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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너에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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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숨&결] 배복주 | 정의당 부대표

부모의 시선으로 성소수자 자녀의 삶을 받아들이고 동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영화 상영 전 시사회 무대에서 인사하는 변규리 감독님과 나비, 비비안 두분의 발언을 들으면서 몇달 전 <학교 가는 길> 시사회 무대인사에 나섰던 장애 자녀 부모님들의 발언을 함께 떠올렸다.

대다수 사람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막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삶의 공간에 존재가 보이지 않을 때는 다행이라 생각하거나 무심해진다. 마찬가지로 장애인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성소수자’와 ‘장애인’이 내 삶의 공간에 등장하게 되면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게 된다. 아마도 비정상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차별과 혐오와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장애 자녀 부모님과 성소수자 자녀 부모님은 내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게 내 아이의 삶을 위해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 시작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공감하고 직면한 차별과 싸우고 있는 동지를 만난다. 그 만남은 조직이 되고 연대의 깃발을 함께 휘날리게 한다. 더 이상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고 우리 공동체의 문제라고 인식한다. <학교 가는 길>과 <너에게 가는 길> 두편의 다큐멘터리는 공동체의 연대감을 깊이 느끼게 했다. 나의 해방과 당신의 해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국회 주변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고 있는 부모님들의 투쟁 공간이 있다. 발달장애 부모님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단식투쟁 중이고 성소수자 부모님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소리를 높이고 있다.

장애 자녀 부모들의 연대는 수년째 발달장애인은 그 장애 특성상 인지능력의 제한으로 주거, 노동, 교육에서 배제되고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고 그로 인해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래서 더 이상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아니라 국가가 발달장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11월25일부터 발달장애 자녀 부모님들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활동보조서비스 확대 등 필수적 생존권 보장과 관련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 성소수자 부모님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 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며 전국에서 영화 상영회를 통해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15년째 국회에서 심의조차 하지 않는 차별금지법을 생각하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도 차별 앞에 좌절하고 혐오 앞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 떠올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와 정부의 늑장은 답답하고 화가 난다.

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서 세상살이 고비 고비를 넘어가는 한결과 예준의 삶을 보면서 응원하면서 안도감도 생기고, 나비와 비비안 같은 동행자가 있는 한결과 예준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마음 한편으론 그렇지 못한 내 주변의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안부를 묻게 되었다. 차별금지법이라도 있다면 나비와 비비안만큼은 아니더라도 손을 내밀 수는 있을 텐데….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삶을 알아가고 어떤 고통과 아픔이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세심한 마음과,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대해 함께 맞서는 용기 있는 연대의 길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공동체에서 나답게 살아가면서 존중받을 때 우리 모두는 평화롭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그 약속이 되길 바란다. 국민 70%가 동의하는 차별금지법을 더 미룰 이유도 없으니 국회는 심의하고 제정하라. 그것이 국회가 국민에게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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