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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코로나19 국민성금 노린 재향군인회의 불법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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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던 지난해 초 재향군인회는 태양광업체 P사와 불법 명의대여 계약을 맺고, 재해구호협회(희망브리지)에 마스크를 판매해 부당 이득을 챙기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재해구호협회는 코로나 19 국민성금으로 마스크 등 위생용품을 대량으로 구매,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공급할 예정이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3월 재향군인회가 작성한 내부 문건을 최근 입수했다. 재향군인회의 수익사업을 총괄하는 종합사업본부가 작성한 '신규 추진사업 보고'에는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의 물품 조달 사업을 새로 추진하는 계획이 담겨있다.

보고서에는 물품 공급을 4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며, 협의중인 수요처로 '재해구호협회'를 적시했다. 재향군인회가 사업 계획 당시 재해구호협회를 마스크 판매처로 염두에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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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재향군인회 종합사업본부는 재향군인회장에게 마스크 등 보건 위생용품 유통사업을 신규 추진사업으로 보고했다.
신규 사업 계획을 보고한 지 한 달여 뒤, 재향군인회 종합사업본부 황동규 본부장은 P사 대표 백모씨와 비밀 계약을 맺었다. 마스크 유통사업과 관련한 '사업위수탁계약서'다. 재향군인회는 환경관리사업단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마련하고, 사업단 운영은 전적으로 P사가 맡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계약서는 또 매출이 발생할 경우 우선 재향군인회 본부 비용을 공제한 뒤 사업단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별도의 사업단 법인 통장으로 입금하도록 규정했다. 실질적인 마스크 판매 사업은 P사가 맡아서 운영하고, 수익의 일부를 재향군인회와 나누는 전형적인 명의대여 사업 방식이다.

이는 재향군인회가 이름을 빌려준 대가로 사실상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것이어서 수익사업은 직접 운영해야 한다는 재향군인회법을 위반한 불법 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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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재향군인회 종합사업본부가 P사와 체결한 불법 명의대여 계약서.
뿐만 아니라 계약서에는 환경관리사업단장을 P사가 추천하면 재향군인회가 심의를 거쳐 임명하며 사업단장은 직원을 자체 선발하고 모든 경제적 법적 책임은 P사가 진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에대해 재향군인회는 "실무자들끼리 (계약을) 했을 수 있다"며 "재향군인회 공식 입장으로는 정식 계약으로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과 달리 불법 명의 대여 계약은 실제 실행이 이뤄졌다. 지난해 5월 정모씨가 환경관리사업단의 단장으로 선임됐고, 직원도 채용됐다. 10월 28일 현재까지 재향군인회 종합사업본부 홈페이지에는 환경관리사업단에 대한 소개글에 마스크 관련 사업을 최우선 주력사업으로 추진중이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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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향군인회 종합사업본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환경관리사업단의 사업 소개 글에 '마스크 관련 사업을 최우선 주력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문구가 남아있다.
재향군인회 출신 재해구호협회 사무총장과 의문의 마스크 거래
그러나 정작 재해구호협회에 마스크를 판매한 주체는 재향군인회가 아니라 P사였다. P사는 지난해 6월 재해구호협회에 마스크 200만 장을 33억 원에 판매했다.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명의대여 계약을 맺은 재향군인회는 왜 마스크 거래에서 제외됐을까? 뉴스타파는 재향군인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증언을 확보했다.

이거는 내가 들은 얘기예요. 확실한 어떤 확인된 정보는 아니지만은 재해구호협회 사무총장이 지금 그 분인지 모르겠는데, 그 쪽에서 과거에 향군에 근무했던 전력이 있잖아요.경력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 거래 자체가, 향군과 200만 장을 거래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하면 오해 소지가 있으니 향군과 직거래 안 한다는 이런 방침을 정한 거예요... 그 쪽에서 협의 중단, 이게 딱 통보가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던 입장이에요.
- 재향군인회 관계자


재향군인회장 비서실장 출신인 김정희씨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재해구호협회가 재향군인회로부터 마스크를 직접 구매하면 특혜 의혹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P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설명이다. 이는 지난 5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재해구호협회 내부 관계자의 증언과 일맥상통한다.

⚫ 지인 : 콕 찍었다며 (사무)총장이, 거기랑 하라고.
⚪ 재해구호협회 내부 관계자 : 거기(P사)랑. 나도 내가 얘기 하면 큰일 날 것들이 많아서 얘기를 못하겠어 진짜
- 재해구호협회 내부 관계자가 지인과 나눈 대화


재향군인회 마스크 거래 없다는 거짓말 들통나
재향군인회 환경관리사업단은 외형상으로만 마스크 거래에서 빠졌을 뿐 실제로는 개입돼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이 지난 8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답변서에는 재향군인회 환경관리사업단과 P사의 마스크 거래 내역이 등장한다. 지난해 6월 17일 재향군인회는 장당 1,200원에 구입한 마스크 15만 장을 원가 그대로 P사에 판매했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이들의 마스크 거래는 정식 매매 계약서 없이 구두로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이날 P사는 재해구호협회에 33만 장의 마스크를 판매했다. 지난해 시행된 마스크 긴급수급 조정조치에 따라 마스크 판매사는 식약처에 거래내역을 신고해야 했는데, P사가 신고한 판매처는 재해구호협회가 유일했다. 재향군인회가 구매한 마스크가 P사를 거쳐 재해구호협회에 판매됐다는 방증이다. P사는 재해구호협회에 마스크를 판매한 지 5일 뒤 물품중개대금 명목으로 재향군인회에 4,000만 원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재향군인회로부터 15만 장의 마스크를 원가에 건네 받은 P사가 마스크 판매 이익금의 일부를 재향군인회에 되돌려준 것이다.

그동안 재향군인회는 P사와 마스크 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왔다. 하지만 P사와 주고받은 세금계산서로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뉴스타파는 P사와 불법 계약을 맺은 황동규 종합사업본부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고,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국가보훈처는 재향군인회가 명의를 대여하거나, 사기업 명의로 거래를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또 정부의 승인 없이 재향군인회가 마스크를 판매한 것도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답했다.

말 바꾼 재해구호협회
재해구호협회는 최근 P사로부터 200만장의 마스크를 구매하게 된 경위에 대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재해구호협회는 "P사가 직접 재해구호협회로 전화를 걸어 와 마스크 판매의사를 밝혔던 수 많은 업체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소장에서 재해구호협회는 "재향군인회로부터 P사를 소개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뉴스타파는 입장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해명을 요청했으나 재해구호협회 관계자는 "소송에 관련된 부분이라 답할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5월 코로나 19 국민성금을 운용하는 재해구호협회가 태양광 업체인 P사와 진행한 30억 원대의 마스크 거래 배후에 국가보훈단체인 재향군인회가 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후 재향군인회는 재해구호협회와 P사간의 마스크 거래와 자신들은 무관하다며 부인했고, 재향군인회는 해당 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뉴스타파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해구호협회가 P사에 지불한 마스크 구매대금 33억 원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돕기위해 국민들이 기부한 성금이다. 재향군인회와 P사가 불법적인 명의 대여 계약을 통해 실제로 어떤 부당 이익을 취했는지 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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