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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차현진의 돈과 세상] [43] 차이나타운과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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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인천 차이나 타운의 짜장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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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강원도에 차이나 타운을 세운다는 소식에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인천과 부산의 차이나타운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슬픈 현대사의 산물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인천·부산의 차이나타운은 구한말 중국의 조계지(租界地)였다. 조계지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강대국이 독자적 행정권을 휘두르던 치외법권 지역이다. 그래서 약소국에는 울분의 땅이다. 중국도 상하이, 톈진, 광저우 등을 강대국들에 조계지로 내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소룡 주연의 영화 ‘정무문’은 상하이의 일본 조계지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1883년 제물포항을 개항할 때 인천은 만국 공동의 조계지였다. 그러나 부산은 사정이 달랐다. 고려 때부터 일본인 집단 거주 지역, 즉 왜관(倭館)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일본 전용 조계지였다. 그런데 어떤 화교가 부산 왜관에서 ‘덕흥호’라는 가게를 열었다. 일본의 텃밭을 파고들어가 한번 건드려보는, 중국의 도발이었다. 당연히 외교 마찰이 빚어졌다.

일본은 화교 상점 덕흥호의 영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그러자 중국은 조선과 맺은 조계지 협정을 근거로 강력하게 항의했다. 힘이 없던 조선은 서툴게 중재하려다 실패하고 중국에 위약금까지 지급했다. 그 뒤 인천·부산·원산 등에 차이나타운을 따로 허용했다.

일본과 중국의 조계지 경쟁에서 경제적 승자는 일본이다. 일본은 조계지마다 은행 지점을 세우고 대출을 통해 금융망을 장악했다. 그때 화교들은 장사해서 번 돈을 손금고에 쓸어 담기만 했을 뿐 대출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이 들고 다니던 손금고를 ‘짱께(掌櫃·장구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화적 승자는 중국이다. 산둥성 출신의 화교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개발한 짜장면이 오늘날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박혔다.

1883년 오늘 서울 명동의 청나라 영사관에 부산 왜관에서 일어난 덕흥호 사건이 보고되었다. 차이나타운 구상이 꿈틀거렸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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