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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이중근 칼럼]군, 닥치고 DNA를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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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선판이 뜨겁다. 여야의 후보들은 대장동 의혹이니 전두환 옹호니 온통 상대방 약점을 들추고 물어뜯기 바쁘다. 미디어들 역시 최악의 선거전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싸움하는 모습만 열심히 전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의 도덕성 검증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곧 닥쳐올 일을 감안해 적임을 뽑는 일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대선을 130여일 앞두고 각 후보의 정책은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다. 너나없이 양동이를 들고 뛰어다니는 화재 현장에서도 누군가는 언덕에서 전체 상황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 국가 경영이다.

경향신문

이중근 논설주간


이런 관점에서 한구석에서 조용히 연기를 피워올리는, 그러나 미구에 집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발화점이 있다. 바로 안보를 책임진 군이다. 이 순간에도 군은 어디서 어떤 지뢰가 터질지 모른다. 군은 당장 핵심 가치인 전략·전술 구사에서 구태의연함을 벗지 못하고 있다. 급변하는 정세에도 오로지 한·미 동맹 강화와 대북 적대관에 묶여 있다. 전방은 물론 해상 경계가 처참하게 뚫리는데도 대안이 없다. 최근 중·러 함정 10척이 합동으로 일본의 쓰가루 해협(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을 지나는 등 근해를 휘젓고 있다. 우리 해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3년 전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우리 함정에 근접 비행했을 때 허둥지둥한 해군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인권과 성평등에서는 퇴행적이기까지 하다. 군 내 성폭력 대응에서 보듯 이 분야에 대한 군 인식이나 발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병사들에게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고, 머리를 간부들처럼 조금 길게 하는 등 외형만 겨우 따라가는 형편이다. 성전환한 고 변희수 하사를 강제전역시켰다가 사후 이 같은 조치가 잘못됐다는 법원의 판결에까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법무부에 의해 제지를 당했지만 명백한 2차 가해이다. 24개국이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 4성장군까지 나오는 인권사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민간조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비효율이 군 내에서는 아직도 버젓이 자행된다. 한마디로 군은 미래를 향한 발전의 속도는커녕 방향조차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보가 오늘날 이 정도나마 지탱하는 것은 사실 군의 능력이나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대북 견제 능력은 북한의 50배에 달하는 경제력에서 나온다. 최근 북한은 공개적으로 주적이 미군과 한국군이 아니라고 했다. 수사에 가깝지만 공식적으로 주적이 아니라고 언급한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북한의 공세에 속지 말자며 한·미 동맹 강화만 외쳐서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군은 그럴 능력은 물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장 답답한 대목은 군이 내부 문제를 자체 해결할 동력도 상실했다는 것이다. 특히 군의 상층부가 책임의식과 방향을 잃었다. 전시가 아닌 때 고급장교들이 하는 일은 진급 경쟁뿐이라고 하는데, 지금 한국군이 딱 그 형국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 것에 모든 정책의 방향을 맞춰놓은 채 관성대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심일 뿐이다. 현역 때는 아무 말 않다가 전역하자마자 비판한다. 뒤늦게 군 집단에서 따돌림당하지 않으려는 자기방어이다. 각군 간 갈등과 치졸한 기싸움에 소문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밖을 향해서는 군 전체를, 또 내부에서는 군별로 견고히 자기 이익을 지키는 게 체질화해 있다.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에서 초동 수사에 실패한 수사 관계자들과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에서 단 한 명을 처벌하지 못한 군을 보면서 시민들은 군의 모순을 더욱 확신했다. 지난 몇달 사이 시민들이 군을 보면서 느낀 불편·불안감은 이해와 인내의 임계점을 넘었다.

이대로 가면 시민의 군대 실현은 요원하다. 외부 충격이 필요하다. 다음 국방부 장관은 무조건 민간인 출신이어야 한다. 최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람이 야당 대선 주자 캠프로 직행해 논란이 일었다. 전직 군 고위직들은 더 이상 통하지도 않는 군 지식을 이용해 정권의 줄을 탈 생각만 하고 있다. 이들 말을 들으면 그 결과는 뻔하다. 지금 군의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DNA를 바꾸는 것이다. 군의 강고한 카르텔을 깨야 한다. 누가 되든 국가 안보를 태울 위험한 불씨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대선 주자들은 오늘도 전직 장성들을 영입해 포토라인에 세우고 예비역 장성들과 간담회나 하고 있다.

이중근 논설주간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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