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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위험한 ‘바다이야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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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말 ‘놀다’에는 놂과 쉼이 함께 들어 있다. 논다와 쉰다가 가지는 이 불명확한 경계는 둘 모두가 노동의 반대편에 서 있기에 비로소 함께 묶일 수 있는 단어가 된다. 노동하지 않는 상황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놀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휴식이다. 이는 놀이가 독립적이기보다는 노동관계를 이루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쉬지 않고 움직이되, 생산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놀이다. 지상파 예능 제목으로도 쓰인 “놀면 뭐하니?”를 풀어쓰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느니 뭐라도 만들어보자’는 의미가 될 것이다.

경향신문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평론가


이처럼 놀이와 노동이 상반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움직임들이 떠오르는 추세다. P2E(Play to Earn), 플레이 투 언이라고 읽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게임 분야에서 최근 등장한 P2E는 플레이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개념이다. 게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현금으로 판매할 수 있어 게임과 수익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의미인 P2E가 게임의 미래라고 이야기하는 흐름이 있는데, 여러모로 의문을 자아내는 주장이다.

첫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놀이와 노동은 서로 중첩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게임 속 아이템을 판매해 돈을 벌 수 있다면 이는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 된다. 소소하게 아이템 몇 개를 이용자들끼리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돈을 위해 게임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게임은 놀이도구가 아니라 생산수단이 된다. 둘째, 게임으로 돈을 버는 일은 지금의 온라인게임에서도 적지 않은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쌀먹’이라고 부르는, 게임 아이템을 팔아 현금을 만드는 사람들의 존재는 P2E가 미래가 아닌 현재임을 증명하는 사례들이다. 개인 간의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기 위한 거래사이트의 거래액이 연간 1조원으로 추정될 정도로 개인 간의 아이템 거래는 이미 일상화한 개념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작업장’이라고 불리는 방식들이다. 대규모로 자동사냥을 돌려가며 아이템을 획득하고 이를 거래소에 현금으로 판매하는 행위가 공장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사람들은 게임플레이어라고 부르기보다 ‘작업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대중은 이를 놀이로서가 아니라 현금화할 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P2E라는 말의 함의는 오히려 개인 간에 이뤄졌던 아이템 거래를 게임사의 매출로 다시 가져오겠다는 아이디어로 봐야 한다. 아이템 거래를 지금처럼 제3의 중개소나 개인 간 거래가 아닌 게임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면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당장 게임사의 수익으로 들어온다는 점이 P2E를 외치는 게임사들이 바라보는 미래일 것이다.

가상의 공간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활동을 놀이라고 부르지만, 이 놀이는 언제나 노동 혹은 도박의 애매한 경계 앞에서 숱한 유혹을 받아온 바 있다. 점 10원짜리 고스톱판과 점당 만원짜리 고스톱판 사이에서 도박과 놀이의 판단이 애매해지고, 파친코가 법망을 우회하는 환전소를 끼고 있는 것처럼 P2E는 놀이와 노동/도박의 경계에 게임을 세우는 위험한 발상이다. 게임업계는 다시 한번 바다이야기의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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