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책 하나로 맺어진 ‘김동수 선생 유산’ 책으로 나눕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원광대 이재봉 교수 ‘책 나눔’ 화제

이메일 소식지 ‘남이랑북이랑’ 통해

‘평화통일 관련 책 5권씩 100명에게’

재미 통일운동가 고 김동수 교수

지난 5월 별세 뒤 ‘유산 송금’

“2015년 ‘이재봉의 법정증언’ 애독”


한겨레

고 김동수 교수가 2006년 미국에서 귀국한 뒤 모교인 숭실대 초빙교수로 활동할 때 모습이다. 숭실대 제공


“김동수 선생의 유산 나눠 드립니다.”

통일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이재봉 원광대 교수가 지난달말 전자우편으로 발송한 ‘남이랑북이랑’ 소식지의 제목이다. 그는 1999년부터 ‘남이랑북이랑’을 통해 펼쳐온 활동을 인정받아 2019년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았다.

“지난 5월 미국에서 돌아가신 김동수 교수(장로)의 유산을 좀 물려받았습니다. 고인 유언에 따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제가 재산 일부를 상속 받은 거죠. 다양한 사회사업과 평화운동으로 재산 모을 틈이 없었을 텐데도 ‘전두환 전 재산’의 7배나 보내주셨습니다. 선생의 거룩한 삶과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기리며 평화와 통일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여러분에게 조금씩 나눠 드리겠습니다.”

이 교수는 “선생의 값진 유산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곰곰 생각하다 책 선물을 떠올렸다”며 책 5종을 골라 100명에게 나눠주기로 하고, 새달 13일까지 신청을 받고 있다. 그가 이처럼 책을 나누기로 한 까닭은 고 김동수 선생과 인연이 오로지 책으로 맺어진 까닭이다.

“2015년 어느 날 <이재봉의 법정증언>을 감명 깊게 읽었다며 김 선생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30권을 구입해 지인들에게 나눠주셨다더군요. 따로 책 4권도 보내주셨어요. 김 선생 선친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한 <김예진>(쿰란, 2010), 모친의 기록 <나라 사랑의 가시밭길에>(쿰란, 2010), 김 선생의 산문집 <귀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공짜>(한울, 2012), 시집 <오늘의 이별은>(서울문학출판, 2013). 그렇게 책을 통해 서로 알게 된 겁니다.”

고 김동수 교수는 1936년 북한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부모를 따라 내려온 뒤 56년 숭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1960년대 미국에 유학해 피츠버그 대학에서 목회학 석사와 사회사업학 석사를 받았고, 1976년 시카고대학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노퍽주립대학에서 3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 박정희 유신독재가 시작되자 시카고지역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이끌다, 80년대부터는 남·북한을 오가며 평화와 통일에 헌신했다. 2005년 은퇴한 뒤 이듬해 귀국해 한동대와 숭실대 등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한겨레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게 희생당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묻힌 선친 고 김예진 목사의 묘를 참배한 고 김동수 교수. 유족 제공


이 교수는 김 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 제목으로 썼던 글을 통해 고인과 집안 내력을 소개했다.

‘1898년생 아버지 김예진은 1917년 평양숭실대 2학년 때 자주독립을 위한 애국 연설하다 무기정학 당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평양숭실대 주도자로 체포돼 감옥에 갇혔습니다. 출옥 뒤 상하이로 탈출해 김구와 활동하며 평안남도 도청에 폭탄을 던지기도 하고 상하이 일본영사관 폭탄 투척에도 연루되어 평양으로 압송당해 다시 투옥됐고요. 나중에 평양신학교 졸업해 목사가 되었고, 해방 후 남쪽에 내려와 10여개 교회 개척하고 신학교수도 지냈습니다. 한국전쟁 중 서울서 북한군에 잡혀 총살당하고,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혔습니다.’ ‘1895년생 어머니 한도신은 독립운동가 아내로 모진 고초 겪으며 평생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1919년 수많은 태극기를 만들어 3·1운동에 참여했고, 1922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김구, 안창호, 여운형 등을 가까이 모시면서 항일투쟁에 헌신한 거죠. 친정이 평양 김일성 집안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해방 후 김일성 권유대로 평양으로 가지 않고, 김구 따라 서울로 들어와 1949년 6월 경교장에서 백범의 죽음을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1963년 서울시 모범어머니상을 받았습니다.’

이 교수는 “목사 아버지가 한국전쟁 중 서울에서 북한군에 체포돼 가슴과 등에 ‘민족반역자’와 ‘딸을 미제에 팔아먹은 목사놈’이란 죄패를 두르고 끌려다니다 처참하게 총살당했는데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가르침에 따라 민족화해와 협력에 앞장선 분”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을 이어준 <이재봉의 법정증언>(들녘, 2015)은 이 교수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북한 연구나 통일운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양심수들을 위해 10여 차례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을 풀어쓴 책이다.

이 교수는 이 책과 관련해 고인의 부인 백하나 교수가 엮은 김 선생의 팔순기념 회고록 <하나 됨을 위하여>(한울, 2016)에 나오는 일화도 소개했다.

“2015년 4월 김 선생께서 평양에 들어갈 때 여행 중 읽던 책 2권을 공항 세관에서 압수당했답니다. ‘조국에서는 외부의 서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선생 나가실 때 다시 가져가도록 여기 보관해 놓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 중 한 권이 <이재봉의 법정증언>이었다는군요. 일주일 뒤 평양 떠날 때는 기차를 이용하는 바람에, 안내를 맡던 해외동포원호회 부국장에게 공항 세관에 보관 중인 제 책을 선물로 드렸답니다.” 김 선생은 이 일화와 관련해 “혹시 의도하지 않은 밀수출로 저자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반대로 외지 무료 택배 봉사를 고마워하지 않을지 궁금하다. 혹시 고무줄 같은 국가보안법 어느 조항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덧붙였다고 했다.

또 다른 3권은 평화운동가인 정지석 목사가 운영하는 철원 국경선평화학교에서 2016년 펴낸 ‘석학과의 대화’ 강의록 시리즈로, 각각 100쪽 안팎 소책자이다. <피스메이커 김동수 이야기> <피스메이커 한완상 이야기> <피스메이커 서광선 이야기> 등이다. <통일대담: 역사.문학.예술 전문가에게 듣는 평화와 통일>(사람과사회, 2020)은 이 교수가 진행한 ‘2020년 원광대 명사초청 통일대담’ 수업에서 역사, 문학, 예술 분야 최고전문가들과 나눈 이야기를 풀어준 책이다. 이재봉·박맹수·한완상·이만열·한홍구·정창현·황석영·임헌영·신학철·백자·권병길·김재용 공저이다.

“선생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반도 민주화와 통일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는 원로 언론인을 비롯해 110명 정도가 신청을 했어요. 출판사들은 유산 분배에 적극 동참하겠다며 책값 받지 않겠답니다. 유산 신청자 중엔 10배 송료를 보낸 분도 계시고, 청년학생을 위해 대신 2배 송료 보낸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교수는 지난 2주 사이 6천여명의 이메일 수신자들로부터 들어온 다양한 호응을 전하며 “재고가 없어 부족한 책도 있지만 다른 책으로 골라 보낼 수 있다”며 추가 신청을 요청했다. 전자우편(pbpm@hanmail.net)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