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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에서, 건축의 ‘아름다움’으로 자본을 이길 수 있을까 [콘크리트와 글로 빚은 20세기 한국 건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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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 걸작 서울 힐튼호텔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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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준공 당시 힐튼호텔 전경. 88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1981년 사세를 확장 중이던 대우그룹의 단독 시행으로 세워졌다. ⓒ김종성,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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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자본분배가 도시의 과제가 되며
많은 현대 건축물이 철거의 운명 못 피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1450년에 출간한 <건축론> 6권에서 건축 작품을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조차 여러 차례 도시에서 쫓겨날 정도로 정치적으로 불안했기에, 공들여 지은 건축물이 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적마저도 탄복하게 만드는 탁월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최고의 방비책이라는 것이다. 이때 아름다움은 부분과 전체의 완벽한 조화, 무엇 하나 더하고 뺄 것 없는 상태를 말한다. 수많은 전쟁과 풍화를 견뎌낸 르네상스 건축물들은 이 전략의 유효성을 입증해준다. 그렇다면 현대 건축은 어떨까?

21세기도 20년이 지난 지금, 20세기의 현대 건축은 늙기 시작한 지 오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현대 건축물이 철거되고 있고 몇몇 예외적인 건물만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최적의 자본 분배가 도시와 건축의 최우선 과제가 된 요즘 현대 건축의 보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20세기 현대 건축물과 그 지역에 대한 기록과 보존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국제단체 도코모모(docomomo)의 존재 자체가 현대 건축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드러내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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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의 건축가 김종성에게 큰 영향을 준 미스 반데어로에의 대표작 시그램빌딩. 위키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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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준공된 김종성의 서울 힐튼호텔
거장 미스의 ‘정연한 공간 질서’를 따라
건물 전체에 아름다운 비례 구현한 걸작

서울역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자리한 힐튼호텔은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 그리고 이 아름다움이 처한 위태로움을 잘 보여준다. 힐튼호텔은 1978년 도심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9개 구역 중 하나인 양동지역의 재개발 사업 일환이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1970년대 초부터 서울역과 시청 일대, 종로, 을지로, 세종로 등 강북 도심 일대를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많게는 100여개 필지로 나뉘어 있는 사업지구 내의 복잡한 이해관계, 자금 부족 등으로 거개의 사업이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1988년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1981년 이후 본격화되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힐튼호텔이 속한 양동지역 6지구의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당시 사세를 급속도로 확장해 나가던 대우그룹이 단독 시행자였고, 재개발 사업의 목적도 처음부터 호텔 건립으로 뚜렷하게 정해져 있었다. 또 해외 차관 도입으로 자금 확보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해외 투자가 있으면 수입 자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유리했다.

힐튼호텔은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 일대에서 일제히 완성된 100여동의 오피스와 상업시설을 통틀어 가장 수준 높은 완성도를 지녔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김종성이다. 김종성은 20세기 한국 건축계에서 현대 건축의 원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건축가다. 그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2학년을 마치고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일리노이공과대학 건축학과에서 공부했다. 당시 일리노이공과대학 건축학과의 교과과정 전반은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의 영향 아래 있었다. 미스는 바우하우스 교장을 지냈고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 현대 건축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한국 건축가에게 미스가 가닿기 힘든 전설로 회자될 때, 김종성은 그에게 배우고 함께 일했다. 김중업이 또 다른 신화적 거장인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귀국 후 김중업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은 지속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았다. 반면 미스의 자리였던 일리노이공과대학 건축학과의 학장을 지내기도 한 김종성은 미스의 유산을 지속적으로 해석하고 확장해 자신의 방법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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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힐튼호텔 로비 전경 ⓒ황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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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매각 소식 전해지며 철거 계획 나와
‘용적률’ 앞에서 무력하게 최후 맞을 듯
현대 건축의 유산 전승이라는 질문 남겨

미스 건축의 특징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현대 산업 기술, 대량 생산 시스템을 이용해 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콘크리트를 이용해 조형적 형태를 빚고, 이 콘크리트 덩어리의 무게감, 빛과 어둠을 활용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미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주택, 오피스, 미술관, 도서관, 호텔 등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과 질서 체계가 그의 우선 과제였다. 수평면과 철골 기둥이라는 최소한의 도구를 통해 펼쳐지는 정연한 공간이 미스 건축의 특징이다. 이 속에서 건물의 프로그램과 거주자의 생활은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장소의 특수성보다 이를 초월하는 보편적 질서를 추구한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건축적 행위라는 플라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이가 아마 미스일 것이다.

김종성의 힐튼호텔도 이 규범을 충실히 따른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어서 한국적인 것을 표상해야 할 부담이 적기도 했으나, 애초에 이는 그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역시 그의 설계로 2002년 완성된 서울역사박물관이 좋은 예다). 김종성은 기본 모듈이 반복되면서 만들어내는 전체의 질서를 힐튼호텔에서 선보였다. 정부의 규제에 따라 건물 전체 규모가 23층에서 19층으로, 다시 23층으로 바뀌면서 건물의 비례가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 모듈을 이용한 반복과 질서는 유지되었다.

힐튼호텔의 모듈은 기본 객실 하나의 폭인 3.8m이다. 전면 사진에서 보이는 한 칸의 폭이다. 이것이 두 배로 합쳐진 7.6m는 기본 기둥 간격이 된다. 기둥 간격이야 거의 모든 건물에서 일정하니 이 모듈 자체가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규칙을 구조에 그치지 않고, 공간구획, 외관에 이르기까지 건물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규칙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드러내는 비례 감각을 보여주는 건물은 무척 드물다. 1980년대 한국에서 이런 질서와 비례를 구축할 수 있는 건축가는 김종성밖에 없었다. 김종성은 “자유롭기 위해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미스의 금언을 증명해 보였다.

미스는 질서를 건물의 입면에 드러내는 것으로 명성을 날렸다. 구조용으로 널리 쓰이는 철제 형강(形鋼)이나 알루미늄 형강을 커튼월(건물의 무게를 지탱하지 않는 외벽)의 재료로 사용했다. 고층건물의 각축장인 뉴욕에서도 손에 꼽히는 걸작인 시그램빌딩 등에서 사용한 이 방식은 미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금속 형강 커튼월을 이용한 미스의 건물들은 20세기 예술사에서 산업생산품을 아름다움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예로 평가받는다. 힐튼호텔은 미스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에 있다. 건물 입면에서 3.8m 모듈의 리듬을 강조하는 수직 부재에다, 알루미늄을 압출해 형강을 만들고 그 위에 브론즈빛이 감도는 마감재를 발라 완성했다. 같은 색으로 마감된 입면의 금속면, 어두운 색유리와 함께 이 수직선은 건물 전체를 단단한 금속 덩어리로 보이게 하면서도, 육중하거나 둔탁하지 않고 정교하고 예리한 인상을 부여한다. 시그램빌딩의 커튼월을 제작한 업체가 힐튼호텔 커튼월 생산과 설치 전 과정을 감독했기 때문에 외벽의 정밀도와 수준은 대단히 높다. 김종성은 힐튼호텔의 시공 완성도가 미스 건물에 거의 근접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예외 없이 반복된 듯한 기본 모듈, 산업생산품의 적극적 채용, 보편적 질서의 추구로 힐튼호텔이 차갑거나 기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풍요로운 자재를 사용한 로비는 재료의 물성이 선사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며 엄격한 질서의 부담감을 중화한다. 이탈리아 트래버틴과 녹색 대리석, 미국산 오크 패널이 바닥과 벽면에 차가운 금속과는 다른 여러 질감을 선사하고, 황동으로 마감된 난간 손잡이와 기둥은 재료의 다채로움을 더한다. 1983년 준공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재 모습에서 힐튼호텔이 선사한 이 풍요로움이 얼마나 낯선 것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힐튼호텔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은 위기에 처했다. 올해 3월 힐튼호텔이 자산운용회사에 매각된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다. 철거 후 주거복합시설을 건립한다는 계획이었다. 6월에는 매각 철회, 10월에 다시 매각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번에는 힐튼호텔을 허물고 새로운 고급호텔을 건립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지속에 따른 호텔업의 부진, 서울역 주변이라는 매력적인 위치 등 여러 요인이 철거 후 신축이라는 계획을 세워보게 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용적률이다. 대지 면적에 따라 지을 수 있는 건물 전체 바닥 면적을 말하는 용적률은 현대 도시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행위의 최종 결정권자나 마찬가지다. 전국의 아파트 재건축을 가능케 하는 첫 번째 동인 역시 용적률이다. 힐튼호텔 일대를 재건축할 경우 늘어나는 면적이 1.5배에서 2배에 가깝다.

땅에 잠재된 이 ‘자본’을 이길 수 있는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건축주의 변덕, 정치인의 야심, 자본의 욕심 앞에서 아름다움은 그리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보편적인 미적 기준을 설정하기가 어려운 요즘, 아름다움과 완성도는 취향의 벽조차 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존해야 할 탁월함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부정하기가 어렵다.

힐튼호텔은 대기업과 해외 자본, 국가 정책이라는 외부적 조건에 의해 지어질 수 있었고, 40여년이 지나 다시 자본의 논리라는 외부 상황에 따라 위기에 처했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현대 건축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그 유산을 전승할 수 있을까? 오랜 숙고와 상상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질문이다.

■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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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을 비롯해 <김정철과 정림건축>(편저),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공저) 등을 쓰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등의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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