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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이슈 로봇이 온다

로봇 학대 논란, 20년 전 스필버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영화 'A.I.' 리뷰 [씨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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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⑨ 영화 '에이 아이' 리뷰

2019년 유튜브 콘텐츠 제작사 코리도(Corridor)는 로봇 개발 과정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군용으로 개발된 이족 보행 로봇을 훈련시키기 위해 영상 속 인물들은 그에게 발길질과 매질을 서슴지 않는다. 로봇은 총기를 들고 표적에 총질을 하면서도 절대 인간만큼은 다치게 하지 않는다. 그러다 로봇은 돌연 태도를 바꿔 인간을 위협하고 멀리 도망가는데, 인간이 자신에게 사족보행 로봇을 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막 대하는 것은 참겠지만, 자신보다 더 연약한 로봇에게 고통을 주라는 명령은 거부하겠다는 듯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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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군용으로 개발된 이족보행 로봇을 밀치는 모습. 유튜브 콘텐츠 제작사 코리도에서 만든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11월 5일 기준 7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코리도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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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종의 모큐멘터리(허구를 현실처럼 보이게 찍은 영상)다. 영상 하단부에 적힌 보스타운 다이내믹스(Bosstown Dynamics)는 로봇 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패러디다. 그러나 이 영상이 세계적으로 누적 7500만뷰(2021년 11월 5일 기준)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은 것은 단순히 재미있어서만은 아닌 듯하다. 이 콘텐츠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 로봇 개발 업체가 올려온 영상들에서 느껴졌던 불쾌감을 짚어낸다. 그건 사람, 반려견과 닮은 형태로 만든 존재를 밀고, 차고, 때리고, 넘어뜨려 가며 인간에게 유익하게 만드는 행위에 잔인함이 섞여 있진 않은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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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모욕을 참아내던 로봇은 사족 보행 로봇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에 갈등한다.<코리도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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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허가제 도입된 미래 사회, 부모를 사랑하는 아이 로봇을 판매하다

'에이 아이(A.I.)'는 사회 상당 부분에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게 된 미래를 그린 영화다. 온실가스로 만년설이 전부 녹아버려 대부분 도시가 물에 잠겨버렸다. 하지만 선진국 정부에서는 엄격한 임신허가제를 도입해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막고, 인간만큼 자원을 소비하지 않는 로봇 생산을 늘리게 됐다. 사회 경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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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버트로직스는 감정을 지닌 최초의 인조인간 데이빗을 만들어낸다.<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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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감정적 영역으로까지 뻗친다. 그간 로봇이 보모, 가정부 등 기능적인 봉사를 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인간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보겠다는 욕망이 싹튼 것이다. 이에 로봇 회사 사이버트로닉스는 감정을 지닌 최초의 인조인간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을 만들게 되고, 그는 헨리와 모니카 부부의 집으로 입양된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치료약이 개발될 때까지 냉동인간으로 둔 지 5년째인 모니카는 데이빗을 진짜 아들처럼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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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와 모니카의 집에서 살게 된 데이빗은 두 부부에게 기쁨을 준다.<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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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아들과 'A.I.' 아들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데이빗에겐 꿈만 같던 나날은 이 집 아들 마틴이 퇴원하면서 급반전된다. 모니카가 인간 자식이 돌아오자마자 A.I. 아들에 대한 정을 버리거나 해서가 아니다. 엄마는 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하려 애쓰지만 두 아들이 똑같은 사랑을 받길 거부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인간 아들은 자신에게 온전히 쏟아져야 할 애정이 로봇 형제에게 분산되니 거슬리고, 로봇 아들은 자신이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경쟁 구도에서 밀리고 있다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또래 아이들이 가질 만한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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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의 진짜 아들 마틴(왼쪽)은 데이빗에게 엄마의 머리카락을 잘라오라고 한다. 그러면 엄마가 널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설득한다.<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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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집의 복잡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주변 아이들까지 어울려 놀게 되면서 문제가 터진다. 역시 그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호기심으로 데이빗을 대하다가 데이빗의 고장 방지 시스템이 발동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마틴은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부부는 결국 데이빗을 버리기로 결정한다. 인간과 로봇 아이를 차별 없이 대할 것이라던 엄마의 결심도 인간 아이의 생존 문제 앞에서 무너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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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는 데이빗을 숲에 버린다. 진짜 아들처럼 사랑할 것이라는 결심은 진짜 아들이 돌아온 뒤 무너져버렸다.<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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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영화는 쫓겨난 데이빗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담았다. 데이빗은 쓸모없어진 로봇을 파괴하는 축제에 끌려갔다가 소년을 동정하는 관람객들의 동요로 살아남게 된다. 그는 피노키오를 진짜 아이로 만들어줬다는 푸른 요정을 찾아 곰인형 '테디', 애인 대행 로봇 '조'(주드 로)와 함께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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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축제에서 인간들은 쓸모 없어진 로봇들을 파괴하며 즐긴다. 데이빗은 축제에 잡혀가지 않기 위해 도망친다.<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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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존재는 막 대해도 되는가

'에이 아이'는 2001년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매끄럽다. 로봇을 표현한 컴퓨터그래픽도 자연스럽고,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겪을 법한 고민에 대한 묘사도 그럴 듯하다. 데이빗으로 분한 할리 조엘 오스먼트와 조 역의 주드 로는 인간에 가깝지만 인간은 아닌 존재의 오묘한 경계를 설득력 있게 연기해냈다. SF 영화 거장 스필버그는 디스토피아 속에 한 줌 휴머니즘을 섞는 레시피로 감동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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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받은 데이빗은 늘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워한다. 엄마로부터 사랑 받은 기억은 데이빗을 지탱해주지만, 한편으론 그의 마음을 찢어놓는다.<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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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20년 전보다 외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최근 있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박람회에서 로봇을 던지며 불거진 일련의 논란은 우리가 A.I.와 함께하는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봇은 과연 '학대'당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는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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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생명체 모습을 닮도록 하는 목적 중 하나는 인간이 친밀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로봇이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의 모습에 가까워질수록 이를 단순히 도구적으로 다루는 데 불편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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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엔 영상의 전후가 잘린 채 공개되는 바람에 이재명 후보로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전체 영상이 공유됐더라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했을 것이다. 이는 서론에 언급한 '보스타운 다이내믹스' 모큐멘터리와 영화 '에이 아이'가 공유하는 문제 의식과 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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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이 아이` 속 로봇들은 자주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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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그저 기능적인 로봇이 아닌 감정적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로봇을 원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태여 살아 있는 존재의 형상을 모방하고, 재주를 넘게 해놓고선, 이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은 집에 있는 리모컨을 툭 던지는 행위와 동일한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전시장에 있었던 사족보행 로봇은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A.I.인데 데이빗과 같은 휴머노이드와 일대일로 비교하는 게 가당하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과연 로봇이 생명체와 몇 %나 유사한 모습을 갖춰야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균형을 못 잡아 자주 쓰러지던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이 몇 년 만에 군무를 출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을 보면, 데이빗을 길거리에 버려도 될지 고민할 날이 그리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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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이 아이` 포스터.<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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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모험, SF, 판타지
출연: 할리 조엘 오스먼트, 프란시스 오코너, 주드 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평점: 왓챠피디아(4.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75%), 팝콘지수(64%)
※11월 5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왓챠,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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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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