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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중독 주범이던 ‘보툴리눔 독소’, 이젠 인류 주름살 펴준 묘약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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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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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백년 전쟁’을 승리로 끝낸 15세기 중반부터 일찍이 안으로는 왕권 강화를 통한 중앙 집권화를, 밖으로는 정복 전쟁을 통한 팽창을 추구했다. 프로이센과 영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 이런 프랑스는 늘 경계 대상이었다.

그러던 차에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일어나 절대군주 루이 16세가 폐위되어 단두대에서 처형되자, 주변국들은 프랑스를 공격할 명분과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영국을 중심으로 1793년부터 1815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군사 동맹, 이른바 ‘대(對)프랑스 동맹’이 결성돼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를 막는 동시에 나폴레옹의 대륙 지배에 대항했다.

나폴레옹은 대프랑스 동맹을 격파하고자 전쟁을 벌여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를 연이어 격파하고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했다. 이렇게 육전에서 연전연승하던 프랑스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에 패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유럽 대륙과 영국 간 무역을 금지하는 대륙 봉쇄령을 내렸다. 그런데 러시아가 이를 어기고 영국과 무역을 계속하자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의 후퇴 전술과 혹독한 추위로 나폴레옹 군대는 큰 타격을 입고 퇴각했다.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이후 나폴레옹은 대프랑스 동맹군에 결국 패배하여 몰락했다. 1815년의 일이다.

소시지 중독

19세기 유럽 ‘소시지’ 탓 사고 빈발
썩는 과정 ‘독소’ 생성 뒤늦게 발견

20여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 경제는 엉망으로 망가졌고, 백성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하루하루 끼니 해결도 어려운 마당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세기 초반 남부 독일에서 흔한 음식이었던 ‘자우마겐(Saumagen)’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사례가 급증했다. 자우마겐은 ‘돼지(sau) 위(magen)’라는 뜻 그대로 돼지의 위장에 돼지고기와 감자·당근 따위를 다져 넣고 익힌 소시지인데,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하다.

1817년 시인이자 의사였던 유스티누스 케르너(Justinus Kerner)는 자우마겐뿐만 아니라 모든 소시지가 상하면 같은 식중독을 일으킨다고 지적하고, 동물 실험을 포함한 후속 연구를 진행하였다. 실험동물들의 사체 부검을 통해 직접 사인은 호흡기와 심장 기능 상실로 밝혀졌다.

케르너는 심지어 자신을 대상으로 용감한 인체실험까지 감행했다. 독소의 신맛을 기준으로 미량 섭취했더니 약하게 식중독 증세가 나타났다. 그는 이 독소가 소시지가 썩을 때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지며 신경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주 적은 양으로도 치명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케르너가 살던 시절에는 이 식중독을 단순히 ‘소시지 중독’이라고 불렀다. 반세기가 지나 1870년대에 와서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보툴루스(botulus)’를 활용해 ‘보툴리스무스(botulismus)’라는 병명이 생겨났다. 1895년에는 벨기에 한 마을의 장례식장에서 34명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다. 모두 절인 훈제 햄을 먹은 환자로 동공이 커지고, 근육 마비 현상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셋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문제의 햄 분석과 부검 결과, 소금에 절인 날고기와 식중독 사망자의 조직에서 같은 세균이 발견되었다. 1898년 이 세균에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공식 이름, 곧 ‘학명’이 부여되었다.

전쟁과 식중독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미국 등
‘생물무기화’ 나섰다 실패하기도

제2차 세계대전은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을 사악한 구렁텅이로 몰고 갔다. 생물 무기 개발에 동원된 것이다. 이 식중독균은 ‘보툴리눔 독소’라는 맹독성 신경 독소를 만들어 분비한다. 보툴리눔 독소는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달되는 화학 신호를 차단해 근육을 마비시킨다. 그러므로 이것에 중독되면 서서히 마비 증상을 겪다가 결국 호흡 또는 심장 정지로 생명을 잃게 된다. 대표적으로, 세균전 부대로 악명 높은 일본의 731부대는 만주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보툴리눔 독소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도 메릴랜드주에 있는 군 연구소 포트 데트릭(Fort Detrick)에서 비밀리에 보툴리눔 독소 연구를 진행했다. 아울러 미국 전략사무국에서는 보툴리눔 독소를 사용해 일본군 고위 간부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중국 매춘부를 통해 독소가 든 작은 젤라틴 캡슐을 음식이나 음료에 몰래 넣으려는 시도였는데, 중도에 계획이 폐기되었다.

캡슐을 중국 충칭에 반입해 확인차, 유기된 몇몇 당나귀에게 먹여봤는데, 모두 멀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당나귀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몇년 후 연구진이 당나귀가 보툴리눔 독소에 면역성이 있는 몇 안 되는 생물 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2019년 당나귀가 보툴리눔 독소에 중독된 첫 사례가 보고되어,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성이 강하지만 당나귀도 보툴리눔 독소에 중독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중 보툴리눔 독소를 생물 무기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이는 이 독소가 쓸 만한 생물 무기 소재가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인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반인륜적 목적으로 벌어진 연구 경쟁이 낳은 산물, 곧 독소 정제법과 해독제 개발은 훗날 전혀 다른 용도로 보툴리눔 독소가 쓰일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개과천선

‘근육 마비’ 착안해 시술하기 시작
20세기 후반 주름개선 시술 확산

식중독 주범에서 생물 무기 후보로 계속해서 어둠 속에 머물던 보툴리눔 독소에게 개과천선(改過遷善)의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안과의사 앨런 스콧(Alan Scott)은 1960년대부터 사시 교정 수술 대체법으로 눈을 움직이는 ‘안구 근육’에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여러 물질을 테스트해봤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하던 차에 보툴리눔 독소가 눈에 들어왔다.

스콧은 보툴리눔 독소가 일으키는 근육 마비에 착안했다. 정제한 독소를 희석하여 국소적으로 적당량을 투여하면 원하는 근육 교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확신을 얻은 스콧은 197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자원자에게 시술했다. 시험 결과 그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자 1년 뒤 FDA는 A형 독소를 인체 특정 부위에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다. 참고로 보툴리눔 독소는 A형부터 G형까지 총 일곱 종류가 있는데, 의약품으로 주로 사용되는 것은 정제된 A형이다.

1987년 캐나다인 의사 부부가 대화를 나누다 보툴리눔 독소의 새로운 용도를 우연히 발견했다. 눈꺼풀 떨림 환자의 미간에 보톡스를 주사했는데, 신기하게도 주름까지 없어졌다는 안과 의사인 아내의 말을 들은 순간, 피부과 의사인 남편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바로 이 독소를 주름 개선 시술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미국 제약회사 앨러간(Allergan Inc.)은 1991년 보툴리눔 독소 A형에 관한 모든 지식재산권을 매입해 ‘보톡스(Botox®)’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했다. 2년 뒤에는 영국 제약회사가 조성을 조금 다르게 하여 ‘디스포트(DYSPORT®)’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 브랜드의 이름은 ‘근긴장이상증(dystonia)’에서 유래했다. 현재 보툴리눔 독소 A형은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져 시판되고 있으며, 전문의 손에서 거의 기적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독도 잘 쓰면 약이다’라는 속담을 제대로 실현하면서 말이다.

현재 보톡스는 같은 효능을 지닌 의약품의 대명사 격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제조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막으려 한단다. 경쟁 관계에 있는 여러 의약품 가운데에서 자사 제품이 대표로 인식되면 저절로 홍보되어 오히려 좋아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속내를 모르겠다.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관용표장화’를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관용표장화란 특정 상표가 너무 유명해져 해당 상품 그 자체를 지칭하는 현상을 말한다. 만약 보톡스가 관용표장화되면 특정 회사가 상표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어떤 제약사라도 원하면 보톡스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팔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아무튼 치명적인 식중독 독소로 데뷔해 생물 무기 후보를 거쳐 초절정 인기 의약품이 되었으니, 보툴리눔 독소의 환골탈태(換骨奪胎)가 경이롭다.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1632~1677)라는 철학자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총명하고 신앙심이 깊은 엘리트였지만, 유대 사제들이 고수해왔던 신(神)의 개념을 부인했던 까닭에 파문당했다. 시쳇말로 평생 끔찍한 왕따를 당한 것이다. 갖은 비난을 견디며 힘겹게 살면서 사색과 성찰에 몰두한 그는 어떤 것들이 서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관계가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도, 정반대로 해악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미생물,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 따라
무기되거나 명약으로 ‘파격 변신’

스피노자가 말하기를, 즐거운 음악이 기쁜 이에게는 좋고, 장례식장에서는 나쁘며, 청각장애인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했다. 무엇이 좋고 나쁨은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 하는 ‘관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스피노자식으로 보면, 보툴리눔 독소가 사악한 전쟁광의 손아귀에서는 생명을 해치는 무기가 되지만, 선한 과학자를 만나면 ‘묘약’으로 변한다. 말하자면, 미생물이 좋고 나쁨도 미생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관계’에 있다는 얘기다. 미생물은 우리 하기 나름이다.

▶김응빈 교수

경향신문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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