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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작은 치킨은 맛없다? 상관없다? 1.5㎏ 닭은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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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 "한국 육계 작고 맛없는 건 객관적 사실" 주장
양계협회 "작은 닭 인정...맛은 다르지 않아" 반박
전문가 "소비자에 더 많은 선택권 줘야"
한국일보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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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닭'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치느님'을 두고 한 주 내내 떠들썩했습니다. 치킨값이 2만 원으로 오른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의 한숨이 나오던 터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최근 "한국 육계 치킨이 비싸기만 하지 작아서 맛없다"고 주장하면서 때아닌 치킨 논쟁이 벌어진 건데요.

이에 생산자 단체인 대한양계협회는 "소비자가 작은 닭을 선호해서 그런 것"이라고 반박한 것도 모자라, '정신병자', '매국노'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황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양측이 한바탕 설전을 펴고, 공개토론도 제안했습니다. 정말 한국 치킨은 작아서 맛이 없는 걸까요? 소비자가 작은 닭을 선호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황씨는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한국 육계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고 그래서 치킨이 맛이 없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8일 "치킨으로 요리되는 닭인 육계는 전 세계가 그 품종이 동일하다"며 "세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1.5㎏ 소형으로 키우고, 외국은 3㎏ 내외로 키운다"는 지적을 이어 간 것이었죠. 그는 "3㎏ 내외의 닭이 1.5㎏ 닭에 비해 맛있고, 고기 무게당 싸다는 것은 한국 정부기관인 농촌진흥청이 확인해주고 있다"며 '양계정책 및 경쟁력 강화방안-대형육계 생산기술과 경제적 효과'라는 관련 자료도 덧붙였습니다.

황씨가 언급한 2015년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보고서는 국내에서 약 30일 키운 1.5㎏ 정도 되는 육계와 이 닭을 열흘 정도 더 키워 2.8~3.0㎏인 대형육계를 비교했습니다. 일단 10일 더 키우면 살아 있을 때 무게인 생체중은 1.9배, 가슴살은 1.9배, 다릿살은 1.6배가 더 커져 부분육 가공이 가능한 크기가 됩니다.

1.5㎏ 닭보다 3㎏ 닭에 감칠맛 성분, 조미료 원료 성분 더 많아

한국일보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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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키운 닭고기의 가슴살은 지방 함량이 0.12%였지만 42일을 키우면 0.46%로 3.8배가 늘어나 "지방이 불필요하게 높을 필요는 없으나 적절한 지방은 고기의 풍미와 감촉을 좋게 한다"고 쓰여 있네요. 또 조미료의 원료로 쓰이는 맛 물질 '글루타믹산(글루탐산)'은 대형닭에서 0.78% 높고, 감칠맛과 관련 있는 핵산물질인 이노신(Inosine)은 30일 키운 닭에서 121㎎/100g이었으나 더 크게 키웠을 때 131㎎/100g으로 8% 정도 늘어났다고 해요.

고기의 쫄깃함을 결정하는 '전단력'은 30일 키운 닭고기는 1.66㎏/0.5inch2로 퍽퍽하다는 느낌을 주는 데 반해 40일 정도 키운 대형닭 고기는 2.10으로 토종닭 같은 식감을 줍니다.

중요한 필수지방산(리놀레닉산, 리놀레익산, 아라키돈닉산)도 소형닭고기 가슴살이 23.06%, 대형닭고기는 29.31%로 사육 기간이 길면 함량이 늘어났고, 뇌의 주성분으로 기능성을 발휘하는 EPA와 DHA 지방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EPA 지방산은 일반닭고기 0.30%, 대형닭고기 0.45%로 1.5배, DHA 지방산은 일반닭고기 0.69%, 대형닭고기 1.29%로 1.9배 높네요.

반면 1㎏당 생산비는 더 낮네요. 암수 분리해 대형육계 생산 시 수컷의 생산비는 828원으로, 1.5㎏ 정도의 소형육계 생산 시 ㎏당 생산비(1,168원)보다 29%가 절감됐습니다. 다만 대형육계 암컷은 생산비가 1,286원으로 더 높네요. 암수 평균 하면 1,058원으로, 소형 육계보다 9% 더 낮습니다.

양계협회 "작다고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맛 성분 미묘한 차이일 뿐"

한국일보

대한양계협회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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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보면 황씨의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보고서에는 "맛과 연관된 영양소가 어린 닭에 더 많이 함유돼 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같은 연구기관인 국립축산과학원이 2012년 '한국가금학회지'에 펴낸 '사육일력이 육계의 가슴 및 다릿살의 아미노산·지방산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다리육의 경우) 아미노산 중에서 가장 많이 함유한 성분이면서 맛과 관련이 있는 글루탐산 함량은 30일령 3.09%, 36일령 2.91%, 42일령 2.76%로 사육 기간이 경과할수록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지방산에서 가장 많은 함량을 나타내는 올레닉산(oleic acid)은 가슴육에서 30일령에서 29.88%, 36일령 29.07%, 42일령 25.47%로 사육일령이 경과할수록 감소했다"는 구절도 보입니다. 보고서는 "지방산 조성에 따라 식육의 맛과 풍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특히 쇠고기의 경우 불포화 지방산인 올레닉산 함량이 높을 경우 일반적으로 관능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사육 연령이 더 작은 닭고기에서 함량이 더 높게 나타나, 쇠고기와 일치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글루탐산 올레닉산과 같은 영양소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황씨가 언급한 자료에 나온 성분 외 다른 여러 성분도 닭고기의 맛에 영향을 주고, 꼭 작은 닭에서 그 성분의 함량이 높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한양계협회도 "학술적으로 연구를 통해 일부 맛을 내는 성분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닭의 크기로 맛이 크게 달라지거나 변화되지는 않는다"며 "닭의 일부 성분함량의 차이로 작은 닭은 큰 닭에 비해 맛이 없다고 단정 지어 마치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닭이 맛이 없는 것처럼 비하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고, 닭고기 산업을 망가뜨리는 행위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은 "과일은 '브릭스'라는 당도로 맛의 기준을 정하지만, 닭고기는 어떤 성분이 얼마 있어야 맛이 있고 없고 기준이 없어 주관적이고, 그 성분이 닭이 커지면서 조금 증가했던 것뿐이지 그걸로 '우리나라 치킨 맛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건 굉장히 잘못됐다"고 강조했습니다.

황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도 있고, 반박할 수 있는 자료도 있어 더 헷갈리네요. 더욱이 우리가 치킨을 먹을 때 "이런 영양소 함량을 생각하고 먹었나?" "우리가 이런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치킨은 튀김옷이나 양념 등 닭고기 자체 외에 맛에 영향을 주는 요소도 많잖아요. "작아서 맛이 없다"고 무 자르듯, 얘기하기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세계서 가장 작은 닭 사용...육계회사 이익 때문? 소비자 선호?

한국일보

양계장.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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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가장 작은 닭을 사용한다는 황씨의 주장은 맞습니다. 축산과학원에 따르면 미국의 육계 출하체중은 2.9㎏(2020년), 일본은 3.0㎏(2018년), 중국은 2.53㎏(2020년 논문)로, 1.5~1.6㎏인 우리보다 훨씬 큰 닭을 사용하네요. 대한양계협회도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작은 닭을 유통하고 있으며, 큰 닭이 경제적이라는 것을 우리도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인정했습니다.

그 이유로 협회는 "대닭을 키워 국내에 보급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으나 소비자들이 1.0~1.5㎏의 적당한 크기의 작은 닭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지금까지 작은 닭 위주의 닭고기 산업이 정착된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서는 황씨와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이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직접 격돌하기도 했는데요. 황씨는 "2010년 정부가 45일령 2.8㎏ 정도 되는 큰 닭을 키우려 시범농장과 치킨가게를 운영했다"며 "저도 먹어봤는데 육즙이 터져나오고 맛있어 치킨가게도 잘 됐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실패한 이유로 그는 "뼈 있는 채로 냉장유통하면 유통기한이 10여 일밖에 안 돼 여러 농장이 협업해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했지만 다른 농가가 참여하지 않았고, 소비할 수 있는 치킨집이 없었다"는 점을 꼽으며 "육가공 치킨 회사와 치킨 프랜차이즈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홍재 회장은 "황씨가 말한 치킨 가게는 5년 만에 문 닫았는데, 소비자들한테 기호가 부합한다면 굉장히 선풍적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며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점을 실패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는 또 "1주일 전에도 불가피한 상황으로 큰 닭이 판매됐다"며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정부가 48시간 이동제한을 발동, 2㎏이었던 닭이 2.5㎏, 3㎏까지 컸는데도 (수요가 없어) 병아리 값인 한 마리당 600원에 팔았다"고 하소연했네요.

또 황씨는 작은 닭 유통이 병아리와 사료 등을 공급하며 수직 계열화 육계회사의 구조와 연관됐을 가능성을 주장했는데요. "적은 수의 큰 닭을 사육하기보다 작은 닭을 많이 키워 팔아야 병아리와 사료를 더 많이 팔아 이득"이라는 겁니다.

이에 이 회장은 "계열화된 닭고기 가공업체들도 결국 닭을 팔아서 돈을 버는 거지. 병아리 사료 팔아서 돈을 버는 건 아니다"라며 "완전히 음모론"이라고 강력 반발했습니다. 그는 "대형 닭고기 업계도 큰 닭의 원가가 더 싸 2.5~3㎏ 큰 닭을 키우기 원해 농가에 인센티브를 줘 가며 시도했지만, 시장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항변했습니다.

전문가 "소비자들이 큰 닭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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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황씨나 양계협회 어느 한쪽을 편들지는 않았습니다. 육계업체의 사업 구조, 식문화와 조리법 등 여러 가지 요인이 1.5㎏ 작은 닭 유통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합니다.

김천제 건국대 축산식품생명공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1.5㎏이) 1인분 삼계탕으로 끓이기에 딱 맞고, 튀김도 닭이 너무 크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위에 따라 잘 안 익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된 것인데, 전체적으로 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닭고기를 다양하게 소비하거나 소비자들이 1.5㎏이든 3㎏이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외국은 닭고기에 버터를 발라 그릴에 구워 먹거나 닭고기 육포, 소세지도 만들어 다양하게 먹지만, 우리나라는 닭고기 요리가 삼계탕, 튀김, 닭볶음탕 등에 한정돼 있다"며 "살이 많은 큰 닭을 가공해 다양한 닭고기 제품을 개발하고, 또 닭고기 시장을 키워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습니다.

'맛없는 치킨' '작은 닭'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치킨값이 주기적으로 올라도 정작 소비자들은 그만큼 만족을 느끼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 누적된 측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황씨는 "우리 닭이 작아진 데에는 치킨 중심의 시장을 조성한 육계 회사가 튀김용의 작은 닭을 시장의 주력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탓이 크다"(25일 페이스북)며 재차 불쏘시개를 자임했는데요. 그의 노력으로 소비자에게 어떤 유리한 변화가 만들어질지, 궁금해집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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