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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선 쟁점으로 떠오른 ‘주 4일 근무제’...실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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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 근무제’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 등 다양한 업무 방식과 ‘워라밸(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약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 4일 근무제 논의에 기름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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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021년 10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직자로 부터 받은 꽃다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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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27일 JTBC에 “인간다운 삶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주 4일 근무제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며 “장기적인 국가과제가 되겠지만,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가급적 빨리 도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 주식회사를 통해 주 4일 근무제를 시범 도입하기도 했다. 앞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국민은 주 4일 근무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 4일 근무제 실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다른 후보들도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같은 공약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와 경영자 간 인식 격차


문제는 우리나라에 ‘주 4일 근무제’가 실현될 만한 여건이 갖춰졌느냐는 것이다. 우선 노동자와 경영자 간 인식 격차 해소가 급선무다. 올 3월 구인·구직 사이트 잡플래닛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 4일 근무제 도입에 대해 응답자(주 4일 근무제 등 단축근무를 경험한 적이 없는 노동자)의 97.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다만 주 4일 근무제 도입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는 대신 급여가 삭감되는 경우에는 63.8%가, 연차 등 유급휴가가 줄어드는 경우는 60.1%가 도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주 4일 근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워라밸이 좋아질 것”이란 답이 57.7%로 가장 높았고, 이어 “생산성 향상(26.3%)”, “휴일 증가로 인한 내수 활성화(8.9%)” 순이었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급여 삭감(38.9%)”, “도입이 어려운 업종에 대한 형평성 문제(33.3%)”, “노동 강도가 세질 것(16.7%)” 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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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들과 달리, 경영자와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7.6%가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로는 “업무 일정을 맞출 수 없을 것(57.1%)”, “생산성 저하(41.6%)”, “업종 특성상 도입이 어렵다(39.9%)”가 상위 3위를 차지했다.

설문조사 결과만 보면, 주 4일 근무제 도입에 대해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 노동자 측은 보다 다양하고,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는 업무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데 반해, 경영자 측은 주 4일 근무제 실시에 의한 생산성 저하나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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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 정착도 갈 길 먼데...


사실, 주 4일 근무제는 정부가 2018년 7월 1일부터 시행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하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시간외근무 시간을 포함한 1주일 근무시간 상한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제한한 제도로, 올해 7월 1일부터는 직원 수 5명 이상 ~49명 이하의 소규모 기업까지 확대 적용됐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한 사업주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전까지도 시간외근무 시간을 포함한 1주일 최대 노동시간은 근로기준법상 52시간이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시간외근로(연장근로)에 ‘휴일근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 근로자는 1주일간의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시간외근무 최대 12시간, 그리고 휴일근무 최대 16시간을 합한 총 68시간까지 일하는 것이 허용되어왔다.

그러나 2018년 7월 개정 근로기준법에서 ‘휴일근무는 연장근로에 포함된다’고 한 행정해석을 수정, 그 결과 1주일간의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게 됐다. 휴일근무수당은 변경되지 않아 8시간 이하분에 대해서는 50%의 가산이, 8시간 초과분에 대해서는 100%의 가산이 적용된다. 또 2018년 법 개정에서는 법정 근로시간의 예외 적용이 인정된 ‘특례업종’이 존재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특례업종의 인정은 무제한 노동을 가져온다며 전면 폐지를 요구했다. 그래서 개정법에서는 노동계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 법정 노동시간의 예외 적용이 인정되던 특례업종을 종전의 26개 업종에서 5개 업종(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그 외 운송 관련 서비스업, 보건업)으로 축소했다. 한편 만 15세 이상부터 만 18세 미만 노동자의 법정근로시간은 1주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연장근로시간은 6시간에서 5시간으로 제한된다.

◇주 52시간 근무제...노동시간 줄었지만 고용 안정은 ‘글쎄’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 이유는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워라밸을 추진함과 동시에 새로운 고용 창출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기 전인 2017년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1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었다.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2149시간)뿐이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노동시간은 줄긴 했다. 2017년 2018시간이었던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20년에는 1908시간으로 크게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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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OECD 회원국 근로시간. 한국은 연평균 190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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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문제도 드러났다. 임금 등 처우 수준이 높은 대기업의 경우 기존 종업원이 할 수 없게 된 잔업시간분을 채우는 노동력을 상대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지만, 처우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의 경우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는 ICT 투자 증가 등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중소기업은 자금 조달이 어렵고 ICT 투자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또 노동력을 확보하더라도 사회보험료 등 비용이 추가로 늘어 경영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종업원의 잔업시간을 일부만 계산해 실제 일한 것보다 적은 임금을 지불하는 경우도 생겨났고, 숨은 잔업이 늘어나는 문제도 발생했다.

◇주 4일 근무제 도입한 나라와 기업들...성과는?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 일부 국가들은 이미 주 4일 근무제를 법제화했고,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일부 노동자를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스페인에서도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스페인 산업부는 근무시간 단축에 따라 급여가 삭감되지 않도록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시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는 직원의 10%를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다만 이들은 급여의 15%가 삭감된다. 텔레포니카는 생산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이 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뉴질랜드 부동산 회사인 퍼페추얼가디언은 2018년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후 현재는 이 제도를 정착시킨 업체로 유명하다. 앤드류 반스 퍼페추얼 창업자는 “회사는 번영하고 있다”며 “종업원은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건강, 자원봉사 활동에 쓸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반스 창업자는 비영리 커뮤니티 ‘글로벌 주 4일 근무제(4 Day Week Global)’를 설립해 이 제도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백서를 제공하고 있다.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언차티디의 뱅스 베니테즈 공동 창업자는 “근무 시간에 시간 낭비가 너무 많았다”며 “주 4일 근무제 도입으로 근무 시간이 줄었음에도 생산성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됐고, 직원들은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무 스트레스가 줄고, 번 아웃이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기업 문화가 보수적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주 4일 근무제를 시험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일본 3위 금융그룹인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약 4만5000명의 직원에게 주 3일 또는 주 4일 근무제를 고르도록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투데이/배수경 기자 (sue6870@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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