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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르포]"정말 너무 힘들죠" 연말 특수 사라진 을지로 인쇄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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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확진자 4000명…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단계적 일상회복 휘청…을지로 '인쇄골목' 소상공인들 '한숨'

아시아경제

서울 중구 인현동 '을지로 인쇄골목'. 사진=윤슬기 기자seul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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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정말 너무 힘들어요, 맨날 놀고 있습니다.", "일 접을까 말까 수십번 고민했죠."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과정에서 신규 확진자가 또 다시 4000명을 넘어서고, 새로운 신종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까지 나오면서 자칫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예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한숨만 나오고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인쇄골목 역시 마찬가지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송년회 모임에서 쓰일 각종 현수막이나 다이어리 등 각종 주문이 밀려들어야 할 상황이지만, 코로나19 재확산 불안감으로 모임도 줄고, 경기가 어렵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문량도 줄어들고 있다.

위드 코로나 도입 이후 그간 경제적 피해를 입었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짐이 덜어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임대나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을지로 인쇄골목이라 불리는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역과 충무로역 사이에 있는 을지로18길은 중소규모 인쇄소 5천여개가 모여있다. 1980년대부터 크고 작은 인쇄소가 밀집된 이 지역에서는 일반 인쇄, 명함, 스티커, 달력, 다이어리, 청첩장, 팜플렛 등 종이와 관련된 다양한 제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기획부터 후가공까지 모든 인쇄공정 처리가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의 인쇄골목이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60대 유모씨는 자신이 40년간 상장과 상장 케이스를 만드는 인쇄업을 했다며 "코로나 때문에 몇번이나 장사를 접으려 했다"라고 코로나19 시기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씨는 "코로나 터진 작년보다 올해가 더 어려웠다"라며 "작년에는 정부기관에서 이미 짜놓은 예산이 있어서 주문이 그나마 들어왔지만 올해는 정부가 행사도 줄이고 덩달아 예산도 줄이면서 너무 어려워졌다. 매출 절반이 날아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5월에는 임대료도 못 낼 정도로 어려웠다"라며 "다른 인쇄소도 그렇고 폐업할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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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인현동 '을지로 인쇄골목'. 영업시간이 한창이지만 군데군데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띈다. 사진=윤슬기 기자seul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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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밝히면서 "이 일을 접을까, 말까 수백번 고민했다"라며 "코로나 전에도 인쇄 시장이 어려웠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그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려워졌다. 근데 내가 장애인이다보니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도 힘들고 해서 어려워도 참고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쇄소 사정도 마찬가지었다. 전단지, 청첩장 등 각종 인쇄물을 제작하는 일을 하는 60대 박모씨는 "지금도 인쇄 기계를 다 놀리고 있다"라며 "지금도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아침에 출근해 하루 종일 영업하지만 일이 없어 오락하다 집에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가게에 있는 3대의 기계 중 작동 중인 기계는 1대뿐이었다.

박씨는 또 "내년에 대선이 있지만 대선 관련 팜플렛은 만드는 업체가 다 따로 정해져 있어 '대선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여전히 자영업 경기가 안 좋다보니 팜플렛을 만들려하지 않고 인쇄소는 똑같이 힘들다. 코로나 이후 매출이 50%가 줄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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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인현동 '을지로 인쇄골목'에 위치한 한 인쇄소. 일감이 없어 인쇄기계가 작동을 멈췄다. 사진=윤슬기 기자seul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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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인쇄업을 하는 50대 김모씨도 "큰 업체들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들은 아직도 힘들다"라며 "들어보니 주변에 일 접는다는 인쇄소가 많다. 나도 일이 없어서 놀다가 집에 가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이어 김씨는 "너무 오랜 기간 힘들다보니 기대감을 잃은지 오래"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제지연합회의 2021년 국내제지 산업 월별수급 현황에 따르면 올해 1~8월 인쇄용지 생산량은 약 163만t으로 작년 같은 기간(약 152t)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생산량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인쇄업계의 시름은 깊은 것으로 보인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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