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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집에서 죽으란 거냐” “온가족 감염될 판” 재택치료에 쏟아진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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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외출 못하면 돈은 누가 버나” “아파트 집단감염 우려”

조선일보

지난 19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한 골목에서 부평구보건소 관계자가 재택치료 대상자에게 자가치료키트를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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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유모(여·36)씨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4세 아들과 이달 26일부터 재택 치료를 하고 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아들이 37도 정도의 미열이 있었는데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 유씨는 음성이었다. 방역 당국에선 “시설에 같이 입소하든지, 재택 치료를 하든지 택하라”면서 “근처 시설 상황이 넉넉하지 않아 먼 지역으로 배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유씨는 재택 치료를 택했고, 그 날부터 모든 외출이 금지됐다. 보험 영업직인 그는 그 때부터 사실상 밥벌이가 불가능해졌다.

유씨는 5일째 마스크만 낀 채로 집에서 확진자 아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외출을 할 수 없다보니 음식, 식재료 등 모든 걸 배달시키느라 생활비가 평소보다 하루 3만~4만원씩은 더 드는 것 같다”며 “아들의 증상이 사라져 완치 판정을 받아야 재택 치료가 끝나는데, 당장 줄어든 수입이 걱정이고 완치 전에 내가 또 양성 판정을 받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방역 당국이 이달 29일 “모든 코로나 확진자가 본인의 집에 머물면서 필요한 경우에만 입원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지침을 발표하며 시민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재택치료는 기존에 70세 미만의 무증상·경증 확진자 중 재택치료에 동의한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는데, 최근 병상이 부족하자 이를 아예 기본 원칙으로 바꾼 것이다. 앞으로는 코로나 신규 확진자 중 주거 환경이 감염에 취약하거나 보호자가 없는 소아, 장애, 70세 이상 고령자 등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우선 치료를 받되, 입원 요인이 있거나 주거 시설이 감염에 취약한 경우에만 시설에 입원·입소하게 된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재택 치료자의 동거인은 병원 진료, 폐기물 중간배출 등 필수 사유가 아니면 외출이 불가능하다. 출근과 등교도 금지다. 회원수 7600여명의 코로나 확진·완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재택 치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여럿 올라와있다. “남편이 출근해야 하다보니 가장 싼 모텔을 잡아줬다” “아무리 싸도 숙박비로 수십만원은 써야 하는데 이 돈은 누가 대주느냐”는 내용이다. 인천의 한 숙박업소 관계자는 “그동안 가족의 재택치료 때문에 따로 숙소로 나와 살려는 직장인들의 문의가 많았다”며 “재택치료가 원칙이 된만큼, 앞으로 이런 수요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아파트 등 공동주택 주거가 많은 특성상, 재택 치료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도 나온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31)씨는 “최근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같은 동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절대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고 말씀드렸다”면서 “부모님은 4층에 사셔서 계단을 쓸 수 있지만 더 높은 층에 사는 사람은 걱정과 불편이 클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정모(24)씨도 “만약 입주민 중에 재택 치료자가 나오면 엘리베이터나 환기구를 통해 옮을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아파트 특성상 집단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정부가 손 놓고 국민들을 사지로 모는 것이냐” “만약 단체 감염이 쏟아지면 받아줄 병상이나 있느냐” 등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서울 여의도 직장인 박모(29)씨는 “코로나 감염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만약 걸리면 1인 가구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부산에 계신 부모님더러 ‘아들 봐달라’며 올라 와달라고 할 수도 없고,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은 대책”이라고 했다. 지난 8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완치한 직장인 신모(29)씨는 “생활치료센터에 있다가 갑자기 폐렴 증세가 심해져 병원으로 옮겨졌다”며 “증상이 심할 때는 호흡도 거의 불가능한 정도였는데, 집에서 이런 상황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의 소위 ‘K방역’을 충실히 따라온 자영업자들도 불만을 내놓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한식집을 운영하는 이모(62)씨는 “재택 치료를 해도 될 거면 왜 지금까지 방역한다고 영업 제한하는 그 난리를 떤 것이냐”며 “맞으라는 백신도 다 맞고, 문 닫으라고 할 때 다 닫았는데 이런 결정이 나오니 허탈하다”고 했다.

일선 공무원들도 재택치료 확대 지침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구청 재택치료전담팀 관계자는 “일단 재택 치료를 확대하라는 지침은 나왔는데 정작 일선에는 정확하게 내려온 지침이 없다”며 “각 구청의 전담팀은 이미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데 업무가 더 가중될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고 했다. 그는 “어르신은 물론 젊은 사람들도 비대면 진료 앱 사용을 잘 못하는데 그러면 증상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며 “무증상, 경증환자라도 기저질환 때문에 잠재적 위험이 있을 수 있는데 재택치료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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