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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선진국 기반 구축”, “빛의 크기가 그늘 못 덮어”… 노태우 공과 엇갈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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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빈소 조문 행렬

사위 최태원 회장 일정 바꿔 조문

송영길 “용서 구했던 마음 기억”

이준석 “큰 과 있지만 여러 성과”

차기 대선주자들도 잇따라 발길

전두환은 건강 문제로 못 올 듯

김영삼 前 대통령 이어 두 번째

실형선고로 국립묘지 안장 제외

장지 파주 통일동산 인근 가능성

NYT “반란·부패로 감옥 신세 져”

아사히 “국제사회서 韓 지위 높여”

중·러 언론선 북방외교 정책 부각

세계일보

박병진 국회의장(왼쪽 사진부터), 김부겸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7일 각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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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엔 26일 여야 정치인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마련된 빈소엔 부인 김옥숙 여사와 아들 노재헌 변호사,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등 유족들이 상주석에 자리해 조문객들을 맞았다. 사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예정된 출장 일정을 늦추고 조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노태우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그는 한 시간가량 빈소에 머문 뒤 기자들에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에 관해서는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소위 북방정책을 표명해서 이렇게 우리나라의 시장을 아주 거대하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빨리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그런 기반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조문 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한 것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조문객 방명록에 이름을 적지 않았다. 그는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송영길 대표는 “고인께서 살아생전에 광주를 방문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행동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구했던 마음과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억한다”고 했다. 송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의 공과를 균형 있게 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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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 사진부터),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27일 각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나오고 있다. 맨 오른쪽은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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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지도부의 조문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빈소를 찾은 뒤 “고인은 민주화로 이양하는 과정에서 역할이 있었고 북방외교 등으로 여러 성과를 냈던 공이 있다. 국민에게는 12·12 군사반란행위 등에 참여했던 큰 과가 있다”며 “현대사에서 큰 이정표를 남기신 분이라 생각하고 추모한다”고 밝혔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고인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라고 했다.

다른 대권 주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국민의힘 윤석열 경선 후보는 “편안한 영면 되기 바란다”면서 말을 아꼈다. 홍준표 후보는 “북방정책을 시행하면서 대북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게한 그런 분”이라며 “재임 중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한국 사회의 조직폭력배를 전부 소탕한 그런 큰 업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분들, 고인을 대신해서 5·18 영령들께 무릎 꿇고 참회하신 고인의 가족분들께도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씀 드린다”고 했다.

아들 노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많은 분이 애도를 표해주시고 위로 말씀을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고인께서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고 앞으로 힘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노 관장과 이혼 소송 중인 최 회장은 조문 뒤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는데 아무쪼록 영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빈소를 찾았다. 노 전 대통령과 ‘60년 지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건강 문제로 빈소를 찾지 못할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일보

정부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닷새간의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한 27일. 대구 달서구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국가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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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정책 공헌 등 인정… 서울광장에 분향소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가 30일까지 닷새간 국가장(國家葬)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경기 파주시에 있는 통일동산 인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고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제13대 대통령을 역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사태와 5·18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역사적 과오가 있으나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공헌하였으며, 형 선고 이후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됐다”고 밝혔다.

다만 국립묘지 안장은 관련 법령에 따라 하지 않는다. 국립묘지법은 형법상 내란죄 등의 혐의로 퇴임 후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국립묘지 안장자에서 제외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유족 측은 전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장지는 재임 중 조성한 파주에 있는 통일동산 인근으로 하는 것을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장례 기간은 사망일인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이다. 장례위원장은 김부겸 총리가, 장례집행위원장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맡는다. 국가장법에 따라 국가장 기간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국기를 조기로 게양해야 한다. 영결식 및 안장식은 오는 30일 엄수되며 장소는 장례위원회가 유족 측과 논의해 추후 결정한다.

빈소 설치·운영과 영결식, 안장식 등 국가장 비용은 국고 부담이 원칙이다. 하지만 조문객 식사비용과 노제·삼우제·49일재 비용, 묘지 설치를 위한 토지 구입·조성 비용 등은 제외된다. 행안부는 “검소한 장례를 희망한 고인의 유언과 코로나19 방역 상황 등을 고려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장은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이 ‘국가장법’으로 개정된 2011년 이전 서거한 대통령들 장례는 국장과 국민장 등으로 엄수됐다. 장례기간이 9일 이내이고 비용을 전액 국고 부담인 국장이 7일 이내, 일부 국고 지원인 국민장보다는 격이 높은 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는 국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 장례는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서울시는 28일부터 시청 앞 서울광장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설치·운영한다고 밝혔다. 분향소는 28∼3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다만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 예정된 30일에는 오후 9시까지만 추모객 조문을 받는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분향소는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과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당시 서울광장에 설치됐던 분향소에 준해 설치·운영된다. 화환과 조기는 따로 받지 않는다.

한편, 정부의 노 전 대통령 국가장 결정에 대해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는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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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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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 다리 놓아”

각국의 주요 언론은 군인 시절의 이력, 정치인으로의 변신, 대통령 재임 시절의 공과 등을 다루며 26일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소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에서 군부 지원을 받은 마지막 대통령이라며 공산권 적대국가들과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용인했으나 반란, 부패로 감옥 신세를 진 인물이라고 전했다. NYT는 “그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았고, 한국은 유혈혁명을 겪지 않고 그 과정을 통과했다”는 한국외대 이정희 교수의 평가를 인용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여당 대표였던 1987년 ‘민주화 선언’을 내놓아 군 출신이면서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1990년 5월 일본을 방문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연설한 사실도 언급했다.

중국, 러시아 언론은 자국을 대상으로 한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 정책을 부각했다. 중국신문망은 “그의 임기 중 한·중 수교가 실현됐고, 수교 한 달 만인 1992년 9월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며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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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어진동 대통령기록관에 전시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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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일간 코메르산트는 “소련 지도자와 악수를 한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었다”고 보도했다. 국영 일간 로시스카야 가제타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소련을 비롯해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수교한 것”을 업적으로 꼽았다.

곽은산, 김현우, 송민섭, 이동수 기자, 광주=한현묵 기자, 강구열 기자 silv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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