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아침햇발] 정작 개한테 줘야 할 것은 / 박용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반려견 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박용현 논설위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전국민의 상식인 헌법 제1조다.

전두환은 총과 탱크로 그 권력을 빼앗았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전국민이 알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대법원은 1997년 군사반란 및 내란죄 등으로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 26일 사망한 노태우도 공범으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이 쓴 공소장의 일부다.

“피고인 전두환은 수괴로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하여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여 반란하고, (중략)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광주시민들을 살해하고….”

헌정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해버린 전두환 정권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를 잘했다”고 칭송했다. 윤 전 총장은 헌법주의자를 자처해왔다. 그가 생각하는 헌법과 정치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암담할 뿐이다. 빗발치는 사과 요구에 에스엔에스에 “송구하다”는 한마디를 올리고는 불과 몇시간 뒤 ‘개한테 사과를 주는 사진’을 또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국민 능멸이자 헌법 제1조에 대한 ‘2차 가해’다.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먹는 사과와 가족 같은 강아지 사진을 보고 ‘사과를 개나 줘라’라고 해석하실 줄은 정말 몰랐다”는 해명은 국민의 상식과 전혀 통하지 않는 ‘윤석열식 상식’을 드러낸다. ‘1일 1망언’이라고 조롱받을 정도로 빈발하는 엉뚱하고 해괴한 발언들 역시 국민의 상식과 유리된 정신세계를 보여줬다.

상식, 공정, 정의, 법치, 헌법, 자유민주주의 등은 윤 전 총장이 대통령선거에 뛰어들며 내세운 핵심 가치들이다.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넉달 동안 그 자신의 언행으로 이 가치들은 모두 허물어진 형국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고 수천억원의 뇌물로 권력의 배를 불린 전두환 체제가 정치를 잘한 것이라고 본다면,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에서 공정, 정의, 헌법, 자유민주주의 따위의 단어는 지워버려야 한다.

지난 14일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한 징계는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공정과 법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정권의 탄압으로 무고하게 징계를 당했다고 주장해왔지만, 법원은 그가 “검찰 사무의 적법성과 공정성을 해하는 중대한 비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면직 이상의 중징계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검찰총장의 힘을 이용해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방해한 행위는 공정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막강한 검찰권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공권력은 ‘사람’이 아니라 ‘법’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는 법치의 원리를 배반한 것이기도 하다.

윤 전 총장 쪽은 이 판결이 “정치적”이라고 반발했다. 또 다른 징계 사유인 ‘판사 사찰 문건’과 관련해 법원은 “판사가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가진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용도로 악용될 위험성”을 지적했는데, 윤 전 총장은 바로 그 방식대로 이번 사법부 판결을 정치적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지난해 말 법원의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 덕에 직무에 복귀할 때는 “사법부의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던 그가 이번엔 “황당한 판결”이라고 했다. 사법부 판결을 유리하면 반기고 불리하면 공격하는 게 법치를 내세우는 정치인의 책임 있는 태도인가.

‘고발 사주’ 사건에 대해서도 윤 전 총장은 시종일관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다. 대검찰청 간부가 검찰총장과 그 가족·측근을 비판하는 이들을 고발하라고 야당에 고발장을 전달한 것은 검찰의 정치 중립을 파괴하고 국가 조직을 사적 이익에 복무시킨 헌정 문란 행위다. 헌법과 법치를 중시한다면 철저한 수사와 엄한 처벌을 주문하는 게 상식이다. 윤 전 총장의 상식은 여기에도 이르지 못한다.

상식, 공정, 정의, 법치, 헌법 가치…. 윤 전 총장이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던 이 아름다운 단어들은 그의 말과 행동 속에서 고유의 의미를 잃고 공허한 기표로만 남았다. 윤 전 총장이 개한테 줄 것은 사과가 아니라 이제 껍데기만 남은 저 단어들이다.

piao@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