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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1) 전매청 창고 부지서 동대문구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간데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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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1996년 '공원녹지확충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그린 인프라가 부족한 동대문구의 생활 환경 개선을 개선하고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답십리동 일대에 '간데메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시는 옛 전매청 창고 부지를 사들여 1997년 12월 착공, 이듬해 간데메공원 조성 공사를 마무리하고 시민들에게 녹지를 개방했다.

◆간데메공원의 역사

지난 11월 29일 오후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2길 59에 위치한 간데메공원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에서 하차해 1번 출구로 나와 동대문구청 방향으로 914m(약 15분 소요)를 걸었다. 평일 이른 오후라 한산한 주택가 한가운데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간데메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원은 통일신라시대의 정원 시설물인 포석정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도랑을 따라 물이 흐르는 대신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길이 나 있다.

지하철 출입구 구조물 중 하나인 캐노피 형태의 간데메공원관리소를 기준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어린이놀이터, 장미터널, 배드민턴장, 농구장, 다목적광장, 소나무동산, 팔각정이 차례로 들어섰다. 공원 규모는 1만5180㎡다.

공원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 씨는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왔다"면서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공원명이 참 특이한 것 같다. 할머니 어렸을 적에 창지개명(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근대화된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명분 하에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우리나라 고유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꿔버린 것)이 많이 이뤄졌다고 들었다. 그때 원래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간데메로 바뀐 것인지 궁금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원명은 과거 답십리 일대에 원말(원촌), 넘말(월촌), 간데메(중산)라는 부락이 흩어져 있었는데 그중 중산 마을의 토박이 이름을 따 간데메로 정했다고 한다.

간데메공원 앞에서 답십리 돈까스 맛집으로 소문난 분식집을 운영하는 주인장은 "옛날에 이 공원뿐만 아니라 저기 위브아파트 넘어서까지가 전부 다 돌산이었다"면서 "산 깎아서 병원 만들었다가 동대문경찰서가 잠시 와 있다가 그리고 나서 간데메공원이 생겼다"고 했다.

공원 자랑을 해달라고 청하자 기다렸단 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는 "간데메공원에는 매실나무, 살구나무, 감나무 같은 과일나무가 많고, 공원 지을 당시 3500만원 주고 산 최고로 비싼 백송(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도 있다"면서 "나무를 전만큼 열정적으로 가꾸지 않아 빛이 안 나서 그렇지 저쪽에 가면 백송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월에는 장미터널에 꽃이 피면 참 예쁘고 가을에는 단풍든 나뭇잎 떨어지는 모습이 멋지고 눈 올 때는 눈 오는 대로 사계절 내 아름다운 공원"이라며 엄지를 추어올렸다.

한 동네주민은 간데메공원 지하에 주차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전했다. 동대문구에 사는 김모 씨는 "이 근처에서 하도 단속을 해대니까 딱지를 떼 가지고 벌금이 많이 나와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러면 주차장이라도 하나 만들어 주고 난 다음에 딱지를 떼라'고 계속 민원을 넣었다"며 "먼젓번에 와서 지질검사도 다 해갔다던데 빨리 주차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이웃끼리 안부 살피는 장소

이날 간데메공원 곳곳에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네 할아버지들은 농구장 코트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잔뜩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다며 뽑을 사람 없는 현 세태를 한탄했다. 대화 내용의 90% 이상이 욕설이었다. 명심보감에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중국의 성군인 요 임금은 허유라는 은자(隱者·숨어사는 선비)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다 거절당했다. 임금은 다시 한번 허유를 찾아가 9개 주의 장관이라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씻는다. 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재밌는 일화를 건지려고 옆에서 기웃대다가 10분 넘게 이어지는 쌍욕을 들었더니 욕지기가 솟아 자리를 떴다. "우리 이씨 중에는 그런 죄 많은 사람이 없고, 다들 겸손한데 그 XX 조동아리가 아주 경솔하더만"이 가장 수위가 낮은 내용이었다는 것만 전하겠다.

건너편에서는 할머니 두 분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벙거지 모자에서부터 머플러, 패딩, 장갑까지 모두 자주색으로 색깔을 맞춘 멋쟁이 어르신 한 분이 동네 친구에게 그간 왜 공원에 나오지 못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대퇴 나가고(넓적다리 골절), 쓸개 빼고 성한 데가 없다"며 "몸이 아프니까 입맛도 없어 운동할 힘이 안 났다"고 털어놨다. 친구와 똑같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포즈로 열심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할머니는 "계란 후라이에 애간장 넣어서 먹으면 맛있는데 그것도 안 들어가?"라고 물었다. 어르신은 "그래도 밥이 안 넘어가"라며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러자 친구는 "암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내일 점심 먹고 여기에서 2시에 만나"라고 말한 뒤 어르신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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