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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정부, 지구판 ‘듄’ 창출에 일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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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컨택트>를 만든 드니 빌뇌브 감독은 1965년에 출간된 유명한 SF소설 <듄>을 2021년에 영화로 제작해 개봉했다. 듄은 한국말로 모래언덕 또는 사구라는 뜻으로,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행성 아라키스(Arrakis)를 일컫는다. 영화는 이른 아침에도 60도까지 치솟는 살인적인 날씨, 그래서 특별한 장비 없이는 2시간조차 버틸 수 없는 행성을 파도처럼 넘실대는 모래언덕으로 실감나게 보여준다.

경향신문

이현숙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프로그램 국장


지구가 아라키스와 다른 점은, 푸른 바다와 울창한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과 산소를 공급하고 지구 표면온도가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이산화탄소의 흡수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활동으로 배출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산화탄소를 바다가 흡수하면서 바다의 산성화가 진행되었고, 산호초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대보초)조차 산호초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숲의 상태는 어떨까? 인간이 농경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약 3조그루의 나무를 베었는데, 이는 지구 전체 나무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다. 2018년 한 해에만 1분마다 축구장 30개 면적만큼 숲이 사라졌다.

기후변화는 이제 ‘위기’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지난 10월31일부터 지난 13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에서도 전 세계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장’ 이산화탄소를 ‘신속’하게 줄여야 한다는 위급함을 공유했다.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강화 등 핵심 의제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지만, 앞으로 매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점검하고 강화하는 등 주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다.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할 2050년까지 29년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 세계에서 아마존 다음으로 큰 열대우림이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은 열대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최근 철회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 2002년 시작된 이 정책은 열대우림의 무자비한 파괴와 착취를 막기 위해 산업용 벌목을 금지해왔다. 당시 민주콩고 정부가 산업용 벌목을 금지하며 숲을 보존하는 결정을 내리고 지금까지 이어온 데는 중앙아프리카 산림이니셔티브(CAFI)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놀랍게도 한국은 독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노르웨이와 함께 이 조직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지금 이들은 향후 10년간 10억달러(약 1조1935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민주콩고 정부에 제공하는 방안을 놓고 최종 협상에 들어갔다. 그린피스 아프리카사무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렇게 많은 돈을 민주콩고 정부에 지원하며 산림 보호를 요구할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협정에 산업용 벌목 금지에 대한 조항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은 돈대로 지원하면서 산림 보호라는 목적은 달성할 가능성이 없는 이상한 원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인구 중 20억명은 기온이 60도를 넘는 날이 1년 중 45일 이상인 곳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몸은 이런 온도에 6시간 이상 노출되면 체온조절 능력을 상실한다. 이미 지구 인구의 3분의 1은 아라키스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비극 속에서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해결의 일환으로 중앙아프리카 산림 보호를 위한 CAFI의 이사국이 된 것은 자랑스럽다. 그러나 산림 보호를 위해 이사국이 되었다면 정부는 끝까지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서 협정안이 최종적으로 타결되더라도 한국이 최소한 산림 벌목에 반대했다는 의미 있는 목소리로 기억되어야 한다.

지난 1일 COP26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산림 녹화에 성공한 나라로서 산림 복원 협력에 앞장서겠다”면서 “ ‘산림 및 토지 이용에 관한 글래스고 정상선언’을 환영하고 개도국의 산림 회복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 5월 한국에서 세계산림총회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CAFI 회원국인 한국이 민주콩고의 산업용 벌목을 방관한다면, 세계 산림을 회복하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은 그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이러한 집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주는 유일한 공기청정기를 파괴하는 집안 식구 역할을 한국이 자청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현숙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프로그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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