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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37세 김정은 ‘수령’ 등극… 스스로 김일성 반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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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도 생전에 쓰지못한 칭호… 집권 10년차 절대 권력 굳히기

조선일보

북한이 노동당 창건 76주년을 맞아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을 11일 3대혁명 전시관에서 개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당 총비서가 국방발전전람회장에 입장하고 있는 모습. 2021.10.12.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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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영 매체들이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처음으로 ‘수령’이란 호칭을 붙인 것으로 28일 나타났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수령’은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에게만 허락된 호칭이었으며, 김정일도 생전에 이를 쓰지 못했다. 이와 함께 국가정보원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이 당 회의장 배경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을 없앴다”며 “’김정은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도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집권 10주년을 맞은 김정은이 통치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할아버지 반열에 ‘셀프 추대’하며 절대 권력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재와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제난으로 실추된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조선일보

국회 정보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과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28일 비공개로 진행한 국정원 국정감사 도중 브리핑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당 회의장 배경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을 없애고, 내부적으로 '김정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독자적 사상체계 정립도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2016년 열린 북한의 7차 당대회 모습과(아래 사진)와 5년 뒤 8차 당대회(위 사진)의 회의장 모습으로 김일성ㆍ김정일 초상이 부각된 7차 대회와 달리 8차 대회장에는 노동당 대형마크가 전면에 배치돼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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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자 노동신문 논설에는 김정은을 수령으로 지칭한 표현이 세 군데 등장했다. ‘혁명의 걸출한 수령이시며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또 한 분의 위대한 수령’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를 혁명의 위대한 수령으로’ 등이다.

북한 매체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노동신문이 김일성의 타이틀인 수령을 김정은에게 붙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생전엔 ‘장군님’으로 불렸고 사후에야 ‘선대 수령’이란 호칭을 받았다. 북한의 수령제를 연구해온 정교진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위원은 “김정일이 생전에 수령 호칭을 쓰지 않은 것은 자칫 유훈 통치와 결별하고 김일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김정은도 집권 초기엔 수령 등극을 미룬 측면이 있다”고 했다.

19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집권 초기 김일성의 옷차림과 제스처를 흉내 내는 등 어린 나이와 부족한 경험을 의식해 할아버지의 권위에 기대는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집권 10년 차를 맞는 올해 수령 호칭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김일성·김정일 시대가 완전히 지나가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가 열렸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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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김정은 140㎏서 20㎏ 감량… 건강 문제 없어" - 국가정보원은 28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체중을 140kg에서 20kg 감량했고 건강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사진은 이달 10일 노동당 창건 76주년 기념강연회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지난 3월 당 행사 때(작은 사진)와 비교하면 확실히 살이 빠진 모습이다. 국정원은 살 빠진 김정은이‘대역’이라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근거가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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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수령 등극’을 위한 준비작업은 하노이 노딜 직후인 지난 2019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지난 2019년 7월 4일자 노동신문 정론에서 ‘김정은을 20세기 가장 걸출한 수령’으로 처음 호칭 했다”며 “최근에 그 사용 빈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후 김정은을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한 지난 1월 당 제8차 대회에서 본격화 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노동신문은 당대회 직후인 지난 1월 18일 “오늘의 투쟁은 조선노동당원의 생명인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검증받는 엄숙한 마당”이라며 김정은의 수령 등극을 암시했다. 지난 16일 노동신문 논설에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정은 동지를 결사옹위”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29일 노동신문 사설에선 “현시대의 가장 걸출한 수령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핵미사일 개발과 선대 수령들도 이루지 못한 미·북 정상회담을 치적으로 선전하며 ‘수령’의 반열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정원도 이날 국정감사에서 “(북한에서) ‘김정은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는 독자적인 새로운 사상 체계로 정리하는 시도가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고 여야 간사들이 전했다. 여야 간사들은 “김정은이 집권 10년을 맞아 김일성·김정일주의와 차별화된 사상을 공식화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국정원이 확인·보고했다”고 덧붙였다.

28일 자 노동신문 논설에 ‘김정은 동지의 혁명 사상으로 무장’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아직 ‘김정은 혁명 사상’이나 ‘김정은주의’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지만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잇는 노동당 지도 이념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진욱 전 통일연구원장은 “수령 호칭에 이어 ‘김정은주의’ ‘김정은 혁명 사상’까지 등장한 것은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인한 ′봉쇄 장기화에 따른 경제난으로 실추된 김정은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국정원은 이날 북한이 2018년 가동을 중단했던 영변 원자로(5MW)를 재가동한 동향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브리핑에서 “영변 폐연료봉 재처리 시설이 올해 상반기 2~7월 가동된 징후가 식별됐다”며 “북한이 이 기간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진행했을 가능성을 국정원이 보고했다”고 했다. 폐연료봉 재처리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한 과정이다. 국정원은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가 확보해 핵 능력을 강화하고 영변이 전략적 가치가 있음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또 북한이 지난달 28일 발사한 화성 8호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과 관련, 북한이 추가 발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달 중순 열린 북한의 국발전전람회와 관련해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3종이 공개됐는데 단기간에 SLBM을 완성했다고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최근 미국·일본 일각에서 제기된 김정은 대역설(代役說)과 관련, 국정원은 “근거가 없고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보고했다”고 정보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밝혔다. 국정원은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과학적 기법을 통해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세밀하게 추적해왔으며, 얼굴 피부 트러블 여부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초고해상도 영상을 동원했다고 두 의원은 설명했다.

[김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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