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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터뷰]"예견된 테러는 없다"…PBI 전문 경찰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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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경찰청 서문수철 팀장, 과학수사 20년 경력 베테랑

폭탄테러 훈련 아랍에미리트 경찰 보고 결심

PBI? 폭발 후 성분 분석·유통과정 쫓아 테러범 검거

국내 첫 훈련 후 올해 6년차…"후세대 위해 준비해야"

노컷뉴스

폭탄테러 발생 후 현장대응 체제인 'PBI'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 서문수철 팀장.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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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테러는 폭발과 함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 그 피해는 참혹하고, 용의자 추적도 까다롭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사건 현장. 그 속에서 '없을 것 같은' 범인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PBI(폭발 후 현장감식) 요원들이 그들이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포천의 군부대 훈련장.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고, 컨테이너 박스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곧바로 검은 조끼를 입은 요원들이 투입됐다.

폭발지점에 선 대원은 줄자를 늘려 잔해와의 거리를 재고, 바로 옆 또 다른 대원은 조심스럽게 잔해를 채집한다.

이어 확보한 폭약을 분석해 성분을 확인한다. 성분을 토대로 폭약 제조사와 판매처까지 역으로 쫓는다. 용의자가 압축되고, 그 끝에 테러범이 있다.

"10kg짜리 사제폭탄은 2t 무게 철제 컨테이너를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폭탄 테러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PBI를 훈련중인 경찰관.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 서문수철(53) 팀장은 "예견된 테러는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발 후 현장감식 PBI, 테러의 시작점을 쫓다


서문 팀장은 6년째 폭탄테러 대응 매뉴얼을 연구하고 있다. '폭발 후 현장감식'이라 불리는 'PBI(Post Blast Invastigation)'다.

PBI는 폭발 등 전문훈련을 받은 현장감식팀이 폭탄이 터진 현장을 조사하고, 테러 유무를 파악해 범인을 쫓는 수사 기법이다. 경찰과 군인, 국정원, 폭발물 전문가 등이 한 팀이 된다. 대원들은 폭발지점 인근에 떨어져있는 잔해들을 분석한다.

테러범의 유전자나 지문감식은 기본. 개인이 급조해 만든 사제 폭탄인지, 전문가가 공수한 군용인지 등을 살핀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뇌관과 폭약 성분 등을 비교해 제조사를 찾고, 유통 과정까지 쫓는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관련 자료나 적용해야 할 동기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문 팀장은 "PBI는 테러 발생 시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국내에선 아직 준비 단계지만, 해외에선 보편화돼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테러 청정국'?…아직 '걸음마'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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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열린 제6회 대테러 폭발훈련 모습. 화학물질로 만든 10kg 사제폭탄이 터지자 2천kg 컨테이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경기남부경찰청


서문 팀장이 PBI를 알게 된 건 2015년 화재 폭발 교관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을 때다.

서문 팀장은 "한국 경찰의 화재조사 능력을 인정받아 아랍에미리트로 출장을 갔는데, 당시 우리 경찰도 하지 않던 폭탄 테러 훈련을 하고 있었다"며 "우리나라가 테러 범죄에 대해선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인 PBI 구상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테러 불감증'을 떨쳐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한테 아랍에미리트 훈련 이야기를 꺼냈더니 '거긴 낙타나 타고 다니는 곳 아니냐'고 하더군요. 다들 폭탄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에서도 폭탄 테러가 발생할까. 답변은 확고했다.

"폭탄 테러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어요. 예상되는 인명피해도 엄청나고요."

실제 온라인에서 몇 단계 검색만 거치면 폭탄 제조법을 알아낼 수 있다. 그렇게 만든 10kg짜리 사제 폭탄은 2t 무게 컨테이너를 흔적도 없이 찢어버린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수년 전 한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또 자발적으로 테러를 벌이는 '외로운 늑대'가 언제 국내에서 활동할지도 모를 일이다.

발로 뛴 6년…이젠 외부기관이 먼저 훈련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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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폭발 후 현장감식(PBI)' 훈련을 마치고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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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팀장이 PBI 훈련을 해온 지도 어느덧 6년. 그는 이제 국내 폭발물 전문가로 통한다.

2016년 첫 실험에선 자동차를 폭파했다. 2017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텀블러 폭발 사건이 발생하자, 그와 똑같은 폭발물을 제작하고 실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항구와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테러 대응 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훈련에는 경기남부경찰청을 비롯 국정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25개 기관 소속 1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업계에선 유명인사다. 2년 전에는 당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한국의 통일이 눈 앞에 올 때쯤 분명 이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테러 등을 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주보던 서문 팀장에게 대응책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서문 팀장은 PBI 훈련 내용을 설명했고,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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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당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초대를 받고 면담에 참여한 서문수철(우측에서 3번째) 수사관. 서문수철 수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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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록을 쌓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폭발물을 터트릴 수 있는 장소가 제한돼 있어 매번 군부대에 신세를 져야 한다. 훈련비용도 만만치 않다.

실험 초기에는 무작정 군부대를 찾아갔고, 국정원 문을 두드리며 사정해야 했다.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서문 팀장은 열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서문 팀장은 "외국의 사례를 볼 때 PBI를 구축하는 데 최소 10회 이상의 훈련과 실험이 쌓여야 한다"며 "올해 6회가 지났으니 PBI훈련 10회를 채울 때까지 최선을 다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과학수사는 전세계에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나지만, 폭발물과 테러 분야에선 취약한 지점이 분명 있다"며 "지금부터 준비해야 후세대에 발생할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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