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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미국 전문가 집단서 '한국 핵무장' 찬반 논쟁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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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 미국과 동맹 신뢰 문제 직면 땐 결국 핵무장 ”
“신뢰성 우려 과장 돼···극단적 조치할 수준 아냐”
일부 대선주자 전술핵 등 주장···미 “비확산” 확고

경향신문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해야 한다는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제니퍼 린드·대릴 프레스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는 토비 돌턴 미 카네기국제평화기금 핵정책프로그램 국장 등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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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외교·안보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핵무장 관련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일부 대선주자들이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또는 자체 핵개발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미국의 ‘비확산’ 정책은 확고하다.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한일담당 부차관보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한미연구소 주최 화상 대담에서 한국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 및 핵 공유 요구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정책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나는 해당 공약을 발표한 사람들이 미국의 정책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한 찬반 논쟁이 미국 언론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전략적 안보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올라섰고 비핵화 논의는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국,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둘러싼 고민이 미국 사회에서도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가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한국은 자체 핵폭탄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글이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들은 한미동맹이 강력한 지정학적 힘들에 의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서 이를 구할 유일한 방안은 미국이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최우선 외교정책으로 삼고 있지만 한국은 최대 교역국이자 이웃인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한국에 미국의 방위 공약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겼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북한은 전시에 한국에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미국이 본토 국민의 피해까지 감수하고 보복에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동맹은 신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면서 “한국은 자신의 방어를 미국 동맹에 의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두 교수는 1950년대 미소 냉전 시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유럽 회원국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는데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 핵 공유, 유럽 주둔 미군 증강 등 세 갈래로 신뢰의 문제에 대처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미국은 핵확산방지조약(NPT) 때문에 한국과의 핵 공유에 관심이 없고, 주한미군을 증강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한국으로선 스스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자체 핵무장을 통해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자국의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비상사태에선 NPT를 탈퇴할 수 있다’는 NPT 10조에 근거해 한국의 핵보유는 합법적이며 정당화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비확산 전문가인 토비 돌턴 미 카네기국제평화기금 핵정책프로그램 국장은 26일 스탠퍼드대 박사 후보생 로런 수킨과 함께 안보 전문매체 ‘워온더록스’(War on the rocks)에 기고한 ‘한국은 자체 핵폭탄을 개발해선 안된다’는 글에서 두 교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돌턴 국장 등은 “한국의 핵 획득은 비생산적이고 위험한 것으로서 동맹과 한국의 안보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린드·프레스 교수가 주장한 것과 반대로 한국의 핵무장은 중국과 북한의 압박과 위협을 더욱 조장할 것이란 의미다. 이들은 2017년 한국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결정했을 당시 중국이 비공식적인 제재를 통해 한국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혔던 것처럼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한국에 위협을 제기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신냉전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신남방 정책을 통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기여하고 있고, 미국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정책을 지지하는 등 한미동맹은 한국의 핵무장 없이도 중국 문제에 대응해 나갈 능력이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돌턴 국장 등은 한국이 미국의 보호에 의존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미동맹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시절 방위비 인상 압박을 경험하면서 한미동맹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게 됐지만 핵무장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동원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이 연례적인 한·미연합군사훈련조차도 핵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하며 위협적 언사와 함께 긴장을 고조시키는 마당에 한국이 실제로 핵무장에 나설 경우 북한은 그들의 핵무기가 자위적 목적이라는 주장에서 벗어나 핵 선제공격 태세를 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한 핵무장이 오히려 낮은 수준의 충돌조차 핵전쟁으로 비화되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과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의 역할을 확대하기보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여러가지 갈등 시나리오에 대비해 동맹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미국은 동맹 강화를 위해 한국의 재래식 전력 및 전략 개발을 더욱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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