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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답답한 한일관계, ‘확동축이’로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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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왜냐면] 조성렬 |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

한-일 관계는 일본 기시다 내각의 출범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일 양국에서 현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새로운 한-일 관계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처럼 한·일 정상이 만나 포괄적 해법을 찾아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 없는 정상 간의 합의만으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쉽지 않다. 새로운 선언이 채택되는 과정에서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최근 벌어진 한-일 갈등의 계기는 2012년 5월 대법원 1부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확정했다. 2015년 12월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국제법의 피해자 중심주의에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둘러싸고 법원의 엇갈린 판결이 나오기도 했으나, 정부는 2018년 1월 이것이 정부 간 공식 합의임을 인정하고 일본에 재협상 등 추가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먼저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해야 한다는 레토릭을 사용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현 상태는 한국의 국제법 위반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주의 도입을 둘러싼 국제법 논쟁과 국제법-국내법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향후 해법은 한국의 위반 시정이 아니라 한·일 양국이 국제법과 국내법 사이의 충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일각에서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한-일 관계가 좋아질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한-일 관계에는 이들 문제 외에도 수출규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등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따라서 관계 개선을 위해 구동존이(求同存異), 구동제이(求同除異), 확동축이(擴同縮異)의 세가지 접근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구동존이’란 이견이 심한 과거사를 그대로 둔 채 협력을 모색하자는 주장이다. ‘구동제이’는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그대로 둘 수 없는 핵심 현안이 됐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피해갈 수도 없지만, 국민감정까지 결부되어 있어 완벽한 해결도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협력을 확대하며 동시에 이견을 좁혀나감으로써 한-일 관계에서 갈등 요인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확동축이’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확동’으로 경제 및 안보 면에서 협력의 확대가 필요하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공급망(GSC) 재구축 및 인도·태평양 경제틀 형성 등의 경제협력, 해상교통로(SLOCs)의 안전·보호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된 안보협력, 납치 문제와 관련한 인도적 협력이 가능하다. ‘축이’로서 과거사 문제에서 완전 해결은 아니더라도 진전된 타협이 필요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우리 정부가 2015년 합의를 공식 합의로 인정한 만큼, 합의사항을 토대로 하되 피해 당사자와의 협의를 통해 원만히 풀어야 한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와 피해자 권리 실현, 양국 관계를 고려하면서 모든 당사자가 만족할 수 있는 타협책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은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첫째는 상호관계의 규정을 ‘기본가치의 공유’로 정상화하는 데서 시작하자. 한·일 정상의 시정연설, 외교·국방문서 등에서 양국 관계를 기존대로 정상화해야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근거가 생긴다. 둘째는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와 한국의 대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동시에 해제하자. 이것이 잘된다면 후속조치로 한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방침을 취소하고 일본은 화이트리스트를 정상화하는 논의가 가능하게 된다. 셋째, 코로나 오미크론 변종 확산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양국 국민의 인적 교류를 최우선적으로 재개하는 선의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자. 이들은 향후 새로운 리더십 아래서 양국 관계 개선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서도 풀어야 할 최소 과제다.

* 이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정부 입장을 반영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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