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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변호사도 아닌데 대리급 연봉이 1억…요즘 20대 도전하는 이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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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부동산 관련 자격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공인중개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사는 동네 곳곳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는 물론, 누구나 집 관련 거래를 한두 번은 하면서 공인중개사들과 이야기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은 어떤가. 빌딩과 같은 부동산은 물론 영업권 등 부동산 외 무형자산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값을 매기는 이 직업은 일반인에게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상당한 고수익에 자격증을 바탕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젊은이들은 물론 여성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직업이다. 특히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장동 사태'가 불거진 이후 감정평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019년 감정평가사 시험 합격자 중 51%였던 20대 비율은 올해는 61%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여성 합격자 비율도 28%에서 35%로 늘었다. 현장에서 감평사라는 직업으로 일하고 있는 20·30대 MZ세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매일경제신문이 현재 대형 감평사 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20·30대 남녀 감평사를 직접 만나 이들의 직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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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활동적이고 재밌는 일이라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2018년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하고 대형 감평사 법인인 가온감정평가법인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김희진 감평사(27). 최근 기자와 서울 문정동 소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감평사라는 직업에 대해 아주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과거 남자들이 거의 독점했던 직업이라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와 보니 출장도 많고 재밌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김 감평사는 "법인에 50여 명의 감평사가 있는데 여자는 5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과거에 비해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직업 자체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부동산 감정평가를 하러 지방 외진 곳을 방문할 때 개 키우는 곳에 가는 게 큰 난관인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여성들이 꺼리는 직업으로 인식됐지만 요즘에는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 같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당찬 여성 평가사도 크게 늘었다.

김 감평사는 "종종 시골에 있는 부동산을 평가하러 갈 때 길가에 개가 풀어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땅 소유자에게 잡아달라고 하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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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대형 감평사 법인인 나라감정평가법인에서 일하는 손열 감평사(31)는 "일단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할 줄 알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출장을 즐기는 활동적인 직업이라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했다.

감평사 법인 입사 전 철강 관련 국내 대기업에서 1년간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대기업 근무 당시 체계화된 조직 생활이 답답해 나만의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다.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자는 생각 끝에 감평사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지금은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평사라는 직업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김 감평사는 "감정평가는 어떤 물건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으려고 할 때 가장 필요하다. 제조기업의 경우에는 영업권도 평가 대상이 되고 고철, 소, 돼지 등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모두가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 감평사는 이런 것을 평가를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어떤 '꼬마 빌딩' 소유자가 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 위해 평가를 의뢰하면 고객과 미팅을 하고 나서 건축물대장(건물의 상황을 정확·상세하게 기재해 관리하는 서식)을 뽑아 대장상의 도면을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도면을 들고 현장에 가서 도면상의 내용과 현장 상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주변 시세도 조사하고, 특이한 설비물은 없는지도 유심히 살핀 후 그 건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시지가 또한 감평사들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손 감평사는 "'서울 강남 도산대로 건물 위에 있는 명품 광고판이 1년에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도 평가해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근무시간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지킬 수 있는 직업일까? 손 감평사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지키는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출장을 가서 자신의 일만 마치면 되기 때문에 훨씬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감평사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초기에는 야근을 하는 날도 많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느 정도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봉 수준은 독립해 개인 사무실을 차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감평사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대형 법인에 근무하는 경우 대기업 이상 수준은 된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손 감평사는 "수습 기간이 1년 정도 되는데 그 기간에는 연봉이 3000만~4000만원 되고, 정식 감평사가 돼서 3년가량 지나면 7000만원 정도 , 7년쯤 지나면 1억5000만원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상한선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김 감평사는 "10년 차 정도 되는 분들은 연봉이 2억원가량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형 법인의 경우 정년이 만 65~70세 정도 되는 것도 매력적이라는 전언이다.

하지만 감평사 신규 선발 인원이 매년 150~200명으로 제한됐던 것이 올해부터는 200명 이상으로 확대되는 등 한정된 시장에 경쟁자가 늘어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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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감평사는 "평가할 자산이 많은 은행이나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로 가는 이들도 최근 늘어나는 등 크게 염려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손 감평사 역시 "감평사 시험공부를 할 때부터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까지 체감하지는 못하겠다"며 "부동산 가치가 오르면 수수료 또한 오르는 구조라 큰 걱정은 없어 보이며 본인의 영업 능력에 따라 수입은 얼마든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고소득자인 만큼 고충도 없지 않다. 이들의 손끝에 보상금이나 대출 금액 자체가 달라지니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의 항의가 거셀 수밖에 없다. 손 감평사는 "토지를 수용당한 이들이 감평사가 평가한 수용 가격에 불만을 품고 회사까지 찾아와 하소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며 "사실 울고불고해도 평가액을 올릴 수는 없고, 상위 기관에 이의 신청을 하면 된다고 알려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장동 사태'로 감평사는 물론 부동산 개발 관련 이들이 모두 비난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김 감평사는 "항상 평가할 때마다 '이게 맞나'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대장동 한 가지 이슈로만 관련 업계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 감평사도 "법 규정에 맞게 평가할 뿐이다. '평가를 잘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에는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두 감평사 모두 자신들이 평가했던 건물들에 수많은 상가들이 들어설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남의 부동산을 유심히 살펴보는 젊은 감평사들이 생각하는 좋은 집은 어떤 곳일까. 손 감평사는 "부동산은 결국 입지가 중요하다. 편하게 찾을 수 있고, 다니기 쉬운 곳에 있는 집, 교통이 편리한 집이 가장 좋아 보인다"며 "전에 살던 집은 한강 조망이 좋았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별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 감평사는 "예전에 양평에 있는 예쁜 집을 보고 은퇴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강남권 빌딩의 경우 평가할 때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1년 지나니 이미 싼 가격이 돼 있을 정도로 투자가치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감평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1년6개월~2년 공부했다는 이들은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 감평사는 "다년간 공부해야 하다 보니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좋다. 실무가 가장 어려운데 학원에서 실습해 보는 게 도움이 됐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감평사는 "처음 접해보는 법률 용어들이 많아 어려웠다. 단순 암기를 하지 말고, 법체계도 일련의 논리가 있고 흐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공부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박준형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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