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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수도 정착할 수도 없다, 대나무 피난처에 갇힌 미래 [있지만 없는 사람들, 무국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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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명인간이 된 아이들, 로힝야
방글라, 정착 우려 '밤부 하우스'만 허용
잦은 홍수·산사태로 주거 불안정 심화
배급받아 연명…일거리도 허드렛일뿐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 돌아가기도 난망

편집자주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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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시 로힝야 난민캠프 전경. 대나무와 방수천으로 만들어진 '밤부 하우스' 셸터가 빽빽이 들어서있다. 월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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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경의 유혈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 난민캠프로 탈출한 로힝야족이 가장 먼저 손에 쥐는 건 방수포다. 현지 구호단체가 약간의 현금과 함께 준다. 이 돈으로 대나무를 사서 엮어 방수포를 덮으면 이들의 셸터(피난처)인 '밤부 하우스'가 완성된다.

로힝야 사람들은 좀 더 튼튼한 자재를 쓰고 싶어한다. 선조 대대로 방글라데시 남부 벵골만 일대에서 살아온 이들은 몬순 기후의 강풍과 폭우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 아툴 므롱 월드비전 로힝야 지원 사업본부장은 "인종청소의 재난을 피해온 로힝야족은 이곳에서 자연재해도 끊임없이 맞닥뜨리고 있다"며 "지난 3월과 7월에도 화재와 홍수로 셸터가 많이 파손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견고한 건축자재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영구 거주가 가능한 집을 지어 로힝야족이 정착하기라도 한다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나무는 습기에 약해 쉽게 썩기 때문에, 홍수로 떠내려가지 않는다 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집을 다시 지어야 한다. 여기에 드는 목돈을 마련하기조차 빠듯한 로힝야 사람들은 불만을 키울 여유가 없다.

그렇게 지어진 임시 주택이 로힝야족 난민캠프를 벌집처럼 채우고 있다. 평균 구성원 수 4.6명인 로힝야족 가족들이 가구당 2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서 지낸다. 난민캠프 1㎢당 거주 인원은 4만여 명. 인구 밀도가 높다는 마카오(1만9,737명), 모나코(1만9,361명), 싱가포르(8,019명), 홍콩(7,126명) 보다 더한 과밀 상태다. 자히다(가명·13)양은 "가끔 미얀마의 강에서 친구들과 놀던 때가 그립다"며 "여기서는 집안에서만 놀아야 한다. 집밖에는 놀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착 막으려 대나무집만…재해까지 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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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시 로힝야 난민캠프가 올해 3월 일어난 화재로 타버린 모습. 대나무로 지어진 셸터는 흔적만 남았다. 월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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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부 하우스는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무국적 로힝야족의 처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피난처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시한은 고작 3개월. 그마저도 잦은 홍수나 산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지 않았을 때 얘기다.

방글라데시가 벵골만의 무인도 바산차르섬에 로힝야족을 재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현지 전문가들은 경악했다. 바산차르섬은 홍수와 태풍에 취약하고 만조 시 섬 자체가 침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 정부는 이미 로힝야족 수만 명을 이주시켰고 이들의 섬 밖으로의 이동을 금지했다. 섬에서 탈출해 콕스바자르로 돌아가려는 난민은 붙잡혀 구금됐다.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족을 공식 난민으로 인정하는 대신 '강제이주된 미얀마인'으로 관리한다. 콕스자바르에 산재한 34개 캠프에 관리 담당 공무원을 1명씩 배치해 유엔 기구 및 비정부기구(NGO)의 로힝야족 지원 활동을 일일이 감시한다. 정부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착할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무국적 로힝야족은 배급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캠프 내 시설 수리 및 마스크 재봉 등의 노동으로 1시간에 50~100타카(약 700~1,400원)를 받는 게 유일한 일거리다. 이들의 급여는 국제구호단체 자금으로 충당되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지원사업 자금에서 수용 공동체 몫으로 30%를 떼 간다.

이렇다 보니 차라리 미얀마로 송환되길 바라는 이들도 있다. 국제사회가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막아준다는 전제에서다. 그러나 올해 초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이 또한 요원해졌다. 파테마(가명·23)씨는 "미얀마가 그립고 돌아가고 싶다"며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주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라고 호소했다.

식민국 분할통치 전략의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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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의 대나무 셸터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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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이 난민살이를 하고 있는 치타공주는 본래 이 민족이 농사 짓고 살던 땅이었다. 로힝야족이 본거지를 잃고 이젠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된 데에는 이 지역을 식민 지배했던 영국의 영향이 컸다.

영국은 19세기 후반 로힝야족을 미얀마 라카인주로 강제이주시키고, 원주민에게서 빼앗은 땅을 경작하도록 했다. 135개 다민족 국가인 미얀마 인구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버마족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은 당시 로힝야족과 카렌족 등 소수민족을 군대 수장이나 정부 관료로 중용했다. 다수민족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장악력을 키우는 식민 지배의 전형적 통치술이다.

1940년 무렵 영국과 일본이 미얀마에서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로힝야족은 다시 한번 총대를 메야 했다. 미얀마 독립영웅으로 추앙받는 아웅산이 일본을 끌어들여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영국은 로힝야족을 앞세워 맞선 것이다. 일본의 통치와 영국의 재점령을 거쳐 미얀마는 결국 독립했지만, 당시 영국 편에서 싸운 로힝야족은 탄압 대상이 됐다.

미얀마 정부는 1982년 시민권법을 제정하면서 로힝야족을 국민에서 제외했다. 영국 간섭 전인 1823년 이전부터 미얀마에 거주했거나 부모가 미얀마 시민인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에서 불법 이주한 무슬림 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른바 '로힝야 카드'를 발급받도록 강요했다. 카드에는 '이 신분증은 미얀마 시민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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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시 난민 캠프에서 로힝야족 파테마(가명)씨가 1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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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무국적자가 된 로힝야족의 토지를 몰수하고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이동은 금지됐고 종교 행사나 교육을 하다가 적발되면 체포, 구타하고 벌금을 부과했다. 병원에 갈 수 없어 집에서 숨지는 로힝야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라카인주 부티다웅시 타미 마을에서 남편과 농사하며 살았던 파테마씨는 "로힝야 카드는 미얀마 국민이 아니라는 증명서"라며 "미얀마에서 나고 자랐지만 우리에겐 이동의 자유도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60여 년간 극심한 탄압이 지속되자 일부 로힝야족은 극단주의 성향의 무장반군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을 조직했다. 이들이 2017년 8월 경찰 초소를 습격하자 미얀마 정부는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선포하고 사실상 인종청소에 착수했다. 파테마씨는 "군인과 경찰이 집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학살, 강간했다"며 "목숨을 구하려 가족들과 도망쳤다"고 밝혔다. 그는 5일을 걸어 국경을 넘었지만 그 과정에서 여동생을 잃었다. 로힝야족 대탈출은 이렇게 시작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로힝야족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고 일컬으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들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쿠데타와 소수민족 간 내전이 반복되는 미얀마로 돌아갔다가는 언제 토벌 대상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국민 다수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품어줄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영상제작= 현유리 PD yulsslu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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