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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저 세상에서라도 전두환이 사죄했으면”…5·18 피해자 이광영씨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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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68세의 일기로 국립묘지 안장
“통증 시달리다 떠난다” 유서

계엄군 총 맞아 하반신 마비
88년 청문회 ‘만행’ 증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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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26일 열린 5·18민주화운동 부상자 이광영씨의 안장식에서 가족이 영정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강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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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더 이상 고통 받지 마세요….”

2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제2묘역. 가족들은 68세를 일기로 오월 영령들 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든 이광영씨를 차마 보내지 못하고 영정 사진을 부둥켜안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을 입은 이씨는 지난 22일 전북 익산의 집을 나선 뒤 23일 오후 4시쯤 고향인 전남 강진군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가족들은 이씨의 자동차가 마을에 오후 11시30분 쯤 도착한 것으로 미뤄, 23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씨의 공식 사망일자도 2021년 11월23일로 기록됐다. 같은 날 오전 8시45분 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도 서울 연희동의 자택에서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숨진 이씨는 전씨가 주도한 5·18유혈진압의 피해자였다.

5·18당시 스님이었던 이씨는 ‘부처님오신 날(5월21일)’ 행사를 돕기 위해 광주의 한 사찰을 찾았다가 5·18의 참상을 목격했다. 이씨는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를 한 5월21일 부상당한 시민들을 병원으로 옮기려다 자신도 총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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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지난 23일 숨진 5·18민주화운동 부상자인 이광영씨의 안장식이 진행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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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쏜 총탄은 이씨의 척추에 박혔고 그는 하반신이 마비됐다. 지난 41년 간 진통제 없이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 이어졌지만 이씨는 5·18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씨는 1982년 5·18당시 부상자 18명과 함께 ‘부상자회’를 만들었다.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때에는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군의 만행을 증언하기도 했다. 이씨는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이씨는 2019년 5월13일 3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서 자신의 목격한 헬기사격을 증언했다.

하지만 육신의 고통을 더는 이기지 못했다. 그는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서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 갑니다”라며 가족과 친구, 사회에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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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지난 23일 숨진 5·18민주화운동 부상자인 이광영씨의 안장식이 진행됐다. 이씨가 영면에 든 5·18묘지에는 올해에만 30명의 피해자들이 안장됐다. 강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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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동생 광성씨(60)는 “형님의 죽음을 애도해 주신 모든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 형님은 독재자의 총탄에 41년 동안 하반신 마비로 고통에 시달려 왔다”면서“우리 가족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5·18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먼저 가서 기다리는 형님에게 저 세상에서라도 전씨가 사죄했으면 한다”면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본의 아니게 5·18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분들의 양심선언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말을 남긴 이씨가 잠든 5·18묘역에는 영면에 든 5·18피해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올해만 해도 5·18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전춘심씨를 포함해 30명이 안장됐다.

박갑술 5·18부상자회 회장은 “학살 책임자들의 사죄를 듣지 못하고 숨지는 5·18피해자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참담하다”면서 “27일 예정된 전씨 장례식에 항의하러 가자는 회원들도 있다.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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