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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재생에너지부터 늘려라”…‘풍력의 나라’ 스코틀랜드의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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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26 글래스고 통신 35]

영국 최대 육상풍력단지 ‘화이트리’ 르포

스코티시파워 CEO 린드세이 맥퀘이드

“소형 원전보다 더 안전· 더 저렴”

“지역 주민·환경 개선 투자도”

“전력 남으면 저장하고 수소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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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리 풍력발전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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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하기 위한 여행을 하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영국 런던 공항을 경유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두 나라의 풍경은 달랐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인근 창고로 보이는 건물 옥상에는 옥상을 다 덮을 정도로 많은 수의 태양광 발전 패널이 빼곡하게 설치돼있었다. 반면 런던 외곽에는 풍력 발전기가 이곳 저곳 설치돼 있었다.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기존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기후위기 대응의 최우선 과제에 대해 과학적 의심을 품는 이들은 적어지고 있지만, 지금 당장의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최선의 에너지 전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조량이 나은 편인 독일은 태양광을, 바람이 센 영국은 풍력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영국 내셔널 그리드가 집계하는 영국 전체 에너지원의 각 에너지 비중을 보면 이달 기준 풍력 41%, 가스 28%, 원자력 15%, 바이오매스 7% 등으로 구성돼있다. 2024년 말까지 영국 정부는 3기의 남은 석탄화력발전소도 모두 폐지한다. 석탄·원자력을 합쳐서 65%를 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5~6%에 그치는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2010년 7%에 그쳤던 풍력발전이 10년 사이 급성장을 해 영국 전역에는 총 39기의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스코틀랜드 재생에너지산업 무역기관인 ‘스코티시 리뉴어블’ 자료를 보면, 특히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전체 전력의 97% 가량이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이 중 설치 용량 기준 71%가 육상 풍력이다. 해상 풍력과 수력·태양광 등도 이를 보완하고 있다. 이때문에 한국 에너지 전문가들은 글래스고로 떠나는 기자에게 “풍력발전만 보고 오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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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현지시각) 찾은 영국 글래스고 외곽의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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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글래스고 시내에서 차로 40분 가량 떨어진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를 찾았다. 지난 5월 COP26 개막을 앞두고 알록 샤마 COP26 의장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영국 최대 규모·유럽에서는 루마니아에 이어 두번째로 큰 풍력단지로, 이곳의 공식 이름은 ‘화이트리 바람 농장(Whitelee Wind Farm)’이다. 말 그대로 바람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다. 설비용량 539㎿로 국내에서는 충청남도 서해안에 추진 중인 국내 최대 해상 풍력발전단지 규모가 504㎿이다. 원전 1기의 반 정도의 설비용량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만으로도 글래스고 60만 시민이 생활할 수 있는 규모다. 이곳은 영국 모든 풍력발전소를 모니터링할 수 있고 발전소 직원들을 위한 교육 장소로도 활용된다.

이날 차가운 가을비와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리는 스코틀랜드의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풍력발전소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발전기 터빈 날개(최대 48m) 돌아가는 ‘쉭쉭’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이곳 직원 로버트손 데니스는 이곳에만 215개의 터빈(발전기)이 있다고 귀뜸해줬다. 발전기 높이는 최대 140m로 영국에서 가장 높다는 윌트셔주 솔즈베리 대성당의 첨탑보다 높다. 날개 끝부분의 속도는 고속열차 속도인 시속 289㎞(180mph)라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은 영국에서 전기차 수가 너무 늘어났지만, 2019년 기준으로는 영국의 모든 전기차를 이곳에서 만든 전력만으로도 가동할 수 있었다”며 “날개가 한 바퀴 돌면 300대의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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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외곽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 방문자센터에서 만난 스코티시파워 재생에너지 부문 최고경영자 린드세이 맥퀘이드(Lindsay McQuade)가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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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영국 민간 6대 발전사 중에 하나인 ‘스코티시파워’가 운영한다. 이곳에서 만난 이 회사 재생에너지 부문 최고경영자 린드세이 맥퀘이드는 최근 전해진 영국 정부의 소형 원전 투자 소식을 전하자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라며 “소형 원전은 여전히 기술적 장벽이 있는데 재생에너지가 더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말했다. 지난 9~10월, 북해 바람이 불지 않아 풍력발전 가동률이 떨어졌고 그 결과 전기요금이 뛰어올랐다는 소식이 한국까지 전해졌다는 말에는 “3~9월의 경우 평년보다 바람의 세기가 약한 것은 맞지만,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는데 천연가스 가격 상승 배경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영국 풍력발전 입지 조건은 국가 송전망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전기를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전력이 전력 판매를 독점하는 구조의 한국과 달리 민영화한 영국에서는 다양한 발전사업자들이 경제성있는 전력 생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소비자들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다만 송전망은 국가 재정을 투자한다. 주민 민원 등으로 재생에너지 이송을 위한 송배전망 투자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한국과는 다소 상황이 다르다. 또한 한국처럼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밀집 지역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분산형 에너지인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확대가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풍력발전소가 이 곳에 위치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국가 송전망과의 거리뿐 아니라, 기상 환경, 적당한 땅과 공간 등을 복합적으로 따진다”고 말했다.

거대한 프로펠러에 대한 주민 반대는 없었을까. 주민 수용성 문제는 한국만큼 민감하지 않은 눈치였다. 이곳은 글래스고 시민들도 예쁜 사진을 찍으러 다녀가기도 하는 관광지다. 스코틀랜드 관광명소협회에 가입돼있어 매년 25만명이 찾아온다. 특히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풍력발전에 대한 오해를 줄여간다는 장기적 계획도 있다. 개장한 뒤 지금까지 189억원(1200만 파운드)을 지역사회를 위해 지부했고, 야생동물이 살 수 있도록 환경 개선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풍력발전 단지 유지와 관리를 위해 매년 600여명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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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외곽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 방문자센터에서 만난 스코티시파워 재생에너지 부문 최고경영자 린드세이 맥퀘이드(Lindsay McQuade)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영국 전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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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현지시각) 찾은 영국 글래스고 외곽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 방문자센터.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풍력발전의 세기나 역할 등을 소개하는 자료가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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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현지시각) 찾은 영국 글래스고 외곽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 방문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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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외곽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 방문자센터에서 만난 스코티시파워 재생에너지 부문 최고경영자 린드세이 맥퀘이드(Lindsay McQuade)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영국 전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영국 남부에 위치한 잉글랜드와 달리 북부스코틀랜드 지역의 에너지 부문에서의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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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연 자원을 다룰 때는 항상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시민들은 (풍력발전의) 현실적 모습을 받아들이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실제 와서 보면 생각하던 것과 다르다는 말들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노후한 풍력발전기를 바꾸는 문제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에너지원을 쓸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지역 지형에 맞는 터빈을 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주민 수용성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바람이 적게 부는 날에도 최대 생산량 대비 15%의 전력 공급이 가능한지 경제성을 따져보는 것이 중요했다. 육상 풍력단지는 평균 45~55%, 해안 풍력단지는 25~60%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곳에 입지해야 한다고 그가 덧붙였다.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 곳곳에 과거 석탄 경제 흔적이 남아있다. 스코틀랜드도 2009년부터 지금까지 재생에너지 생산을 3GW에서 12GW로 4배 늘리기 전에는 화석연료를 사용했다. 정부 주도의 에너지 전환이 주효했다. 영국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을 세웠다. 이 곳 역시 10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신중하게 입지를 선정한 뒤 2006년 건설을 시작해 2007년 첫 시험 가동을 한 뒤 2009년 완공했다는 것이 업체 설명이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생산량이 많아도 저장 능력·송전시설이 없는 재생에너지의 태생적 한계는 기술력으로 보완하는 길을 택했다. 보통 이곳의 풍력발전기는 바람 방향과 속도 등을 모니터링하며 최적화된 전력생산이 가능하도록 작동하며, 바람이 너무 세서 터빈이 고장날 위험이 느껴지면 자동으로 멈춘다. 이외에도 저장을 하기 위한 배터리 개발에 열중이다. 그는 “정부(National Grid Company)에서 전력 생산량을 줄여달라고 연락이 올 때도 슈퍼마켓 규모의 케이블에 전기를 담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고객에게 보내고, 수소를 생산해 운반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바람의 땅’ 제주에서도 풍력발전 생산량이 많으면 화석연료인 기저전력 운용의 안정성 때문에 풍력발전의 가동을 멈춰달라고 요청하지만, 저장 장치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 ‘풍력발전 무용론’이 비판받고 있는데 영국은 버리는 전력 없이 저장하거나 수소를 생산하는 또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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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외곽 화이트리 풍력발전단지. 스코티시파워 재생에너지 부문 최고경영자 린드세이 맥퀘이드(Lindsay McQuade) 뒤로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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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같이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국가에 그가 제안하는 에너지 전환 방식은 일단 재생에너지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도 2010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7%에 머물렀지만 지금 40%대로 오른 이유는 정부 정책 방향이 화석연료 의존이 아닌 재생에너지 확대였기 때문”이라며 “탄소 배출 목표를 분명히하고 탈탄소화하는 전환을 쉽게 하도록 법과 규제, 정책을 만들어 난방·차량 등을 전기화했다. 시간이 걸리지만 빠르게 진행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을 갖고 석탄과 천연가스 의존을 줄였을 때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코틀랜드는 재생에너지를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계속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에너지원의 5~6%인 것을 고려하면 재생에너지 비율이 40%인 영국과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질 수 있다. 재생에너지산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한국의 한 대기업 담당자는 “한국 재생에너지 수준이 초등학생이라면 영국은 대학생이다. 지금 당장 서로를 비교하면 너무 먼 미래 일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한국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영국 수준으로 늘릴 잠재력이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수용성이 전환되는 시점이 가급적 빨리 온다면 영국이 그랬듯 재생에너지에서 희망을 찾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래스고/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관련기사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어렵다는 전경련, 정말일까?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02568.html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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