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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노랑머리' 이재은, '폭군' 아버지→전남편…"정신 차리니 몸이 베란다에" ('만신포차')[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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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국민 여동생' 이재은
이혼 후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
'노랑머리'와 '다시 한번 로맨스' 고민


[텐아시아=서예진 기자]
텐아시아

사진=유튜브 채널 '배짱이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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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은이 오랜만에 근황을 전했다.

27일 유튜브 채널 ‘베짱이엔터테인먼트’에는 '영화(노랑머리) 이재은vs만신들! 빚 때문에 파격노출까지! 이제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이날 트로트가수 박기찬이 ‘만신포차’에 취직해 첫 인사를 나눴다. 그는 만신들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며 호감을 샀다. 이어 배우 이재은이 찾아왔다. 이재은은 "결혼하셨냐”는 질문에 "갔다 왔다”며 ‘돌싱’임을 쿨하게 밝혔다. 박기찬은 이재은에 대해 “출생신고 도장도 안 말랐던 다섯살 시절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 입상하면서 아역배우로 데뷔, 2004년 드라마 ‘토자’ 여주인공 아역으로 캐스팅 돼 국민 여동생으로 불렸다”며 “하지만 지금은 이모뻘 나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에도 드라마 ‘용의 눈물’, ‘인어아가씨’ 등에 출연한 37년차 베테랑 연기자지만 요즘은 드라마에서 코빼기도 안 보인다”며 “하지만 트로트 가수까지 진출해 제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고 이재은을 소개했다.

이재은은 근황을 묻는 질문에 “댄스가수로 데뷔했다가 장윤정 씨가 '어머나' 했을 무렵에 같이 나왔다”며 “트로트 앨범을 준비했는데, 가수가 가사 내용대로 간다고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그런 가사의 노래를 부르다가 시집을 갔다"고 전했다.

이어 “요즘 드라마 단막극 출연하고 있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알바 식으로 나오고 있다”며 “고정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렇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연예계에 데뷔한 이재은은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4~5살 되던 해에 광고 하시는 분이 예쁘다고 제 사진을 찍어서 화장품 회사에 보내셨다. 300대 1로 아역모델이 됐는데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안 찍은 아동복이 없을 정도로 많은 돈벌이가 됐다. 그때부터 가장이 바뀌었다"고 떠올렸다.

한 만신은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시작한 게 어느순간 틀어져서 잠적했던 것”이라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나올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이에 이재은은 ”어렸을 때 진짜 많이 힘들었다.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며 “어렸을 때부터 뭘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한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그래야 되는건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만신은 이재은이 출연했던 성인 영화 ‘노란머리’를 언급하며 “출연 의사도 네 뜻이 아닐 것. 결혼은 현실 도피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재은은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이 것을 끝낼 수 있는 건 악착같이 벌어서 부모님에게 집이든 건물이든 뭔가를 해주고 난 빨리 이 집에서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결혼밖에 없었다"며 “못된년 같으면 그냥 나오면 되는데 못 나왔다”고 말했다.

이재은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안 났다. 엄마도 굉장히 눈치 보면서 생활했다. 아버지의 빚은 내가 다 갚아야 했다. 아버지가 너무미웠다. 그 돈을 당신이 다 쓴 것도 아니고 귀가 얇아서 돈이 다 없어진다. 내 학비랑 동생 학비도 걱정할 정도였다”며 “돈 많이 벌었을 땐 집 몇 채도 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 그 돈을 아빠가 다 없앴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은 결핵이 별거 아닌 병인데 아버지가 결핵이 있었다. 그 사실을 숨기고 결혼하신 것”이라며 “어머니의 권유로 일을 관두신 후 친정의 도움으로 살았다. 그 때문에 외할머니도 아버지를 미워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전 남편이 언급됐다. 이재은은 “제 생각에는 장소만 옮겼다. 오죽하면 아빠한테 ‘내가 돈 찍어내는 기계야? 나는 왜 공장의 기계처럼 그러고 살아야해?’라고 얘기했는데 이게 아빠에서 남편으로 바뀐 것 뿐이었다”며 “제 소원은 현모양처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 똑바로 아끼면서 아기 키우면서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제 친정에는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냐. 거의 연 끊다시피 하고 나왔다. 그러고 1년쯤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마는 남은 치료비와 집을 판 돈으로 노후 대책을 세우기위해 건물을 지으려고 하셨나보다. 그런데 그걸 사기당했다. 엄마도 저랑 7~8년 만에 연락을 했다. 엄마는 하늘 아래 같이 있는데 도움 못 돼서 미안하다며 우셨다. 그때부터 엄마랑 같이 생활했다. 6년 정도 됐다. 지금은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그 목표로 사는 거다. 결혼생활을 할 때보다는 얼굴빛이 좋아졌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재은은 "결혼해서 10년 동안을 사람 사는 것처럼 안 살았다”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그는 3~4년쯤 됐을 때 우울증이 너무 심하게 와서 죽을 뻔한 적이 몇번 있었다. 상담도 받고 약도 먹었는데 약을 먹으면 생각을 안 하게 돼서 좋긴 한데 내가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다. 어느 날은 정신을 차려봤는데 몸이 베란다에 가있더라.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재은은 자신의 고민 키워드로 ‘노랑머리’를 꺼냈다. 그는 “’노랑머리'가 애증의 작품”이라며 “제가 20대에 찍은 작품인데 일이 딱 끊길 나이에 들어왔다. 고민을 많이 한 게 노출신이 많았고, 집안 상황이 경제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뭔가를 해야 해서 출연을 결심했다”며 “당시 이 작품이 국내 최초로 등급보류판정이 나와 상영이 안 될 뻔했는데 다행히 국제 영화제에서 생을 받았다. 그래서 그 해에 대종상 신인여우, 상청룡상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제겐 영광스러운 작품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픈 작품. 하기 싫었던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건 제 자랑이지만 제가 출연했기 때문에”라고 덧붙이며 배우로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노랑머리’로 인해 굉장한 악플에 시달렸다. 들어서는 안 될 욕까지도 들어봤다”며 “저 작품을 하면서 성인으로 갈 수 있는 발판도 만들었고, 욕은 많이 먹었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 제 리즈의 첫 카테고리를 꼽자면 '노랑머리'다. 그런 영광의 리즈 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이재은의 두 번째 고민 키워드는 ‘다시 한번 로맨스’였다. 그는 "'또 다시 사랑이 올까’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다”며 “아이를 되게 갖고 싶었다. 엄마 돌아가시면 나 혼자가 되지 않나. 내 삶의 목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에 다시 한 번 사랑이 온다면 아이를 낳고 잘 살 수 있을까. 안 된다면 그 사람이 데리고 온 아이라도 다시 한 번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을까"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 y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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