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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고 서둘러서 본 낭패…자영업 도전, 아픈 실수가 깊은 공부였다 [다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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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의 ‘경계인’

[경향신문]

경향신문

토론토 북쪽 셰퍼드센터 쇼핑몰 안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스시집. 한국인이 주인인 스시집들은 깨끗하고 맛이 좋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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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 살러와서 2년 동안 자영업에 뛰어들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고 여겼다. 샌드위치숍과 빵집에서 최저임금을 받아가며 낯선 세계를 경험하고 몸도 육체노동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매물로 나온 가게를 꾸준히 보러다니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사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오퍼’를 넣기 직전까지 갔던 가게도 두 군데 정도 있었다. 그즈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초조함이었다.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려 하는 전직 월급쟁이라면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서두르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는 서두르고 있었다. 비즈니스 계좌를 만들어주던 은행 직원이 이민 2년 만에 내 가게를 시작한다는 소리를 듣고 “빠르지도 늦지도 않네요”라고 말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막상 가게를 시작하고 나니 내 실수로 인한 문제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줄어드는 잔고에 조바심날 때
신문 광고에 실린 샌드위치 가게
저렴한 렌트비에 끌려 계약했는데
미처 몰랐다, 세금이 빠진 것을

토론토에서 알고 지내던 이가 어느날 전화를 해왔다. 그이는 “신문에 샌드위치 가게를 판다는 광고가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렌트비가 싸다고 했다. 가게가 매물로 나오면 ‘주매상’ ‘렌트비’ ‘인건비’ ‘재료비’를 가장 먼저 살펴보는데, 렌트비가 싸다면 일단 좋은 가게로 봐도 무방했다.

빨리 내 가게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편의점과 야채·과일 가게까지 찾아보던 나에게 지인의 전언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었다. 부동산업자가 아니라 신문광고를 통해 가게를 내놓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가게를 팔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좋은 매물은 부동산업자를 거칠 것도 없다’는 말이 퍼져 있었다. 가게를 팔 자신이 있는 주인들은 그냥 알음알음으로 넘기거나 신문에 광고를 냈다. 나는 토요일 아침마다 캐나다 최대 일간지 ‘토론토스타’의 주말판(가게 매매 광고가 집중적으로 올라왔다)을 탐독했고, 한인신문 광고면도 늘 눈여겨보았다.

지인이 알려준 매물은 과연 매력적이었다. 오피스빌딩에서 아침과 점심을 만들어 파는 샌드위치숍이었다. 주매상도 좋은 편이었고 권리금도 합리적이었다. 주 5일 영업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바로 연락을 했다. 주인은 “오퍼를 이미 받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다. 실망이 말할 수 없이 컸다. 나는 왜 그 광고를 남보다 먼저 보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 때문에 며칠 괴로웠다. 그만큼 조바심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일주일쯤 후 뜻밖에도 가게 주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려던 사람이 자금 문제로 뜻을 접었으니 지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와보라고 했다. 열심히 찾는 사람에게 인연 있는 가게는 꼭 나타난다고 하더니 나한테도 드디어 그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 가게는 주인이 운영을 잘한다고 동포신문에 기사로도 나왔던 곳이라 기대가 더욱 컸다.

일반적으로 하는 것처럼, 일주일 동안 ‘매상 체크’를 하고 난 다음 부지런히 일을 배웠다. 아내가 주방에서 아주머니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음식을 모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걸렸으나 내 가게를 시작한다는 설렘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사는 작업은 한 달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사이에 아내는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고 나는 ‘아침 장사’를 배웠다. 한 달 후 가게 주인과 나는 각각 선임한 변호사를 통해 사인한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가게 주인 부부는 작은 가게를 해서 성공을 한 만큼 좀 더 규모가 큰 가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런저런 경험을 좀 했고 일도 열심히 배운 만큼 처음이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데 별 문제는 없었다. 주인이 바뀌었다고 손님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많이 힘들었으나 처음이라 그렇겠거니 했다. 일이 손에 익고 익숙해지면 나아질 것이라고 여겼다.

한 달쯤 지나 성당에 나갔다가 어떤 분을 만났다. 캐나다에 산 지 수십 년 된 그분은 비즈니스에 대해 이런저런 경험이 많았다. 내가 샌드위치숍을 인수했다는 말을 듣고는 물었다. “핫푸드 비중이 얼마나 되나?” 핫푸드?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샌드위치의 매출은 1~2%도 되지 않았다. 서너 가지 뜨거운 음식을 매일 다르게 만들어 파는 것이 매출의 거의 전부였다. 나머지는 아침에 내가 베이글을 구워 커피와 함께 파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가게는 샌드위치숍이라고 불렸다. 달리 부를 만한 용어가 없었다. 샌드위치도 만들어 파는, 정식 레스토랑에 비해 간편한 식당이니 그냥 샌드위치숍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신문광고에도 샌드위치숍을 판다고 나왔다.

하루 10시간 ‘갈아넣는’ 주방에
경험도 없는 아내를 밀어넣은 꼴
제대로 된 쉼도 없이 늘 파김치
결국 8개월 만에 가게를 넘기고
선배 도움으로 의류업에 안착했다

샌드위치는 빵에다 내용물을 넣어 싸주는 간단한 음식이지만 핫푸드는 뜨거운 불에 요리를 하는 것이었다. 차원이 달랐다. 샌드위치숍에서 일을 했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샌드위치와 핫푸드의 비중을 따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곳은 그저 조금 다른 곳이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일이 정말로 힘든 이유가 따로 있었던 셈이다. 남자인 내가 들어가도 힘들어할 주방에, 경험도 없는 아내를 밀어넣은 꼴이었다.

조급함 때문에 저질렀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또 있었다. 렌트비에 관한 것이었다.

렌트비가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냉정하게 따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변호사가 이 부분을 지적했어야 했지만 그이도 그냥 넘어갔다. 나는 ‘렌트비’와 ‘렌트비 개념’이 구분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렌트비는 건물주에게 내는 순수한 임차료. 그러나 ‘렌트비 개념’에는 순수 임차료에 더해 세금(토론토에서는 임차공간에 대한 재산세를 임차인이 내게 되어 있다)과 전기·수도 요금을 포함한 유지비, 그리고 보험료까지 들어 있다. 가게를 거래할 때 통상적으로 렌트비라고 하면 순수한 렌트비가 아니라 ‘렌트비 개념’을 의미했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렌트비 개념으로 보자면 내가 지불해야 하는 돈은 순수 렌트비의 2배가 넘었다. 렌트비가 싼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따지지 못했다.

전 주인이 ‘렌트비 개념’이 아니라 ‘순수 렌트비’를 광고에 올렸다고 해서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한 내 잘못이 가장 컸다. 변호사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몇 달이 지나 일이 손에 익어도, 일이 쉬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속도도 붙지 않았다. 아내는 100명이 넘는 손님을 매일 치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몸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힘든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닷새를 일하고 이틀을 쉰다고 하지만, 문을 닫는다고 쉬는 게 아니었다. 토요일은 파김치가 되어 고꾸라지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일요일에는 다음주 장사 준비를 하러 나가야 했다.

한국이나 캐나다나 매한가지
성공의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
초기에 기초를 다진자가 웃는다

초기에는 긴장도 많이 하고 돈을 세는 것이 신기해서 힘든 줄을 몰랐다.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 가게를 잘못 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지속 가능성의 문제였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드러난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가게를 인수하기 전에 5년이고 10년이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평일에는 우리 두 사람이 꼼짝없이 가게에 붙어 있어야 했으니, 아이들 학교에서 불러도 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주방 일을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시스템도 오래 끌고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그것은 사람을 ‘갈아넣는’ 것이었다. 아내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서 번들거렸다. 전 주인이 더 큰 가게를 하겠다며 가게를 팔고 나간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규모를 크게 하고 사람을 더 쓰면 주인들이 그만큼 힘이 덜 든다는 사실을 일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아무리 자영업에 걸맞게 몸을 만들고, 최저임금 ‘알바’로서 일을 배우고 익혀도,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세계가 따로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가게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돈이 되는’ 가게를 찾기 어려운 만큼 한편으로는 이 정도 매출을 가진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계속하기가 어렵고, 바깥을 돌아보면 이만한 가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이 깊어가던 터에 두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생겨났다.

어느날 우리 가게에 낯선 한국 남자가 찾아와 가게를 팔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 가게에 관심이 많았는데 시기가 맞지 않아 ‘오퍼’를 넣지 못했으며, 주방 일은 남자인 자기가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주방 요리사로 일을 했던 만큼 자기로서는 어렵지 않게 운영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당신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는 투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즈음 우리가 자리 잡은 과정을 모두 지켜본 대학 선배님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다. 우리보다 15년 정도 먼저 이민 와서, 의류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선배님이었다. 제안을 듣자마자 가게를 사겠다는 사람에게 연락했다. 내 가게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이었다. 곧바로 선배님한테로 가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류사업에 관한 일을 배웠고(그것도 임금을 받아가며), 1년7개월 후에는 빈자리를 찾아 내 가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올해로 16년차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월급쟁이 출신으로서 큰 실패 없이 자영업의 세계에 안착할 수 있었던 데는 초창기의 공부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든 캐나다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월급쟁이 출신으로서 자리를 잡은 자영업자치고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고생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초기에 시간을 투자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초를 다졌다는 얘기이다. 기초를 단단하게 다진 사람치고 실패한 이를 보지 못했다.



경향신문

▶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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