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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팀장 칼럼] KT 구현모와 코오롱 이웅열의 위기대응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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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지난 25일 약 85분간의 전국적 인터넷 장애 사고를 낸 KT의 홈페이지에 26일 오후 2시 구현모 대표 명의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인 28일 구 대표가 직접 얼굴을 드러냈다. 사과를 위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기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그는 고개를 숙였다. 최근 3일간 벌어진 일련의 KT 대응을 보면서 다수의 사상자를 낳았던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가 떠올랐다.

2014년 2월 17일 오후 9시 15분쯤 경주 마우나 리조트 강당 2층이 붕괴됐다. 이 사고로 10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나왔다. 당시 코오롱그룹을 이끌던 이웅열 회장은 다음날인 18일 오전 6시 경주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은 “유가족분들에게 엎드려 사죄드린다”라며 “코오롱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된 점도 책임을 통감한다”라고도 했다.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 위중한 사고였기 때문이었겠지만, 지체 없는 신속한 타이밍, 해명이 아닌 진심 어린 사과였다는 점에서 여론의 비판을 조금이라도 수그러지게 한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KT 구 대표의 첫 사과는 어땠나. 25일 오전 11시 20분쯤부터 오후 12시 45분(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KT가 서비스 재개를 보고한 시점)까지 약 85분간 이어진 KT의 전국적 유‧무선 서비스의 중단·지연 등 장애가 발생한 지 24시간도 더 지난 26일 오후 2시쯤에서야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최신 설비 교체작업 중 발생한 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가 원인이며, 정부 원인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간단한 현황 설명이 이어졌다. 진심 어린 사과인지, 해명인지, 브리핑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보상책이 공개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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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대표가 28일 지난 25일 발생한 KT의 유·무선 인터넷 장애와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구 대표가 얼굴을 드러낸 건 사고 이후 3일 만이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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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 대표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협력사 직원의 실수로 인한 인재(人災)였음을 공식 확인했을 뿐, 첫 사과에서 한발 더 나아가지 못했다. 85분간의 인터넷 먹통으로 점심 장사를 망치고 일하기 위해 터지는 인터넷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주식 매매도 하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를 달랠 카드는 사고 이후 3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없어 보인다.

KT도 위기 대응 매뉴얼이 있을 것이다. 사고가 났을 때 구 대표를 필두로 위기관리위원회가 돌아가고, 왜 발생한 사고인지,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피해 범위가 어느 수준인지,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대표이사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관한 여러 차례 회의와 질책과 토론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사고 수습, 원인 규명, 피해 범위 파악 등에만 힘 쏟는 사이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은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위기 대응 매뉴얼이 있더라도 그대로 따르기 어려울 수 있다. 전체를 꿰뚫어보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는 위기 관리 컨트롤타워가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다. 3년 전 아현지사 화재로 국지적 인터넷 장애 사고를 낳았던 KT가 사고를 반복한 데 이어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는 건 컨트롤타워의 실패로밖에 볼 수 없다.

“사고가 나기 전 수많은 위험 징후가 있지요. 조직 내에서는 이걸 몰라요. 알아도 넘어가죠.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데도 말이죠. 밖에서는 완전히 비상식적인 일이 안에서는 상식처럼 돌아갑니다. 사고는 그때 납니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상식 밖의 장애 발생 원인 규명 때문에 귀한 시간을 다 날려버리고 있는 KT 컨트롤타워의 처절한 자기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장우정 통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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