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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중국에 정면도전, 여성테니스협회의 '클래스'가 달랐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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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A 사이먼 회장 "비즈니스보다 중요한 것 있다"
최근 2년간 중국 대회 개최 없었지만
2019년 선전에서 파이널 개최, 2030년까지 예정
테니스계는 모두 WTA 결단 지지
"정치 중립" IOC의 태도에는 비판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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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에 참가한 중국 테니스 선수 펑솨이.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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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중국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나 웨이보에 장문을 올렸다. 중국 부총리 출신으로 정권에서 은퇴한 장가오리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불륜 관계를 이어 왔다고 밝혔다. 해당 글은 20여 분 만에 삭제되고, 중국 당국은 다른 '미투(米兎)'에 대해 그렇듯, SNS에 대한 총체적 검열 전쟁에 돌입했다. 약 3주 동안 펑솨이의 행방은 묘연했다.

변화는 중국 바깥에서 시작했다. 여자프로테니스 대회를 총괄하는 여성테니스협회(WTA)가 "펑솨이와 꾸준히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는다"며 걱정했다. 스티브 사이먼 WTA 회장은 "펑솨이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중국에서 아예 철수하는 것도 고려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시태그 #펑솨이는어디에(#WhereIsPengShuai)가 SNS를 뒤덮었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세리나 윌리엄스, 오사카 나오미, 노박 조코비치 등 테니스계 스타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각국 정부에 유엔까지 압력에 동참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의 첩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은 내년 열릴 예정인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나섰다.

이렇게 되니 중국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펑솨이와 영상을 통해 마주 앉았고, 30분 동안 대화했다고 성명을 통해 공개했다. 중국 관영언론은 각종 공개행사에 참석하고 지인과 어울리는 펑솨이의 모습을 공개했다. 적어도 펑솨이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것은 확인됐다.

하지만 IOC 영상에도 불구하고 WTA는 여전히 우려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WTA 대변인은 "최근 영상에서 펑솨이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그가 건강하고 검열이나 강압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두고 WTA의 걱정을 줄이거나 해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변인의 말. "IOC와의 통화는 우리의 요구 사항을 바꾸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펑솨이에 대한 검열이 없는, 성폭행 문제 제기에 대한 완전하고 공정하며 투명한 조사다."

의견①: 사실 WTA는 잃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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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필라 유소년테니스대회 결승전 식전 행사에 참석한 펑솨이가 대형 테니스공에 사인을 하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 쪽에서 해외의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공개한 영상 중 하나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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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A의 이런 대담한 결정은 국제 스포츠 대회를 여는 주체로서는 첫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미국에선 이런 WTA의 태도가 미국프로농구(NBA)의 움직임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는 논평이 쏟아지고 있다. 2019년 대릴 모리 휴스턴 로키츠 단장이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을 공개한 사건을 계기로 피해를 보자 애덤 실버 NBA 총재가 사과한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프로 스포츠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업계도 되도록이면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애쓴다. 금융의 중심 미국 월가는 중국에 막대한 돈을 흘리며 수익을 올린다. 세계 최대 금융투자은행(IB)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JP모건이 중국 공산당보다 오래갈 것 같다"고 '센 척'을 했다가 하루도 되지 않아 유감을 표시하며 체면을 구겼다.

차세대 산업도 중국 시장을 노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중국의 자동차 시장의 무게 중심이 전기차로 바뀌고 있는 흐름에 올라타면서 '시노필(Sinophile·중국 애호가)'이 됐다. 그는 공산당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7월에 "중국의 경제적 번영, 특히 인프라가 놀랍다. 한번 방문해서 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WTA는 왜 다를까. 홍콩자유언론(HKFP)의 프란시스카 추 객원기자는 WTA가 다른 서구 단체들과 달리 중국과의 이해관계가 거의 없어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선수들의 출입이 불가능해지면서, WTA의 모든 중국 경기는 취소된 상태로, 지난 2년 동안 WTA는 중국에서 손실만 보고 있었다.

사실 2019년까지만 해도 WTA는 공격적으로 중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어떤 프로 스포츠보다도 과감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중 하나인 진디(金地·젬데일)가 스폰서 역할을 맡아 2019년부터 10년 동안 WTA 투어 파이널을 중국 선전에서 개최하기로 약정한 터였다. 하지만 2019년의 성공 개최와 달리, 2020년 파이널 경기는 코로나19로 취소됐고, 2021년 파이널은 멕시코로 장소를 옮겨 열렸다.

의견②: 사실 WTA는 잃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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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WTA 파이널이 개최된 중국 선전 선전만체육센터. WTA 제공


하지만 반론도 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통하는 빈과일보(애플 데일리)의 창업자 지미 라이를 대리해 온 마크 사이먼은 해당 칼럼에 대해 "중국에서 WTA 경기가 열리지 않은 것은 손실이 아니라,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은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WTA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에서 여성 테니스 인프라가 발전하면서 당시부터 중국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다. WTA는 일찍부터 아시아 본부를 베이징에 세웠다. 중국의 테니스 선수 리나(李娜)가 스타덤에 오른 것도 WTA의 중국 진출을 가속화했다. 리나는 2011년 아시아 국적자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했고 은퇴 직전인 2014년엔 세계 단식 랭킹 2위까지 올랐다. WTA에서 리나 이후 가장 성공한 중국 선수가 바로 펑솨이다.

2019년 중국 선전에서 열린 WTA 투어 파이널에 걸린 총상금은 1,400만 달러인데 이는 같은 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파이널에 걸린 900만 달러보다 큰돈이다. 스티브 사이먼 WTA 회장은 당시 "WTA 45년사에서 최대 규모의 파이널 계약"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2021년 파이널 장소를 멕시코로 옮기기로 한 9월 WTA 발표 당시까지만 해도 WTA는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선전으로 돌아간다는 방침이었다. 중국의 스트리밍서비스 아이치이(iQiyi)에 WTA 대회 영상이 제공되는 라이선스 계약도 있는데, 기간은 10년이고 규모는 1억2,000만 달러에 이른다.

테니스계: 우리가 아는 펑솨이면 그럴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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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사이먼 WTA 회장.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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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전문 매체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역시 WTA는 중국 투자에 있어서 ATP보다 훨씬 잃을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그들이 돌아선 이유는 WTA가 선수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한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사이먼 WTA 회장이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비즈니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여성은 존중받아야 하고 검열당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으로 요약된다.

SI는 펑솨이와 중국 정부에서 관할하는 중국테니스협회(CTA)의 악연을 고려하면 그가 갑자기 입장을 조변석개할 리 없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펑솨이는 프로 신에 진입하면서 CTA가 자신의 동의 없이 일정을 관리하고 코치진을 편성하는 데 반발했다. CTA 쪽에서 펑솨이의 명성을 훼손하기 위해 악성 루머를 쏟아냈지만, 홍보전은 팬들의 지지를 얻은 펑솨이 쪽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그런 펑솨이가 갑자기 WTA와 직접 대화하지 않고 IOC와 비프로 테니스 대회를 관장하는 국제테니스연맹(ITF), 그리고 CTA를 거쳐 외부와 대화한 것이다. 펑솨이가 본인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사정이다. WTA에서 활동하는 선수, 에이전트, 테니스계의 옛 전설들, WTA 이사회, 팬과 언론이 모두 WTA의 편에 섰다. 이들이 펑솨이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 IOC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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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스위스 로잔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왼쪽)이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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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반대로 뒤집어, IOC는 왜 '친중' '반(反)인권' 행보로까지 비판을 받는 펑솨이와 대화에 나서고 이를 공개했을까.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눈앞이라는 점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IOC는 기본적으로 '모든 정치적 논쟁을 배제'하고 '어느 국가와도 척을 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IOC의 대화 상대는 선수가 아니라, 국가별 올림픽 위원회(NOC)다.

IOC가 특정 국가의 문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와중에 선수 개인의 안전은 무시되기도 한다. 지난 도쿄 하계 올림픽에서는 벨라루스의 육상 선수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가 선수단을 비판했다가 트랙에 서지 못하고 납치당할 뻔했다가 결국 망명길에 올랐다. IOC는 이 사건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여기엔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외부에선 이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본다. 올림픽 헌장 6조는 올림픽 대회를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닌 선수 간의 경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올림픽은 어쨌든 국가 대항전이라는 점이 흥행을 좌우한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현재 최대의 흥행 카드 중 하나는 G2, 즉 미국과 중국의 메달 레이스다.

중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미투'를 검열하고 여성주의 운동을 '외세 개입의 구실'이라며 탄압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유명 인사가 폭로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해외에서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먼라이츠워치(HRW) 같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여성 운동가들이 중국과 IOC를 향해 맹렬한 비판을 쏟아내고, WTA와 연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소피 리처드슨 HRW 국장은 "IOC가 최근 며칠 사이 인권을 대가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지를 보여줬다"며 "중국과 인권침해를 공모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그는 WTA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IOC와 큰 기업들이 WTA라도 여성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보일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라"며 칭찬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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