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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살인의 추억’ 대법원도 무죄... 다시 미제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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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는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인 택시기사 A(52)씨에 대해 대법원이 28일 무죄를 확정했다. 2009년 발생한 후 12년이 지났지만 이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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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이 일어난 2009년 경찰이 사건 현장을 감식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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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다툰 뒤 집 나섰다 실종

제주도에서 유치원 보육교사로 일하던 이모(27)씨는 2009년 1월31일 밤 제주시청 인근에서 고교 동창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택시를 타고 제주 용담동에 있는 남자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남자친구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화가 난 이씨는 남자친구와 다툰 뒤 집을 나섰다. 2월1일 오전 3시3분쯤 이씨는 남자친구에게 ‘실망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귀가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콜택시를 요청했다. 그러나 늦은 새벽 시간이어서 차가 배치되지 않았다.

이후 이씨는 행방불명됐다. 귀가하지도 않고 어린이집에도 출근하지 않는 이씨가 걱정된 가족은 2월2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정황상 범죄 관련성이 높다고 보고 신고 하루 만인 2월3일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이씨를 찾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경찰·군인·119구조대 등을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실종 5일 만인 2월6일 제주 아라동 은성사회복지회관 옆 밭에서 한 주민이 이씨의 가방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가방 안에는 이씨의 휴대전화와 지갑, 신분증 등 소지품이 들어 있었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이로부터 2일 뒤인 2월8일이다. 이날 오후 1시50분쯤 제주 애월읍 고내봉에서 산책을 하던 한 주민이 농업용 배수로에서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이씨는 실종 당일 입었던 밤색 무스탕을 입고 있었다. 치마와 속옷은 벗겨진 상태였다. 국과수 감식 결과 이씨는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증거 흩뿌린 범인, 국과수와 의견충돌, CCTV 전무… 미궁에 빠진 경찰 수사

이씨의 시신이 발견됐지만 경찰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이씨의 시신은 그녀의 집에서 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그녀가 실종 당시 소지하고 있던 가방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그녀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은 두 장소의 중간 지점쯤이었다.

경찰은 범인이 범행 흔적을 지우려 의도한 것이라고 봤다. 범인이 이씨를 납치한 후 성폭행하려 했지만 저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했고,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려 일부러 소지품을 시신이 있는 장소에서 먼 곳에 숨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농촌 마을인 탓에 CCTV가 없어 당시 상황을 특정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국과수는 이씨가 범행이 일어난 2월1일이 아니라 시신이 발견된 2월8일에서 1~2일 전 숨졌다고 판단했다. 시신의 건조와 부패 상태, 체온 등을 고려했을 때 사망하고 일주일이나 지났을 가능성이 낮고, 실종 이후에도 음식물이 계속 공급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시신이 별로 부패하지 않은 것은 당시 발견 장소가 춥고 햇볕이 들지 않는 응달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경찰은 숨진 이씨가 2월 1일 콜택시를 놓친 후 직접 택시를 잡아서 탔을 것이며 택시 기사가 용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제주 지역 택시 기사 5000명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10여 명으로 용의자를 압축했고, 진술을 번복하는 택시기사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당시 40대였던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계속 번복했다. 사건 당일 손님을 태운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태운 적이 없다”고 했다가 “남자 손님을 태웠던 것 같다”며 오락가락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는 ‘거짓’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기 위해서는 물증이 있어야 했다. 경찰은 증거를 찾기 위해 A씨의 택시를 정밀 감식했지만, 이씨와 관련된 흔적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씨의 유류품에서 발견된 DNA와 A씨의 DNA를 대조했으나 불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경찰은 끝내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고, 2012년 6월 수사본부가 해체되면서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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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무스탕을 입은 돼지를 이용해 보육교사 이모씨의 사망 시간을 파악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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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7년 만에 재수사

제주경찰청은 2016년 2월 장기 미제 전담팀을 꾸려 이씨 살인 사건에 대해 다시 수사를 재개했다. 풀어야 할 첫 과제는 국과수와 이견을 보이는 이씨 사망 시간이었다. 이를 위해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에서 개 3마리와 돼지 4마리를 이용해 5차례에 걸쳐 시신의 부패 속도 실험을 진행했다.

사건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동물 사체에는 피해자가 착용한 무스탕까지 입혀 실험했다. 기후도 최대한 동일 조건에 맞췄다. 실험에 참여한 법의학 교수와 검시관, 경찰수사연구원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이씨가 실종 당일 살해된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 확보한 증거물들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한 경찰은 추가 증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씨 어깨와 우측 무릎에서 발견된 2~3㎝ 크기 섬유 실오라기가 사건 당일 A씨가 입었던 남색 셔츠와 같은 종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택시 운전석과 트렁크에서 이씨 치마, 무스탕과 동일한 섬유의 실오라기도 발견됐다. 이씨 가방과 치마에서는 박씨 면바지와 동일한 섬유조각을 추가 확보했다.

경찰은 재수사 착수 2년이 넘은 2018년 12월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발부하며 미궁에 빠졌던 이씨 사건도 풀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간접증거 많지만… 결국 직접증거 없어 무죄

검·경은 A씨를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2019년 드디어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모두 A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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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보육교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박씨가 2019년 제주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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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경찰이 A씨 청바지를 위법한 방법으로 확보한 것으로 봤다. 당시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청바지를 가져갔고, A씨를 압수 절차에 참여시키거나 목록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근거로 A씨의 청바지는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 택시에서 발견된 동물털은 그와 비슷한 소재로 제작된 옷이 많고, 완전히 같은 섬유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 밖에 사건이 발생한 일대에서 촬영된 CCTV에서 목격된 차량이 A씨 택시라고 보기 어려운 점, 이씨 손에 상처가 있지만 A씨 옷이나 택시에서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동물실험은 모든 조건이 통제된 상태에서 이뤄진 게 아니고, 이씨가 섭취한 음식물 등으로 봤을 때 실종 당일 사망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도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A(52)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 및 그 예외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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