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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월패드’가 당신을 엿본다… “아파트 700곳 몰카 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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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거실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

전국 700여 아파트 단지 벽면에 달려있는 월패드(wallpad·주택 관리용 단말기) 카메라를 해킹해 촬영한 영상이 무더기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월패드는 각 가정의 벽면에 부착된 단말기로 현관 출입문, 난방, 환기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다. 보통 경비실이나 다른 가구와의 영상 통화를 위해 카메라가 달려있는데, 해커가 이걸 해킹해 실시간으로 집 안을 들여다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조선일보

해커가 외국 웹사이트에 올린 영상… 메모지로 에어컨 렌즈까지 가리기 - 전국 일부 아파트에서 주택 관리용 단말기인 월패드가 해킹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지난달 외국 웹사이트에 국내 아파트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왼쪽 사진). 사생활 유출을 막기 위해 월패드 카메라 렌즈에 스티커를 붙이거나(오른쪽 위 사진), 에어컨에 달린 카메라 위에 접착식 메모지를 붙여 가리는(오른쪽 아래 사진) 아파트 주민이 늘고 있다. /해외 해커 커뮤니티 캡처·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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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 11일 해커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 웹사이트에 국내 아파트 내부로 추정되는 사진·영상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게시자는 “한국의 대부분 아파트를 해킹했다. 아파트 내부의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추출한 것”이라며 일부 영상을 공개했다. 이들은 한국의 700여 아파트 단지를 해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자료에는 거주자의 일상뿐 아니라 남녀의 알몸 사진, 성관계 장면 등 자극적인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감이 확산하자 경찰도 조사에 착수했다. 26일 경찰청은 “지난 22일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수사 의뢰를 받고 현재 입건 전 조사(내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날 아파트 가구 간 망(網) 분리를 의무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어, 해커가 아파트를 한 번만 뚫으면 전 가구의 월패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취약점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보안 전문가들은 “당장 월패드에 부착된 카메라를 가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천 남동구의 5000가구 규모 아파트에 사는 주부 정모(45)씨는 지난 25일 집 안에 보이는 카메라를 모두 가렸다. 월패드 카메라가 해킹돼 집 안 영상이 돌아다닌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접했기 때문이다. 거실과 화장실에 붙은 월패드의 카메라는 물론 에어컨에 달린 카메라 위에도 메모지를 붙였다. 그는 “특히 화장실 카메라가 해킹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했다.

경기도 의왕시에 살고 있는 주부 이다은(35)씨도 지난 25일 거실 월패드와 주방 간이 TV에 달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씨는 “외출했을 때 아이들을 살펴볼 CCTV를 하나 달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번 사태를 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26일 전국 맘카페와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는 ‘전국 해킹 아파트 명단 700여 곳’이 급속히 퍼졌다. 해당 명단에는 서울뿐 아니라 경기, 인천,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의 아파트 단지 이름이 올라있다. 회원들은 이 명단을 돌려 보면서 “우리 아파트도 있는데 나도 찍힌 것 아니냐” “지금은 명단에 없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빨리 카메라부터 가리자” 등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더불어 각 가정의 월패드 카메라를 스티커 등으로 가린 ‘인증샷’도 올리고 있다.

해커가 한국 아파트를 찍었다며 온라인에 일부 공개한 영상에는 한 남성이 거실 커튼을 묶고 베란다를 여는 모습, 이른 새벽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나오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해커는 한국 아파트들의 하루 치 영상에 0.1비트코인(26일 기준 700만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패드에 집 안 영상을 촬영해 저장하는 기능은 없다. 이 때문에 해커들은 아파트 보안망을 뚫고 침입한 뒤 각 가구 월패드의 카메라를 통제해 실시간으로 내부를 촬영한 뒤 외부로 전송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대 관계자는 “명단에 담긴 700여 곳의 아파트에 월패드를 설치한 업체들에서 내부망 접속 기록을 받아 외부 침입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월패드는 해킹에 매우 취약한 장비”라고 말한다. 한국정보통신기술사회 남우기 회장은 “아파트 전 가구가 하나의 망에 연결돼 있다 보니 비밀번호 설정이 안 돼 있는 단 한 가구만 뚫으면 전 가구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문제는 월패드가 가정 내 냉난방, 조명, 환기, 출입문 개폐 등을 모두 제어할 수 있다 보니 사생활 촬영뿐 아니라 집 안 온도를 마음대로 올렸다 내리거나, 문을 강제로 여는 등 또 다른 범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가구별 망 분리를 의무화하는 조치에 착수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관련 부처가 모두 동의하는 안이 확정돼 다음 주부터 이해 관계자 의견 수렴 등 본격적인 입법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월패드 업체도 보안 프로그램 추가 설치, 영상 외부 전송 차단 등 긴급 대처에 나선 상태다.

정부는 “월패드를 이용하지 않을 때는 항상 카메라 렌즈를 가려두고, 월패드에 비밀번호를 설정하되 1234나 ABC처럼 쉬운 것은 피하라”는 지침을 내놨다. 보안 전문가들은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구별 망 분리는 결국 데이터 교류 수준을 낮춰 사실상 스마트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건물 완공 이후 최종 사용 허가를 할 때, 안전 진단뿐 아니라 해킹 공격 취약 여부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월패드(wallpad)

아파트·빌라 등 각 가정의 벽면에 부착된 단말기로 현관 출입문, 난방, 환기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 경비실이나 다른 세대와의 영상 통화 등을 위해 카메라가 달려있다. 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어, 해커가 아파트를 한 번만 뚫으면 전 세대의 월패드 카메라를 들여다볼 수 있는 취약점이 있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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