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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정권 바뀔때마다 붙였다 뗐다…정부조직개편 이번엔 다를까 [Big 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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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공무원이 부처 간 연결통로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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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 십중팔구 정부조직 개편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잘 구현되도록 정부조직을 바꾸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개편이 너무 잦다 보니 공직사회의 혼란 등 비용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정부조직 개편은 시대 변화에 따라 꼭 필요한 경우로 한정해야 할 것이다. 그 내용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앞으로 벌어질 논의에 출발점을 제시한다는 의미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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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정부조직 개편은 기존의 정부 기능을 그대로 인정하고 기능 간 그루핑에만 집중했다. 이는 피자의 맛과 크기에는 무관심한 채 피자를 몇 개로 잘라 먹을지만 고민하는 셈이다. 정부조직 개편의 첫 단추는 정부가 더 할 일과 그만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최근 잠재성장률은 2.0%로 떨어지고 사회 갈등과 국민 삶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10년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1년 잠재성장률이 3%가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락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른 것이다. 지금은 정부 역할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정부는 여전히 개발시대의 관성으로 기업, 지방정부, 금융, 대학, 공공기관 등을 통제와 과잉 지원으로 묶어 두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자율과 책무성이 사라지고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한 배경이다. 이제는 정부의 통제와 지원을 줄이고 복지 등 대국민 서비스, 방역 등 안전과 질서유지, 탈탄소 등 조정(調整) 기능으로 정부의 예산과 인력을 이동시켜야 한다. 정부의 기능과 조직을 개도국형에서 선진국형으로 바꿔야 한다.

조직개편은 결국 부처의 통합과 분리로 귀결된다. 부처를 분리하는 이유는 부처 내 두 기능이 상충돼 한 기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두 기능을 모두 확대해야 하거나 부처가 너무 커서 장관의 통솔 범위를 벗어날 경우에도 부처를 분리한다. 반면 두 부처를 통합하는 이유는 두 기능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거나 두 기능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총괄 및 경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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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기능과 관련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국정 전반을 조정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이다. 총리실이 정책조정을 담당하나 조정에 필요한 권한이 부족해 결국 부담이 청와대로 몰리고 있다. 총리를 도와 총괄조정을 할 전문성과 힘을 가진 조직은 기획예산 기능이다. 계획 수립과 예산 편성 과정에서 타 부처의 정보가 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획예산 기능은 2008년 이후 '경제'부총리에게 속해 있다. 이에 따라 경제문제의 조정 역량은 강하지만 원격의료와 같이 경제를 넘어서는 이슈를 조정할 명분은 없다. '사회' 부처는 경제부총리의 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는 경제 성장 외에도 사회통합, 삶의 질 등 사회 부처의 목표도 중요한 시대다. 기획예산 기능은 경제 관점이 아니라 국정 총괄 관점에서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기획예산을 경제에서 분리해야 한다.

현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경제부로 분리하고, 기획예산처는 총리실 소속으로 하자. 거대 부처인 기획재정부를 장관의 통솔이 쉽도록 나눈다는 의미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경제문제의 조정은 경제부가, 경제와 사회 부문 간 조정은 기획예산처가 총리를 도와 수행하게 된다. 통계청도 기획예산처 소속이 더 적합할 것이다. 경제부에는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을 옮겨 놓자. 지금은 금융정책과 감독이 금융위원회에 공존하는데 이를 분리해야 금융감독의 독립성이 살아난다. 그러면 기획예산처-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가 되는데 이는 2008년 이전과 유사한 형태다.

기획예산처에 행정안전부의 행정관리 기능(조직관리와 전자정부)을 더해 관리예산처를 만들면 미국의 예산관리국(OMB)과 유사해진다. 총괄 조정력을 강화하고 행정부를 강력하게 개혁하고 싶을 때 유용한 모델이다. 김대중정부 초기의 기획예산위원회가 이와 유사했다. 현재 각 부처는 과를 신설하려면 행정안전부(조직)를 거쳐 기획재정부(예산)와 협의하고 있다. 두 기능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행정관리 기능이 빠진 행정안전부는 자치안전부로 탈바꿈한다. 한편 행정안전부의 행정관리 기능을 인사혁신처와 통합하는 대안도 있다. 1998년 이전의 총무처-내무부 체제인데, 개편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반부패 기능을 독립시키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고충처리와 행정심판에 비해 반부패 기능이 다소 이질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부패와 고충처리의 연계 강화라는 통합 취지를 고려하면 현행 유지를 추천한다.

대외, 산업, 과학기술 부문


외교부와 통일부의 통합은 논리적으로는 맞으나 권하고 싶지는 않다. 북한도 외국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쿨하게 대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통일부와 외교부의 이견은 어차피 청와대에서 조정된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제기하는 부처가 있는 것도 대외전략에서 나쁘지는 않다. 외교부가 차관급 3명이 있는 거대 부처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장관 아래 차관급 3명이 각각 산업, 통상, 자원을 담당하고 있는 거대 부처다. 세 기능 중 통상과 자원(에너지)정책이 산업 기능에 치이는 경향이 있다. 산업계 이익을 반영해 국내 산업 보호에 치중하고,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그 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는 선진국엔 부적절한 구도다. 통상과 자원 기능을 묶어 통상자원부로 분리하길 권한다. 남은 산업 기능은 중소벤처기업부와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 기업 규모에 따라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주무 부처가 다른 것은 비효율이 크다. 실제 두 기능은 과거 한 부처로 있었으며 지역산업진흥 등 공동 사업도 적지 않아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로 분리하고 과학기술부가 전 부처의 연구개발(R&D) 배분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부활시키고 과기부가 그 사무국 역할을 하길 권한다. 과학기술부가 중립적 심판을 하려면 자기 식솔이 없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과기계 출연연구기관은 총리실로 이관돼야 한다. KDI 등 경제·인문사회 관련 연구기관은 이미 총리실 소속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합의제적 성격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정보통신부에 통합되는 것이 좋겠다. 현재 과기정통부와 방통위 간에는 업역 갈등이 많다. 나아가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의 미디어 기능도 이관을 고려할 만하다. 방송과 신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부의 국민 소통 기능은 전 부처와 관련된 업무이므로 총리실로 이관하는 것이 조직 논리상 맞는다. 그러나 문화부의 콘텐츠 및 저작권 기능은 문화진흥이라는 문화부 본연의 기능과 밀접하므로 정보통신부로 이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해양수산부는 해체와 부활을 겪었다. 이제 조직이 안정화되고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어 현행 유지를 추천한다. 국토교통부 역시 부처의 규모가 다소 크긴 하나 국토와 교통 기능 간 시너지 효과가 존재하므로 현행 유지가 좋겠다. 그러나 두 부처는 모두 적극적으로 기능과 조직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사회 및 교육 부문


현재의 여성가족부는 가칭 성평등위원회로 개편해 전 부처를 상대로 여성정책을 강화하길 권한다. 대신 가족·청소년 기능은 복지부로 이관하는 것이 좋겠다. 실제 두 부처는 같이하는 사업이 많다. 복지부 기능은 복지와 보건으로 분리해 두 기능을 각각 확대하길 권한다. 두 기능은 전문성이 달라 한 장관이 통솔하기 어렵다. 분리되는 보건 기능은 질병관리청과 통합하면 될 것이다.

미래에 중요한 교육 기능은 다른 기관과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고 싶다.

먼저 초·중등 및 관련 기능은 지방교육청과 국가교육위원회로 이관할 수 있다. 전문대학과 평생교육 기능은 노동부로 이관해 일자리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교육부 기능의 분산으로 인한 문제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총괄 역할로 메우면 된다. 그러나 교육부를 존치하고 노동부와 복지부를 통합하는 방안도 일자리를 통한 복지라는 점에서 고려할 만하다.

어떤 경우에도 대학정책은 국무총리실로 이관하길 권한다.

과기계 출연연과 대학이 모두 총리실로 이관되면 이들에 대한 통제 약화가 기대된다. 두뇌집단에 대해 지금과 같은 통제를 유지해선 잠재성장률의 빠른 하락을 막을 수 없다.

환경부 기능은 전반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자원·에너지 기능을 흡수하는 방안도 거론되나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현재 농림축산식품부 소속인 산림청의 환경부 이관은 검토할 만하다. 산림 행정에는 보전과 이용이 모두 중요한데 갈수록 보전 가치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소속기관 정비


우정사업본부는 공기업화를 검토해야 한다. 우편, 예금, 보험이라는 업무의 성격상 공무원 조직보다는 공기업 형태가 기관의 성과를 제고하고 국민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다. 철도청을 공기업인 한국철도공사로 바꾼 경험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명박정부에서 폐지가 검토되기도 했으나 식량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소속 5개 연구소는 농진청 산하 출연연구기관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연구소가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 연구자 간 상하 관계가 형성돼 성과 중심의 수평적 연구환경에 저해가 되고 있다. 출연연 전환 후에도 100% 정부 예산 지원은 유지돼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방청 기능과 인력은 가급적 지방에 이관하는 것이 좋겠다. 현 정부도 400개 중앙정부의 사무를 지방정부로 이관하기는 했으나 조직과 인력의 이양은 없었다.

노무현정부는 제주에 있던 국토, 해양수산, 중소기업, 환경, 노동, 보훈 관련 지방청을 제주특별자치도에 이관했다. 그 경험을 모든 광역자치단체에 적용해 보자.

이상의 제안대로 정부조직을 개편하면 부처 숫자가 한두 개 늘어난다. 부처 숫자가 늘면 큰 정부라는 비판적 여론이 따른다. 그러나 정책의 질과 대국민 서비스가 좋아진다면 장관 1~2명 느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각 부처의 내부 조직도 이참에 개편하는 것이 좋겠다. 부처별로 실장의 역할이 국장급과 차관 사이에서 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실장직은 폐지하자. 예산실, 세제실 등 실장이 실질적인 총괄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는 예외다. 대신 부처마다 자체 혁신을 책임지는 혁신차관보를 설치하자. 혁신차관보는 개방형 직위로 하는 것이 좋겠다.

끝으로 정부개혁위원회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은 정부의 역할을 바꿔야 할 때다. 그러나 이를 각 부처가 스스로 할 리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별도의 추진 주체가 필요하다. 정부 역할 개편은 정부조직 개편과는 무관하게 임기 내내 수행돼야 한다. 다만 위원장은 비상임으로 해 큰 정부 우려를 불식하길 권한다.

노무현정부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이 개도국형 정부를 선진국형 정부로 바꾸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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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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