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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볼넷 폭탄이던 쿠바 특급, 영점 잡고 KBO리그 MVP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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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올 시즌 KBO리그 최고의 별로 뽑힌 아리엘 미란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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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미란다(32·두산 베어스)는 '미완의 대기'였다. 열여덟 살이던 2007년 쿠바리그에 데뷔, 2015년 5월 미국 메이저리그(MLB) 볼티모어 오리올스 구단과 계약했다. 시속 150㎞를 던지는 왼손 파이어볼러로 잠재력이 무궁무진했다. 2016년 8월 트레이드로 그를 영입한 제리 디포토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은 "빅리그에서 던질 준비가 된 네 가지 구종을 구사하는 파워풀한 왼손 투수"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미란다의 MLB 커리어는 2018년 막을 내렸다. 고비마다 제구 난조에 발목이 잡혔다.

미란다는 2018년 7월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 명문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두 시즌을 뛰었다. 문제는 또 제구였다. 2년 차이던 2019년 86이닝을 소화하며 볼넷 48개를 허용했다. 몸에 맞는 공 2개를 더하면 사사구와 탈삼진(58개) 비율이 1대1에 가까웠다. 첫해 1점대였던 평균자책점이 4점대까지 치솟았다.

일본에서도 기회를 잃은 미란다의 탈출구는 대만 프로야구(CPBL)였다. 미란다는 지난해 CPBL 중신 브라더스에서 10승 8패 평균자책점 3.80을 기록했다. '타고투저' 기조가 심한 CPBL에서 반등했지만 제구 불안은 여전했다. 최소 100이닝을 소화한 CPBL 투수 13명 중 볼넷 비율(8.9%)이 가장 높았다. 시즌이 끝난 뒤 KBO리그 여러 구단이 그를 체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로 외국인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CPBL까지 시장을 확대, 후보군으로 염두에 뒀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단이 마지막 단계에서 발을 뺐다. A 구단 외국인 스카우트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대만에서 뛰었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더 큰 문제는 볼넷이었다"고 말했다. 미란다는 두산과 지방 A 구단의 영입 경쟁 속에 '쿠바 친구' 호세 페르난데스가 뛰고 있던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출발은 불안했다. 개막 후 5월까지 9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 3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다. 9이닝당 삼진이 12.99개로 리그 1위였다. 하지만 볼넷도 9이닝당 5.89개로 많았다. 한 경기 잘 던지고 한 경기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계약 전 우려했던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김태형 두산 감독은 5월 말 "기복 심한 투구를 계속 이어가면 (남은 시즌 동행 여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좋지 않은 패턴을 반복해선 곤란하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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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하는 미란다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 3차전 kt wiz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5회초 두산 선발 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역투하고 있다. 7회 다중촬영. 2021.11.17 hih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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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는 공개 경고 이후 바뀌었다. 두산은 선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환경을 만들어줬다. 오프시즌마다 호흡을 맞춘 트레이너 네스토 모레노가 5월 중순 입국해 자가격리를 마친 뒤 6월 초부터 그의 체력 관리를 도왔다. 심리적 안정을 찾고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니 성적이 따라왔다. 6월 이후 선발 등판한 19경기에서 9승(2패)을 쓸어담았다. 그는 "개막 초반에는 KBO리그 타자들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야구에 맞는 투구 방식으로 수정한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미란다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으로 시즌을 마쳤다.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공동 1위,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다. 특히 225탈삼진으로 최동원(당시 롯데)이 1984년 세운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223탈삼진)을 무려 37년 만에 갈아치웠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미란다는 올 시즌 직구(60.7%)와 포크볼(25.5%) 비율이 높았다. 선발로 보기 드문 투 피치 유형에 가까웠지만, 타자들은 그를 무너트리는 데 실패했다. 영점 잡힌 '쿠바 특급'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미란다는 29일 서울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린 2021 KBO 시상식에서 프로야구 최고의 별로 뽑혔다. 그는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와 각 지역 언론사 취재기자 115명이 정규시즌 종료 뒤 참여한 최우수선수(MVP) 투표에서 920점 만점에 588점을 얻어 이정후(키움 히어로즈·329점)를 제쳤다. 외국인으로는 3년 연속이자 역대 7번째 MVP에 올라 상금 1000만원과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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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쏠 KBO 한국시리즈’ 3차전 kt wiz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4회초를 마친 상황 두산 선발 미란다가 무실점 호투를 펼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기뻐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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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에 불참한 미란다는 구단을 통해 "MVP라는 상 자체가 올해 KBO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상인데 매우 영광이고 한 시즌 동안 시즌이 긴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를 잘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따라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신인왕은 이의리(KIA 타이거즈)에게 돌아갔다. 이의리는 총점 417점을 획득, 368점을 얻은 경쟁자 최준용(롯데 자이언츠)를 제쳤다. 타이거즈 선수로는 1985년 이순철(현재 SBS 해설위원) 이후 36년 만에 최고의 신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을 받아 영광이다. 후반기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경쟁자) 준용이 형에게도 '멋있었다'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중현·안희수 기자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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