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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대한항공-아시아나 독과점 노선 조정, 통합 속도 위한 '고육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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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 조정 기업결합심사 요청

'황금노선' 운수권·슬롯 반납시

외국항공사에 반사이익 돌아가

통합항공사 경쟁력 약화 우려도

이동걸 회장 "교각살우 말아야"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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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산업은행 등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과 관련한 이해당사자들이 일부 독과점 노선 조정을 골자로 한 기업결합심사를 요청키로 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과정에 청신호가 켜졌다. 다만 업계에선 이같은 운수권·슬롯(SLOT·시간당 이착륙 횟수) 조정이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산은·대한항공 등이 인천발(發) 로스앤젤레스(LA) 등 일부 노선의 운수권·슬롯 조정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기업결합심사와 관련한 일종의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공정위가 양사의 통합을 두고 국내 1·2위 사업자 간 통합에 따른 ‘경쟁제한성’을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1년이 넘도록 결론이 내려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다. 특히 통합의 키를 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 경쟁당국은 아직 심사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문제는 향후 내려질 공정위의 결정에 따라 통합 대한항공이 주요 장거리 국제노선의 운수권·슬롯을 반납할 경우 국내 항공업계가 아닌 외국항공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일례로 ‘황금노선’으로 불리는 LA노선의 경우 비행거리가 1만㎞에 달해 제주항공·티웨이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의 주력 기종으론 대응이 불가능하다. 이는 유럽 등 다른 장거리 노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다. 그렇다고 이들이 신규 기체를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항공업계 전반의 재무적 체력이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여서다.

중장거리 기종인 B787-9를 보유한 에어프레미아가 LA 노선 등 중장거리 노선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보유대수는 1대에 그치는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LCC가 규모의 경제를 발휘하는 단거리 노선과 대형항공사(FSC)가 주로 활약하는 중·장거리 노선은 사업 방식 자체가 다르다"면서 "독과점에 따른 폐해보다도 자칫 외항사에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해 당사자들도 고심이 커지고 있다. 양사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에도 단거리 국제노선에선 LCC와의 경쟁, 중·장거리 노선에선 외항사와 치열한 경합을 벌여온 만큼 운수권·슬롯 축소가 수익 및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전날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교각살우(矯角殺牛·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일을 그르침)’를 거론하면서 "전 세계 항공산업을 두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우리나라만 이 대열에서 뒤떨어지면 소비자의 복리 증진은 어디서 가능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공정위가) 길게 보고 산업적 맥락에서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도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존 운수권을 타 항공사, 특히 외항사에 배분하는 것은 항공주권을 외국에 넘기는 것과 다름없다"며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憂)를 범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도 과도한 운수권·슬롯 반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1국1사 체제와 완전경쟁이 보편화된 항공산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국제 항공노선은 미·중·일을 제외하면 국가 대표선수끼리 맞붙는 1국1사 체제고, 통합 대한항공이 출범하더라도 국제선 전반에선 이들과 경쟁하는 플레이어일 뿐"이라며 "독과점이라는 시각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것으로, 경쟁력을 키워주려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도록 몸집을 불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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