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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억할 오늘] 국왕의 로맨스와 친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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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에드워드 8세의 사랑
한국일보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에드워드 8세와 부인 월리스 심슨. Flickr 사진


영국 서식스 공작 부처인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왕실에 삿대질하며 출문한, 이른바 '멕시트(Megxit, 브렉시트에 빗댄 조어) 스캔들'로 여론이 들썩이던 무렵, 영국 언론은 90년 전 원조 로맨스의 주인공 에드워드 8세(1894~1972)와 월리스 심슨(1896~1986)의 이야기를 새삼 들추어냈다.

메건을 두고 왕실의 첫 흑백 혼혈, 이혼 경력 여성이라 소개한 기사와 자료들이 더러 있지만, 웨일스 공 찰스의 부인 커밀라는 예외로 두더라도, 월리스 역시 두 차례 이혼한 뒤 에드워드 8세와 재혼한 여성이었다.

1931년 한 파티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된 둘은 1934년 무렵에는 주변인들이 모두 눈치챌 정도로 관계가 깊어졌다. 국왕 조지 5세의 장남인 에드워드(당시 웨일스 왕자)는 왕위를 이을 왕세자였고, 전직 배우인 심슨은 해운사업가인 두 번째 남편(Ernest Simpson)을 둔 유부녀였다. 1936년 1월 조지 국왕이 숨지고 왕세자는 왕이 됐다.

그해 10월 27일, 월리스가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남편의 외도를 주된 사유로 들었지만 알 만한 이들은 그게 진실의 전부라 믿지 않았다. 영국 왕실도, 내각도 긴장했다. 스탠리 볼드윈 당시 총리는 국왕을 만나 월리스의 이혼을 만류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월리스 없이는 왕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왕위를 동생 앨버트(조지 6세)에게 넘기고, '윈저 공작 전하(HRH)'가 됐다. 그는 왕위 승계 작업 중에 19.77캐럿의 에메랄드 반지로 소송 와중의 월리스에게 청혼했다. 월리스는 이듬해 5월 이혼했고, 둘은 6월 3일 왕가 하객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 직후 부부는 히틀러의 초대로 독일 제3제국을 사실상 국빈 방문, 나치 각료들과 유대를 맺었다. 전후 연합군은 나치 문서에서 일명 '윈저 파일' 즉 에드워드를 다시 영국 국왕에 복귀시키는 계획을 추진한 흔적을 발견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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