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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헌정사 첫 법관 탄핵심판…판단 없이 '각하'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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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사찰' 폭로로 드러난 사법농단 의혹…前대법원장 등 줄줄이 기소

퇴직 24일 전 '임성근 탄핵' 국회 가결…헌재 "이미 퇴직해 파면 불가"

연합뉴스

임성근 전 부장판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 심판 사건이 28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청구 '각하'로 마무리됐다.

대법원이 법관을 사찰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 사법농단 의혹이 4년여 만에 법관 파면으로까지 이어질 것인지 관심을 모았으나 헌재는 "임기 만료로 퇴직한 피청구인에 대해서는 파면 결정을 선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임기가 끝나 파면을 할 수 없으니 국회의 탄핵 청구에 대해 판단하지 않겠다는 결론이다.

◇ '법관 사찰' 폭로로 사법농단 의혹 촉발

이번 탄핵 심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발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던 2017년 3월 '법원행정처가 특정 학술단체 소속 법관들을 사찰했다'고 한 이탄희 판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였다.

그는 법원행정처 심의관 발령을 막 받은 상황이었는데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위원회의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뒤 발령이 돌연 취소됐다.

의혹이 불거지자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진상조사를 지시했는데 "법원행정처 간부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부당하게 견제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각급 법원 대표 판사들의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최초로 구성돼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거부됐고, 사법부 내 갈등도 본격화했다.

같은 해 9월 취임한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은 추가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2차·3차 조사에서는 법원행정처가 판사 동향 사찰은 물론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거래하려는 의도로 재판에 관여하려 한 정황이 담긴 문건도 발견됐다.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검찰은 2019년 3월까지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전·현직 법관 14명을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했다. 또 사건에 연루된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전직 대법원장 소환·구속이라는 또 하나의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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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심판 선고 공판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2021.10.28 saba@yna.co.kr


◇ 임성근 1심 "위헌적 행위" 판단…국회, 사상 첫 법관 탄핵 소추

최초의 법관 탄핵 심판 대상이 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이때 기소돼 형사재판피고인이 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을 맡은 후배 이동근 전 부장판사에게 재판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한 기사는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언급하도록 한 혐의 등을 받는다.

1·2심은 임 전 부장판사가 애초에 일선 재판부의 판단에 개입할 법적 권한(직권)이 없으므로 직권남용이 성립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그의 행위가 부당하다는 단서는 달렸다. 특히 1심 재판부는 "이런 행위는 구체적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절차 진행에 간섭한 것"이라며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2019년 초부터 정치권에서 나오던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법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재판부가 '위헌적 행위'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힘을 얻었다.

이탄희 의원 등은 임성근·이동근 두 사람이 임기 만료로 퇴직하기 전에 탄핵 추진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다 목표를 임 전 부장판사로 좁혔고, 결국 탄핵안은 임 전 부장판사 퇴직 24일 전인 올해 2월 4일 가결됐다.

1985년과 2009년 국회에 대법관 탄핵 소추안이 두 차례 발의된 적은 있지만 모두 무산돼 실제 탄핵 소추가 성사된 것은 이때가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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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임성근 前부장판사 탄핵 각하… 입장 밝히는 박주민-이탄희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이 열렸다. 공판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이탄희 의원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공판에서 헌재는 재판관 5(각하)대 3(인용) 의견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관 1명은 심판 절차를 종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가 올해 2월 4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관인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결정한 지 8개월여 만에 나온 결론이다. 2021.10.28 saba@yna.co.kr



◇ 탄핵 소추 앞두고 김명수-임성근 '사표 거부' 진실 공방

임 전 부장판사는 사표 수리 문제를 놓고 김명수 대법원장과 진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탄핵 소추안 가결 전날 임 전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건강 문제로 사의를 표하기 위해 대법원을 찾았는데 김 대법원장이 국회의 탄핵 소추를 염두에 두고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김 대법원장은 의혹을 부인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가 공개한 당시 대화 녹취록에는 김 대법원장이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라고 한 언급이 담겼다. '거짓 해명' 논란까지 불거지자 김 대법원장은 사과했다.

탄핵 사건이 헌재로 넘어가자 임 전 부장판사를 돕겠다며 변호사들이 앞다퉈 몰린 일도 화제가 됐다.

모두 155명의 대리인 지원자 가운데는 대한변호사협회 전 회장이나 국회의원, 청와대 민정수석, 부장판사, 검사장 등을 지낸 변호사들도 포함됐다.

임 전 부장판사는 지원자 가운데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 김현 전 변협 회장, 강찬우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윤근수 법무법인 해인 대표변호사를 선임했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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