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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반복되는 통신 장애 사고에 허둥대는 한국통신(KT)의 위기관리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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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강한 조직은 실패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잘못을 되돌아보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위기에 취약한 조직은 위기를 넘기기에 급급하다. 결과적으로 같거나 비슷한 위기를 반복해서 겪는다. 위기로 고생 했지만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통신(KT)의 통신장애가 2018년에 이어 최근 다시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달랐지만 많은 국민들이 커다란 혼란을 겪고 피해를 입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고 발생 후 KT가 대처하는 것을 보면 과거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KT의 위기관리 능력과 수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두 사건을 비교해 보자.

지난 11월 25일 오전 11시 20분쯤부터 전국 곳곳에서 KT의 유·무선 서비스가 85분 가량 일제히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영업자들은 점심 장사를 앞두고 결제 시스템이 마비돼 혼란을 겪었다. 직장인들은 업무를 멈춰야 했다. 실시간 주식 거래와 학교의 비대면 수업도 중단됐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구청 민원 발급기와 버스터미널 발권기도 먹통이 되면서 대면 창구에 사람이 몰렸다. 병원도 인터넷이 마비되자 진료를 멈춰야 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태 발생 20여분이 경과한 후 정보통신사고 위기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했다. 오후 12시 45분께 KT로부터 서비스 복구를 보고받았고, 정보통신사고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라 '방송통신재난대응상황실'을 구성해 가동했다.

통신 서비스 먹통 사고의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KT 측은 부랴부랴 사고 발생 원인을 설명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사고 원인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해명을 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조직의 위기관리 능력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게다가 KT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고 발생 원인에 대해 서로 다른 메시지를 발표함으로써 국민 혼란은 가중됐다. KT는 사고발생 직후 "대규모 디도스(DDos) 공격으로 네트워크에 장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3시간 만에 디도스 공격이 아닌 '라우팅(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라며 말을 바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T의 최초 해명 직후 이를 부인했다. 과기정통부 측은 KT 통신망 장애의 원인이 디도스를 등 외부공격인지 확실치 않고 KT 측의 서비스 장애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 발생 후 조치 상황을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0월 25일 오전 11시 20분 유무선 인터넷 장애 발생, 11시 40분 KT, 과기부에 사고 보고, 11시 56분 과기부, 위기경보 ‘주의’ 발령, 11시 57분 KT 장애복구 시작, 12시 45분 장애복구 완료, 오후 3시 KT, 웹 페이지와 앱에 안내문 게시, 10월 26일 오후 1시 55분 CEO 명의 사과문 배포.

2018년에 발생했던 KT 아현동 통신구 화재로 인한 통신대란 사고도 되돌아보자. 밤새 내린 폭설로 서울 시내가 온통 눈으로 뒤덮였던 2018년 11월 24일 토요일 오전 10시16분, 서울 서대문구, 마포구 주민들은 '긴급 재난문자'를 받았다. 인근 서대문구 아현동 KT 전화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문자를 끝으로 휴대폰 통신은 물론 초고속인터넷, 인터넷멀티미디어TV(IPTV)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방송통신 서비스가 모두 '먹통'이 됐다. 통신 두절은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에 그치지 않고 중구, 용산구, 경기도 고양시와 성남시 일부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유선통신을 기반으로 한 주변 지역의 카드결제, 배달전화 등도 사용불가였다. 인근 공중전화는 물론 해당 지역 소방서 119 시스템까지도 한때 장애를 겪었다. 당시 언론은 ‘정보통신기술 강국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급소가 드러났다’, ‘화재 한방이 대한민국 수도를 원시사회로 되돌렸다’며 사태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사고 발생 후 정부는 원인 규명과 함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을 단장으로 하고 정부 관계기관과 민간 통신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문제점을 점검하고 재발방지와 신속한 재난대응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KT회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통신 관련 안전유지, 시설관리, 화재예방 등을 총괄하는 안전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통신 장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 조치도 취해졌다. 당시 KT가 추산한 물적 피해액만 469억 원에 달했다. KT는 사고 이후 개인과 소상공인의 피해 보상을 위해 약 110만 명에게 1~6개월 치 요금을 감면했고 소상공인 1만 2000여명에게는 7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번 통신대란 사고에 있어서도 이제 KT는 피해자 보상 등이 논의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향후 유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거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위기관리 차원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대목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한 목소리(One Voice)’의 문제다. 위기관리의 대표적인 기본 원칙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위기시 한 목소리를 내라는 것임은 국내외 많은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사항 중 하나다. 이번 사고 발생 직후 KT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로 다른 사고 원인을 발표했다. 이를 접한 언론과 국민들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통신 주무부처와 현장의 통신사업자간에 원활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과연 구축되어있는지, 구축되었다면 어떻게 운영되었기에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는지 규명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향후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선책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둘째, ‘신속성(Quick)’의 문제다. 통신 마비로 인한 파급효과는 그 어느 분야보다 즉각적이고 광범위하다. 그 만큼 위기대처와 설명에 속도전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고의 경우 통신장애가 무려 85분간 이어졌다. 국민 대상 안내문을 게시한 것은 당일 오후 3시가 되어서였다. 늑장 수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아현동 화재 사고시 논의가 되었던 것처럼 특정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하면 다른 통신망을 활용해 우회 통로를 확보함으로써 통신망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안이 왜 강구되지 않았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대국민 안내 메시지도 사고 발생후 준비하려면 쉽지 않은 만큼, 평소에 예상 위기 유형별로 다양한 시안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상황에 맞춰 수정보완해 신속히 발표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여론을 리드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셋째, 국가 차원의 통신망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 운용이 절실해 보인다.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최우선 관리 대상에 포함되는 것 중 하나가 정보통신망 분야다. 그 만큼 중요한 것이 통신망이다.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사회 전반에 미치는 커다란 혼란을 감안한다면 정보통신망을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일은 해당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해야할 분야이다. 이번 사태 대처 과정을 전하는 언론보도를 보면 KT와 과기모두 물 흐르듯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보다 허둥대고 놓치는게 많았다. 정보통신 사업자와 주무부처간 신속한 보고와 협력 채널 구축의 이상 유무를 다시한번 면밀히 재점검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명심할 일은 위기 발생시에 대비한 시스템과 매뉴얼을 만들어 두었다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준비한 시스템과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복잡다단한 정보통신망의 안전관리에 위해를 가할 대내외 요인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럴수록 정보통신망 관리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번 사고의 당사자인 KT 등 통신사업자들은 실제 사건 발생 시와 동일한 수준으로 평소에 다양한 상황을 가정한 실전 대비 훈련을 반복적으로 실시해 몸에 배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년 아현동 화재사고 이후 통신망 사고에 대비해 과연 얼마나 실전에 가까운 반복 훈련을 실시하고 점검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조치와 노력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기관에게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요즘 대선 정국에다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많다보니 이번 통신대란 사건이 자칫 일과성 사고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엄중함을 감안해 국회나 감사원 등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철저히 조사하고 확인해 제대로 된 개선책이 정착되도록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다.

유재웅 우버객원칼럼니스트[을지대학교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신문방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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