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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숟가락이 주는 교훈 [우리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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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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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밥상에는 가지런히 놓인 수저가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에서 숟가락은 먹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삶의 면면을 보여주는 대명사이다. ‘숟가락을 들다’는 ‘식사하다’를, ‘숟가락을 놓다’는 ‘죽다’를 완곡하게 이른다. ‘밥상 위에 밥숟가락을 놓고 산다’는 말은 ‘사는 형편이 쑬쑬하여 어지간히 산다’는 뜻이다. 남의 집일을 다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할 때는 ‘뉘 집 숟가락이 몇 갠지 아냐’라고 한다. 숟가락은 곧 가족의 수이자 경제적 형편, 그리고 그 사람들의 근황이다.

또한, 한국말에서 ‘밥숟가락’은 더불어 사는 법을 지적할 때 쓰인다. 어느 사회에나 남의 공로를 가로채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 있는데, 서양에 ‘카이사르(Caesar)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명언이 있다면, 우리말에는 ‘살강 밑에서 숟가락 줍기’가 있다. 부엌에서 떨어져 있는 숟가락을 얻은 일이란 뜻인데, ‘대단치 않은 일 하나 해 놓고 성공한 듯 자랑한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남이 빠뜨린 물건을 얻어서 횡재했다고 좋아하다가 임자가 나타나 좋아한 것이 헛됨’을 말한다. 숟가락에는 다 임자가 있으니, 자기 숟가락을 찾으러 올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나지 않겠는가? 남의 숟가락 줍기처럼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기’도 널리 쓰이는데, 이런 말에서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성을 알 수 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선뜻 내놓으신 고마운 분이 있었다. 장학금을 건네는 행사에 앞서, 진행 담당자가 연락을 해 왔다. 담당자는 이 행사가 전달식인지 수여식인지를 물었다. ‘학위 수여식, 훈장 수여식’처럼 그 기관의 것을 주는 의식은 수여식이다. 한편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것을 전하는 의식은 전달식이다. ‘장학금 전달식, 수재 의연금 전달식’과 같이 쓴다. 자칫 기부한 분의 마음이 상할 수도 있었는데, 담당자의 섬세한 언어 의식이 이런 낭패를 막았다. 장례식장에 간 조문객이 ‘호상’이라 말하는 것도 같은 실수이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 하나, 조문객은 이에 공헌한 바가 없기에 ‘호상’이라 말할 수 없다. 우리 집에 온 손님 앞에서 인사치레를 하더라도 자신이 관여한 일에 대해서만 겸양해야 한다. ‘차린 것은 없지만, 집이 누추하지만’과 같은 인사말은 손님맞이로 며칠 전부터 고생한 아내가 직접 할 말이다. 밥숟가락 하나에서 얻는 가르침이 크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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