니 쿠체 박사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강조했습니다. 마스크 쓰고, 거리두기 하고, 백신 접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라는 당부를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2년 넘게 코로나와 함께 살면서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수능 정답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걸 어느 수준으로 어떻게 지키느냐는 너무나 어렵고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오미크론의 정체는 앞으로 몇 주 안에 규명될 것으로 전망 됩니다. 이 정체불명의 변이가 어렵게 경제 활동을 시작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의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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