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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이재용, 정의선도 비정규직과 같은 법 기준 적용받는 게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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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불법파견 판결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를 국가기관이 바로잡아달라고 항의한 일이 죄가 됐다. 청와대 앞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친 일도 죄가 됐다.

검찰이 30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아사히글라스 등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이들에게 공동퇴거불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합게 21년의 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이 문제 삼은 행위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2018년 7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11명이 2004년 이후 이어진 30여 번의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라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려달라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농성했다. 같은 해 10월 현대기아차,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비정규직 6명이 각 사업장의 불법파견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며 대검찰청에 항의방문했다.

2019년 1월에는 현대기아차,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6명이 청와대 100미터 이내에서 손자보를 들고 "불법파견 사용자처벌", 비정규직 이제 그만" 등 구호를 외쳤다.

가진 것은 몸뿐이라 항의방문과 집회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선고 공판은 내년 2월로 예정돼 있다. 세 달 뒤 법원이 검찰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들은 감옥에 가게 된다. 맞은편에 선 제조업 불법파견 사용자 중 징역을 산 이는 아직 없다.

검찰로부터 최고 구형인 징역 5년을 받은 김수억 전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에게 지금의 심경과 이번 재판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프레시안

▲ 30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관계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합계 20년이 넘는 징역형을 구형한 검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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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검찰이 오늘 재구형 공판을 잡아 지난달 19일 구형을 바꿨다.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 대한 징역형을 합계 22년 6개월에서 21년으로, 김 전 지회장에 대한 징역형을 5년 6개월에서 5년으로 낮췄다. 재구형을 들으며 어떤 심정이었나?

김수억 : 구형이 낮아졌지만 마음이 참담했다.

검찰이 처음에 무리하게 기소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사용자 처벌을 요구하며 대검찰청 로비에서 농성한 걸 가장 무겁게 처벌하려고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했다. 그런데 검찰 스스로도 혐의가 성립되지 않을 것 같으니 공동퇴거불응으로 기소 내용을 변경했다. 그러면서 형량이 낮아졌다.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자인하면서 형량이 낮아진 거지 요구의 정당함이나 절박함을 참작해 형량이 낮아진 게 아니다. 오늘도 17명 모두에게 징역형을 구형했다.

불법파견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불법파견으로 고통 받은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범죄자로 구형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 이게 과연 정부와 검찰이 이야기했던 정의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프레시안 : 오늘 최후진술을 다시 했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했나?

김수억 : 정말 이 비정규직들이 그토록 큰 죄를 지었는지, 검찰이 기소한 대로라면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에 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요구한 게 죄인지, 16년 넘게 불법파견 범죄를 저지른 재벌기업을 법대로 처벌하고 법대로 시정명령을 내려달라고 한 게 죄인지 물었다. 그 16년 동안 정부와 검찰이 불법파견 범죄를 법대로만 다뤘다면,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정에 서는 일은 없었을 거다.

제발 정부와 검찰이 재벌기업의 범죄에 대해 법대로는 처벌과 집행을 해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 재벌 편에 서서 호위무사 역할만 하면 억울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법정에 서는 일은 계속될 거라고 했다.

우리가 처벌받아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 받지 않는 일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구형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다만, 이재용과 정의선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한 그 기준대로 처벌하고 구속시켜라. 그것이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프레시안 : 주변 사람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김수억 :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님이 오늘 재판을 참관했는데 마지막에 판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들이 죽고 나서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차별 받고 힘들게 싸우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내 귀로 들었다. 이 비정규직들 잡아갈 거면 나도 잡아가라"고 했다. 그걸 들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구형을 받은 다른 노동자들과는 불법파견 책임자를 법대로 처벌하라고 외치는 일이 범죄가 되는 현실은 상식과 정의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 계속해서 바꿔나가자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했다.

프레시안

▲ 2019년 9월 서울고용노동청 앞 천막에서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촉구하며 단식 중이던 김수억 전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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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을 어기면서도 노동부와 대검찰청에 항의방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김수억 :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법에 의존했고 법대로 해달라고 했던 사람이 오늘 구형 받은 노동자들이다. '법원이 현대차에 서른 번 넘게 불법파견 판결을 했으면 그 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해야 된다'고 했고,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으면 시정명령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도. 검찰도. 사법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재벌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부에 기대고 법에 기대고 검찰에 기댔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만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90명 넘게 해고되고 20명 가까이 구속됐다. 12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도 있었다. 세 명은 목숨을 끊었다. 그러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뭘 해야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해서 농성하고 단식하고 집회한 게 아니다. 법에 먼저 기댔지만 정부와 검찰, 사법부는 법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와 검찰, 사법부의 호위를 받으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들이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가 있다.

프레시안 : 오는 2월이 선고다. 재판을 지켜볼 시민과 노동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김수억 : 재판부가 신중하게 판단하기 위해 선고일을 2월 9일로 길게 잡았다. 그런데도 상식과 정의를 바로잡자고 이야기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징역을 살게 된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이 나라의 법이 재벌 편에 선다는 걸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들었던 노동자와 시민이 바란 세상이 이런 세상은 아니었을 거다.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가 지켜지는 세상을 바랐을 거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고,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다. 더이상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 받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을 바라면서 이야기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디 억울하게 또 다시 감옥에 갇히는 일에 없도록, 또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하는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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