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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패션 시장 흔드는 ‘이상한 컬래버’…NFL·코닥·예일대까지 MZ세대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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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F가 최근 증권가에서 계속 회자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줄줄이 목표주가를 높여 잡으면서다. 그도 그럴 것이 F&F는 지난해 4분기부터 실적이 뚜렷한 우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주역은 미국 프로야구 브랜드인 ‘MLB’와 다큐 채널 ‘디스커버리’다. 이들 브랜드는 각자 특정 분야에서 인지도가 있기는 했다. 이를 F&F가 패션 브랜드로 소화하면서 국내는 물론 미국 본사도 놀라고 있다는 후문이다. KB증권에 따르면 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보이고 있는 F&F는 올해 3분기에만 MLB한국 순 내수 매출만 500억원, 면세 매출액 675억원으로 모두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 내년 실적은 더욱 기대된다. KB증권은 2022년 추정 연결 기준 매출액 1조8632억원, 영업이익 5088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9%, 31%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 미국 명문대 중 하나인 예일대.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입학을 원하는 이들이 꽤 많다. 이전에는 예일대 재학생은 물론 진학 준비생 사이에서 이 대학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거나 굿즈를 구매하는 이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 꼭 예일대 진학을 희망하지 않더라도 ‘패션’ 브랜드 중 하나로 인식하고 즐기는 국내 소비자가 급증했다. 지난해 워즈코퍼레이션이라는 신생 회사가 ‘예일’ 브랜드로 무신사에 첫선을 보였는데 단숨에 베스트 브랜드 순위 19위에 올라 업계를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무신사 내에서 베스트 5 안에 오르내리며 인기가 한층 높아졌다. 노지윤 워즈코퍼레이션 대표는 “예일대라는 고급 이미지를 빈티지 스포츠웨어로 풀었는데 MZ세대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들은 대학 로고라고 생각하지 않고 패션 브랜드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비(非)패션 라이선스 브랜드가 국내 패션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라이선스 브랜드 사업이란 해외 유명 로고나 브랜드 보유 업체를 찾아가 국내(혹은 아시아 시장) 사업권을 확보, 패션 등 다양한 유통 사업을 전개하는 경영 방식을 뜻한다. 브랜드 보유 업체에 일정 기간 동안 사용 금액을 한 번에 내거나 러닝 로열티(매출액에 따라 일정 비율 사용권 비용을 냄)를 선택하는 식으로 계약 조건은 다양하다. 이렇게 브랜드를 확보한 국내 업체는 스트리트 패션, 캐주얼, 힙합 등 다양한 패션 디자인을 가미해 국내외 시장에 내놓는데 의외로 호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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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선스 사업 효시는

▷1997년 들여온 MLB가 대성공

애초 국내 패션 시장은 한국 사업권을 확보한 해외 유명 브랜드 업체의 독무대였다. 지방시, 휠라, 닥스 등 해외 유명 브랜드 대부분이 여기에 속했다. 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색다른 시도가 나타났다. ‘비패션 라이선스 브랜드’가 그것이다.

업계는 1997년 F&F가 미국 프로야구 MLB와 계약한 것을 브랜드 사업의 효시로 본다. 당시 ‘코리아 특급’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에서 맹활약하며 MLB 이미지가 좋아졌다는 점이 고려됐다. F&F는 특히 당시 젊은 세대가 미국 프로야구에 열광한다는 점에 착안, 야구 스포츠의 감성을 스포츠 패션으로 접목해 큰 성공을 거뒀다.

MLB로 라이선스 사업에 눈을 뜬 F&F는 2012년 디스커버리를 들여오면서 아웃도어 라이선스 업계에서 또 한번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전까지 아웃도어 하면 ‘어른들의 취미’로 여겨졌지만 디스커버리가 나오면서 MZ세대도 즐기는 아웃도어로 ‘업의 재정의’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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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더네이쳐홀딩스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더네이쳐홀딩스는 주력 브랜드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을 선보인 후 23분기 연속 성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아웃도어 스타일이지만 꼭 등산용 제품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야외 활동을 할 수 있게 기획했고 여기에 더해 스트리트 패션 감성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차별화했다. MZ세대들이 자주 찾는 무신사에 신제품을 선보이며 지난해 무신사에서만 약 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라이선스 브랜드가 속속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코닥, 폴라로이드, CNN 등 후발 주자도 빠른 시일 내에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이미 다른 분야에서 유명한 브랜드를 일종의 IP(지식재산권)로 보고 이를 패션 시장에서 재해석하는 접근 방법이 MZ세대 사이에서는 ‘신선하다’ ‘재밌다’라고 읽힌다. 남들과 다른 브랜드를 입고 과시하고픈 MZ세대 성향을 잘 읽은 업체 중심으로 성장세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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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네이쳐홀딩스가 운영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자연 다큐멘터리 방송사 브랜드의 특징을 잘 살려 호평을 받았다. (더네이쳐홀딩스 제공)


▶라이선스 각광 이유는

▷비용 절약에 틈새 공략 성공

최근 들어 특히 라이선스 브랜드가 각광받는 이유는 크게 ‘비용 절감’ ‘틈새 공략’ ‘플랫폼 등장’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비용 절감 효과가 굉장하다.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만들면 초기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다. 광고와 프로모션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대중에게 인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라이선스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마케팅비를 절감할 수 있다. 대중이 이미 브랜드를 잘 알고 있어서다.

또 한국 패션 시장의 ‘틈새 공략’에 성공한 점이 유효했다. 아웃도어, SPA 브랜드 열풍이 지나간 후 한국 패션 시장에서는 ‘유행’으로 부를 만한 브랜드가 등장하지 않았다.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던 차에 라이선스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인기가 급속도로 커졌다. ‘코닥’ 브랜드를 운영하는 하이라이트브랜즈의 이준권 대표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의류 업계에서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동시에 품질까지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가 많이 사라졌다. 가성비 좋은 SPA 브랜드들도 이렇다 할 디자인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뒤처진 게 사실이다. 이때 생겨난 빈틈을 디자인·기술 경쟁력을 갖춘 라이선스 브랜드가 메꾸면서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무신사’ ‘지그재그’ ‘하이버’ 등 온라인 패션 플랫폼의 등장도 라이선스 브랜드의 성장세에 날개를 달아줬다. 오프라인 매장을 낼 필요 없이 온라인 쇼핑몰로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패션 산업 진출 문턱이 낮아졌다. 한 패션 업계 관계자는 “라이선스 브랜드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을 살펴보면 ‘무신사’의 역할이 컸다. MZ세대 소비자를 모아주는 패션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라이선스 브랜드가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실제로 성공한 라이선스 브랜드의 특징을 살펴보면 ‘합리적인 가격’과 ‘무신사 판매량이 높다’는 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한국 섬유 패션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간호섭 홍익대 미술대 교수는 “생산 분야에서 영원무역, 한세실업, 세아상역 같은 글로벌 ODM 회사가 포진해 있고 삼성패션, LF, 코오롱, 대명화학 등 매출 1조원이 넘는 패션 기업들의 유통 역량이 이미 쌓여 있는 데다가 ‘동대문’으로 대변되는 ‘패스트 패션’ 생태계까지 구축돼 있기 때문에 기획력이 강한 패션 업체나 스타트업이 라이선스 사업으로 빠른 시간 내에 성장할 수 있는 근간이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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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는 MLB에 이어 디스커버리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전개하며 ‘패션 강자’로 떠올랐다(위). 하이라이트브랜즈의 ‘코닥어패럴’은 필름 카메라가 가진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아래). (F&F, 하이라이트브랜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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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선스 사업 꼭 황금알은 아냐

▷무분별 도입은 역효과 ‘스토리’ 갖춰야

‘대박’을 터뜨리는 라이선스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지만 모든 브랜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LF가 도입했다 실패한 ‘토니노람보르기니’ 같은 사례도 적잖다. 패션 업계 전문가들은 라이선스 브랜드 성공을 위해서는 ‘스토리’ ‘현지화’ ‘품질’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브랜드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디자인 상표권만 가져오면 소비자 관심이 급격히 떨어진다. 소비자가 계속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를 갖춘 브랜드를 가져오거나, 아니면 스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더네이쳐홀딩스 관계자는 “MZ세대를 비롯한 소비자들은 ‘라이선스 브랜드’를 자신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창구로 사용한다. 이들은 브랜드가 가진 감성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를 원한다. 디자인 외에 브랜드가 가진 다양한 배경, 감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 맞춰 제품을 만드는 ‘현지화’도 중요하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브랜드라도 국내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으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하락한다. NBA 브랜드를 전개하는 한세엠케이 관계자는 “보기 좋은 로고와 색감 등 눈에 띄는 브랜드를 들여오면 1년 정도는 소비자에게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 상륙한 이후 국내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변화를 주지 않는 브랜드는 인기가 순식간에 식는다. 소비자는 변하지 않는 브랜드에 피로감만 느낀다. 처음 이슈몰이에 자만하지 말고 국내 패션 시장 트렌드에 맞춰 꾸준히 상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자인에만 집중해 ‘품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브랜드 경쟁력만 믿고 품질이 떨어진 의류를 내놓으면 시장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특히 ‘로고 갈이’ 식으로 아무 옷에 로고만 넣어 파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디자인·품질 발전 없는 옷들이 쏟아지면 소비자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로고 갈이’ 식 라이선스 사업은 이제 막 성장하는 라이선스 패션 시장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의 진단이다.

[박수호 기자, 반진욱 기자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6호 (2021.12.01~2021.12.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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