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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별세 외신 보도 “한국 지위 높여… 쿠데타·부패 불명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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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의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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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외신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외신들은 노 전 대통령의 12·12 쿠데타 조력, 직선제 회복 뒤 첫 대통령 취임, 공산권과 수교한 ‘북방정책’, 수뢰로 인한 투옥 등을 언급하며 그의 공과를 조명했다.

외신들은 노 전 대통령이 한국에서 군부 집권 후 처음 실시한 직선제 대선에서 당선된 인물이란 점에 주목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6일(현지 시각) “노 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에 의해 후계자로 정해졌으나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고 마지못해 직선제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여당 대표였던 1987년 ‘민주화 선언’을 내놓아 군(軍) 출신이면서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높였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외대 이정희 교수의 말을 인용해 “그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다리를 놓았고, 한국은 유혈 혁명을 겪지 않고 그 과정을 통과했다”라고 했다.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26일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냉전 종결이라는 시대 전환기에 한국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27일 “한국 민주화에 ‘공죄’(功罪)”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민주화 후의 첫 대통령으로서 경제성장이나 포스트 냉전을 향한 정력적인 외교는 높게 평가 받는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에 대해서는 일제히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북방외교는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외교 사업 중 하나로, 자유진영 국가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노선을 타고 있는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냉전 시대 북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당시 소련과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한국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북한에 우위를 점하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도 25일 그의 북방외교를 가리켜 “세계 최고의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게 한 업적”이라고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노 전 대통령은 냉전 종결의 흐름을 타고 구소련과 중국과의 국교 수립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최대 경제 일간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남북한 긴장완화와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형성에 힘썼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냉전체제 붕괴에 기반, 구공산권 국가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외교를 전개했으며, 구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과도 적대 관계 해소에 나섰으며, 1991년에는 남북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상호 화해와 불가침을 명시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열린 88 서울 올림픽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노태우 정권 시대는 한국이 내정과 외교가 함께 크게 변화한 때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1960년대 후반부터의 고도 경제 성장인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어필하는 집대성”이었다고 규정했다. NHK 방송은 “한국의 마지막 군인 출신 대통령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끌어, 성장하는 한국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어필했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해 한국을 국제무대에 널리 알렸다”면서 “그의 재임 기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배로 뛰었다”고 했다.

대일 정책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은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5월 일본 방문 당시 역사 문제를 둘러싼 일본 측의 발언을 요구했다”라며 “당시 일왕(현 아키히토 상왕)은 노 전 대통령과의 공식 만찬에서 한국 국민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노 전 대통령이 1990년 5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연설한 사실을 거론했다.

외신들은 노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블룸버그통신은 5.18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며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당시 최소 193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사망했다”라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그는 유혈 군사 진압과 영원히 떼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의 재임 시기 경제적 성장 이면에는 노동 불안과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져 ‘한국 경제의 기적’이 위협 받았으며, 재벌의 부동산 투기로 서민의 분노가 커졌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 후 쿠데타 관여나 부정 축재 등으로 실형 판결을 받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독일 dpa 통신은 “노 전 대통령은 1996년 부패와 내란·반역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사면됐다”고 했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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