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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안국동의 작지만 큰 한옥[공간의 재발견/정성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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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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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작지만 큰 한옥이라니 무슨 말장난인가 싶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한옥은 작은 것도, 큰 것도 사실이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이곳은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소유한 곳으로 물리적 크기는 66m²(약 20평)에 불과하다.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의 행랑채였고 이후 인쇄소로 사용하던 곳인데 지켜낼 만한 전통문화를 발굴해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01년 창립한 아름지기 품에 들어가면서 지금의 얼굴로 단장했다. 20년 전 이곳을 대수선한 아름지기 측은 현대인들도 편하게 한옥을 접하고 또 관리할 수 있도록 부러 목재를 치목할 때 전기톱이나 대패 대신 최신 기계를 사용했다. 바닥도 옛날처럼 날콩 자루로 문지르는 것이 아니라 콩물에 들기름을 섞어 칠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한옥에 살아보고 싶다’ ‘관리하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으면 나도 한 번 살아볼 수 있겠는 걸’ 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구석구석 마음을 쓰고, 2개 방 전체를 벽지로 감싸 바른 한옥은 아름지기 사무실로, 변호사 부부의 집으로 쓰이다 최근 아름지기 20주년을 맞아 전시 공간으로 재오픈했다.

돌계단을 올라 대문을 열자마자 이곳에 매료됐다. 가지런한 사각 마당에는 돌확이 있었고 그 안에는 제철 꽃가지가 물에 담겨 있었다. 한쪽에는 수돗가가 있고 역시 작은 돌확이 있었는데 참외 3개를 담그면 꽉 찰 만큼 작은 사이즈였다. 그리고 하늘. 굳이 고개를 치켜들지 않아도 파란 하늘이 와락 눈에 들어오는 구조였다. 그 옆으로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훌쩍 솟아 있었다. 이곳의 사계절과 마디마디를 기록하고 있는 이종근 사진가는 “가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여전히 밖의 기운과 계절 감각, 정경을 느끼는 것은 한옥의 독보적 운치다. 철문을 닫음과 동시에 따뜻한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라 마당을 주변으로 집 안에 내린 상쾌한 빛과 바람을 새삼 느끼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 잠시의 시간은 매일 차곡차곡 쌓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고, 화를 누그러뜨리며,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집 안 구조와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건축가와 협업해 근사한 선반을 만들어 좋은 것들을 하나씩 진열하고, 침실과 거실에는 벽장을 만들어 수납을 용이하게 했다. 화장실과 주방은 물론 작았지만 계절 꽃을 꽂은 화병을 올려두고 창문 너머 돌담이 보이는 것만으로 답답하지 않았다. 이럴 때 한 평 두 평 물리적 크기에 집착하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곳을 나오면서 다시금 확신했다. 한옥은 역시 ‘큰’ 집임을.

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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