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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쿠데타 군부에 끌려간 수단 총리, 뒤늦게 알려진 나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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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9년 4월 기자회견 중인 압달라 함독 수단 총리. 25일(현지시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붙잡혀 끌려갔다.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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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에 저항하라.”

지난 25일(현지시간) 오전 3시 30분 정체 모를 괴한들이 들이닥치자 압달라 함독(65) 총리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쿠데타를 지지하라는 압력에 응하지 않자 아내와 함께 모처로 끌려간 그의 행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군부를 피해 은신 중인 함독 총리의 한 측근은 이날 익명을 전제로 한 뉴욕타임스(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총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를 데려간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할례 폐지…국방예산 삭감 추진



함독 총리는 2019년 8월 반정부 시위와 군부 쿠데타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가 축출되고 출범한 과도정부 총리로 임명됐다. 당시 군부와 야권은 3년 내 총선을 치러 문민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기로 협정을 맺은 후 공동통치기구인 주권위원회를 구성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했다. 함독 총리가 이끄는 과도정부는 여성의 학업과 복장 등에 관한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법률을 제한하고 여성 할례 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5개 부처의 여성 장관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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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독일을 방문한 압달라 함독 수단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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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문민정부 수립 절차는 순조롭지 않았다. 군부가 사실상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고 최근에도 권력 이양을 포기했다는 징후를 보이면서다. 함독 총리가 취임 직후 전체 국가 예산의 80%에 달하는 국방 예산을 20% 이하로 줄이고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고 한 것도 군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엔 퇴직금에 불만을 품은 정보사 요원들이 무장 봉기했고, 민간과 군부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함독 총리를 겨냥한 암살 시도도 있었다. 지난해 3월 수도 하르툼에서 함독 총리가 탄 차량을 겨냥해 폭발이 발생했지만, 그는 별다른 부상 없이 안전한 곳으로 이송됐다. 그는 이후 트위터에 “우리는 더 나은 내일과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막대한 대가를 지불했다”며 “우리의 혁명은 항상 평화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격으로 혁명은 멈추지 않고 더 열정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도 했다.



독재자 시절 재무장관직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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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지도자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 그는 압달라 함독 총리 등을 구금한 뒤 대국민 연설을 통해 2023년 총선 전까지 국가를 통치하겠다고 선언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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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에도 쿠데타를 직감했다고 한다. 그는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중동 녹색 이니셔티브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주말에 열렸던 주권위원회 회의에서 군부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일정을 취소했다. 총리 측 관계자는 NYT에 “그는 회의가 끝난 뒤 (문민정부 수립과 권력 이양을 위한 노력이) 소용없고, 이 순간(쿠데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경제학자인 함독 총리는 하르툼 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수단 금융경제기획부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1989년 알-바시르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엔 대부분 해외에서 일했다. 2018년 바시르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으로 지명됐지만, 이를 거부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서 경제학자로 일했고, 국제노동기구(ILO)와 민주주의와 선거 지원을 위한 국제협회(IDEA)에도 몸담았다. 2001년부터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ECA)에서 일하면서 사무총장 대행까지 맡았다. “총명하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2019년 바시르 전 대통령을 축출한 주역인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은 이날 새벽 두 번째 쿠데타를 일으켜 함독 총리를 비롯한 과도정부 각료와 주권위원회의 민간인 위원을 체포했다. 이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주권위원회와 과도정부 해산을 선언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쿠데타에 반발하는 민중 시위가 벌어졌고 군부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최소 7명이 숨지고 140여명이 다쳤다고 로이터가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6일(현지시간) 비공개 긴급회의를 열고 쿠데타 관련 공동성명 채택 문제를 논의한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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