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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공수처 1호 ‘손준성 구속영장’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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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구속 필요성 인정 안돼”

조사도 않고 무리한 영장 청구… 망신 자초한 공수처

변협 “규칙과 규율을 무시하고 거듭 영장 청구한 건 기본권 침해”

조선일보

영장심사 출석하는 손준성 검사 - 26일 오전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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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26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이유에 대해 “피의자에 대한 출석 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사실상 공수처가 혐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처럼 손 검사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한 공수처 수사의 동력도 약해지게 됐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공수처는 이번에 출범 이후 처음으로 손 검사를 상대로 1호 체포영장과 1호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두 건 모두 기각당했다.

손 검사에게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한 공수처는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체 수사와 검찰로부터 이첩받은 자료 등을 토대로 구속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내용은 없었고 결국 영장 기각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특히 손 검사 구속영장에서 이 사건 배경을 설명하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채널A 사건을 대검 인권부에서 진상 조사하도록 지시했다”고 하면서도 윤 전 총장과 손 검사의 공모 관계는 적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피의자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영장 기각 사유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의 조사받을 권리를 박탈한 채 섣부르게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공수처는 지난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해 놓고 손 검사 측에게는 영장실질심사 전날(25일) 오후 2시쯤 그 사실을 통보했다. 2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공수처에서는 여운국 차장 등 검사 4명이 나와 프레젠테이션(PPT)으로 자료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손 검사 측은 구두로 방어 논리를 폈다고 한다. 손 검사는 영장 심사에서 “직원들에게 (고발장 작성 등을) 지시한 적도, 고발장을 김웅 당시 후보에게 보낸 기억도 없다”며 “아무리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밑에서 일했어도 윤 전 총장을 위해 일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한변협은 이날 성명을 내고 “규칙과 규율을 무시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이례적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영장을 거듭 청구하는 기본권 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일부 법조인들은 “공수처가 손 검사와 소환 일정을 조율하면서 야당 경선 일정을 이유로 들어 ‘정치 개입’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조만간 손 검사를 다시 불러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과도 출두 일자를 조율 중이다. ‘고발 사주’ 의혹은 조성은씨가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김웅 의원으로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손준성 보냄’이란 자동 생성 문구가 달린 여권 인사 고발장을 전달받았다”는 취지의 폭로를 하면서 불거졌다. 조씨와 여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배후’라는 식의 주장을 펼쳤고 시민단체 고발로 윤 전 총장도 공수처에 입건돼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기각돼도 기각된 게 끝은 아니니까 어찌 됐건 조사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거기에 따라 처분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 검사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황에서 수사가 손 검사를 넘어 윤 전 총장으로까지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성명 불상자’에게 시켜 ‘고발장’을 작성하게 했고, 대검 직원들이 소위 ‘검·언 유착’ 의혹을 MBC에 제보한 지현진씨의 과거 판결문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해 취득한 것도 손 검사 지시에 의한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법조인은 “손 검사 구속영장 내용은 결국 공수처가 ‘고발장’ 작성자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얘기”라며 “판결문을 본 대검 직원들도 손 검사와는 무관하다고 검찰 단계에서 진술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날 영장 심사가 끝난 뒤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손 검사는 밤늦게 풀려나 귀가했다.

[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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