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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의 '新부기맨'은 어떻게 美 정치를 뒤흔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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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이민자들이 만든 국가 미국에서 인종문제는 태생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1863년 노예해방, 1963년 민권법 제정 등을 통해 인종적 불평등이 형식적으로 해소된 듯 보이지만 2021년 현재에도 인종주의는 여전히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지난 19일 시위 현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중태에 빠뜨렸던 18세 백인 소년 카일 리튼하우스가 '무죄' 평결을 받은 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폭증한 아시안 혐오범죄 등이 그 방증들이다.

백인 우월주의를 부추겨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이 2020년 대선에서 패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민주당)가 들어서면서 '공화당 주(레드 스테이트)'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비판적 인종이론(Critical Race Theory, CRT) 교육 반대' 움직임도 미국에서 인종주의가 갖는 힘을 보여준다.

'CRT 교육 반대'는 트럼프가 장악한 공화당에서 민주당 세력을 상대로 벌이는 '문화 전쟁(Culture War)'에 속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한국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정 한국사 교과서' 사태를 연상시키는 2020년대 미국 내 역사 교육 논란의 정치사회적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이전 기사 바로 가기 : '트럼프 문화전쟁'의 격전지가 된 미국의 학교 ①,  백인 학부모들 눈엔 노벨평화상 수상자 전기도 '불온서적'?②)

"공화당은 지난 30-40년 동안 선거 때마다 '부기맨(bogeyman, 귀신이나 도깨비 등 두려운 존재)'을 만들고 이게 여러분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켜 표를 얻는 전략을 써왔다. 비판적 인종 이론(CRT)도 그런 '부기맨' 중 하나라고 보여진다."
장성관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사무차장은 <프레시안>과 화상 인터뷰에서 CRT 반대 여론이 지난 대선 전후로 급부상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197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도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후보는 '복지의 여왕(welfare queen)'을 내세워 큰 재미를 봤고 이를 발판으로 1980년 대선에서도 승리하게 됐다. '복지 여왕'은 수십개의 가명을 이용해 정부로부터 복지 혜택을 잔뜩 받아 고급 자동차인 캐딜락을 몰고 다닌다는 한 흑인 여성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나중에 '복지 여왕'은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임이 밝혀졌지만 이는 레이건의 앞길에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다.

1988년 대선 때 조지 H.W 부시 캠프는 윌리 호튼이라는 흑인 살인범과 관련된 광고를 내보냈다.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었던 호튼은 당시 매사추세츠 주에서 시행되고 있던 '죄수 주말 휴가 제도'를 이용해 휴가를 나왔다가 한 백인 커플을 납치한 후 남자를 폭행하고 여자는 강간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부시 진영에선 이 사건을 활용해 자신이 당선되면 법과 질서 수호를 최우선하겠다고 강조했고, 이 광고는 백인 유권자들의 표 결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경 장벽'도 동일한 전략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면서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것을 최우선 공약으로 삼았다.

프레시안

▲장성관 KAGC 사무차장 


'CRT 교육 반대'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어떻게 활용 됐나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지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난 4년 대통령 권력을 활용해 세를 키워놓은 '트럼피즘'(트럼프식 정치)마저 퇴조한 것은 아니다. '트럼피즘'은 꺼내든 깃발이 국경 장벽 건설이든, 법과 질서 수호이든, 지지자들의 문화와 가치를 '적'들에 맞서 지키겠다는 약속의 형태를 띤다. 이는 보수적 백인들과 기독교(복음주의)이 중시하는 주제들의 다양한 변주의 형태를 띠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시기에 '집토끼'들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집중하는 문화 전쟁의 주제는 마스크 착용-백신 접종 반대, 낙태 금지, 총기 소지의 자유, 성소수자 반대, CRT 교육 반대 등이다.

CRT 교육 반대는 특히 트럼프의 과격한 선동 정치에 거부감이 있는 중도 성향(중산층, 고학력, 교외지역 거주자)의 유권자들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공화당 입장에서 매우 유용하다. 이는 지난 2일 있었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확인됐다.

공화당 성향의 여론조사기관인 '퍼블릭 오피니언 스트레터지'는 지난 6월 버지니아 페어팩스와 라우던 카운티에 거주하는 유권자 4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지역은 워싱턴DC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가족 단위로 많이 거주하는 교외 지역(Suburb)에 속한다. 지난 대선 당시 바이든 지지 성향이 우세했던 이들 지역에서도 공립학교에서 CRT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50%에 달했다. "찬성한다"는 유권자는 42%에 불과했다. 공화당 지지자의 86%가 반대한다고 밝혀, 반대 의견을 주도했지만, 무당파 유권자의 과반 이상(57%), 민주당 유권자의 4분의 1(23%)도 'CRT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일 선거에서 2009년 이후 12년 만에 공화당 출신으로 버지니아 주지사가 된 글렌 영킨은 이런 민심을 재빨리 간파하고 선거 캠페인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영킨은 유세 과정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인종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도록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집단은 억압자이고 다른 집단은 희생자라고 나누고, 서로 적대시하고, 꿈을 훔치는 교육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주지사가 된 첫날 나는 비판적 인종 이론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영킨 측은 또 민주당 후보 테리 매컬리프가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지에 대해 학부모들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학부모는 중요하다"(Parents matter)를 구호로 내세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1년 넘게 지속된 휴교와 온라인 수업 등으로 학교 교육에 불만이 쌓였던 학부모들을 자극했다. 결정적으로 영킨은 트럼프의 지지를 받았지만, 유세 현장에 트럼프를 부르지 않는 등 트럼프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영킨은 트럼프가 없는 선거에서 트럼프와 적절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특정 이슈를 통해 보수와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했다. <가디언>은 지난 3일 "공화당은 영킨의 공식을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도 교외 지역의 유권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사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2년 중간선거, 이미 민주당에 불리한 판세

전문가들은 바이든 집권 후 처음 치러지는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집권 후 첫 중간선거에는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작동해 거의 매번 야당이 큰 승리를 거뒀다.

장성관 사무차장은 "미국 역사상 집권 여당이 중간선거를 통해 의석을 늘린 경우는 대공황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고 난 뒤(1934년), 빌 클린턴 탄핵 시도 직후 공화당이 역풍을 맞았던 때(1998년), 9.11 테러 공격 후(2002년) 등 세 차례 밖에 없다"며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008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 탄생에 대한 역작용으로 극우 세력인 '티파티((Tea Party)' 광풍이 불었던 2010년 중간선거 때와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당시 민주당은 하원에서 63석을 잃었다. 

지난 2일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도 이런 유권자들의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코넬 장 럿거스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서면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고 1년 후에 있었던 2009년 선거 때도 공화당이 버지니아 주지사와 뉴저지 주지사를 모두 차지했다. 반대로 트럼프 집권 후 치러진 2019년 선거에서 공화당 세가 강한 켄터키 주지사와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런 큰 구조적 패턴을 고려할 때 202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사실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인플레이션, 공급망 문제,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 등 경제 문제가 핵심적인 이슈로 부각될 수 있다. 경제 이슈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집권 세력이 비난을 받게 되는 이슈"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공화당은 낙태, 트랜스젠더의 운동 경기 참여, 코로나19 백신 등 다양한 문화전쟁 주제로 <폭스뉴스> 등 보수언론을 통해 여론전을 벌여왔다"며 "CRT 반대는 우파와 <폭스뉴스>에서 새로운 무엇이 나올 때까지 문화전쟁 이슈 중 가장 새로운 최전선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문화전쟁'은 기존의 '집토끼'를 넘어서 일부 중도,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까지 넘보는 기획이라고 보여진다.

"트럼프 문화전쟁,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공동의 노력"

필립 콥런드 보스턴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CRT 교육을 금지하려는 노력은 특히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인종적 과두정치를 유지하는 정치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의 다른 전략으로는 유권자 탄압, 당파적 게리멘더링(선거구 조정), 시위 범죄화, 학자·교육자·언론인·활동가들의 입을 막으려는 노력, 지난 1월 6일 있었던 의사당 테러와 같은 정치적 폭력 등이 있다. 이런 전략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훼손하려는 공동의 노력이며, 궁극적으로 다수의 희생을 통해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보수적 백인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문화전쟁'의 이슈가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유권자들에게 효능감을 주는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성관 사무차장은 "바이든 정권 취임 10개월이 지났지만 평균적인 서민들의 입장에서 인정할만한 이렇다할 성과가 없고 민주당은 집안 싸움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좀더 서민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메시지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공격 지점인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좌우되는 기득권 정당"이란 비판에서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벗어나는 것만이 '트럼피즘'의 다양한 변주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대응이다. 장 사무차장은 "공화당 전략가인 칼 로브 전 백악관 고문(그는 아들 부시의 '킹 메이커'라는 평가를 받는다)이 공화당이 모든 주의회를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레드 맵'이라는 프로젝트를 주장했던 것처럼 민주당이 좀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서민들의 삶에 밀착된 정책과 인물을 발굴하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2020년 인구 센서스 결과, 미국에서 백인 인구는 57.8%로 처음으로 6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인구조사국은 2045년쯤 백인 인구가 미국 전체 인구의 5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하나 이상의 인종적 정체성을 가진 인구는 2010년에 900만 명에서 2020년엔 3380만 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백인 우월주의를 자극하는 '트럼피즘'은 이런 현실에 대한 백래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다인종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압도적 다수의 지위를 잃어가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낀 일부 백인들이 기존의 특권과 특혜를 유지하려면 '민주주의'라는 틀을 훼손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난 1월 6일 의회 무장 폭동 사건은 여실히 보여줬다. 이는 2022년 중간선거만이 아니라 앞으로 미국 정치와 사회를 뒤흔드는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트럼프 '문화전쟁'은 지난  1월 6일 있었던 의회 무장 난동 사태처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 ⓒCNN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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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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