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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일사일언] 너의 이름을 부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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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사일언 일러스트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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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이름은 부르는 이의 존중과 인정이며, 상호 간 관계의 역학이자 그들이 엮어낸 사연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너에게 나의, 나에게 너의 의미를 확인하고 명시하려는 과정이라고도 하겠다.

“말 위의 백면서생은 뉘 집의 자제이신지, 석 달이 다 되도록 이름조차 몰랐다가 지금에야 비로소 알았네, 김태현인 줄, 가는 눈 긴 눈썹에 남몰래 마음 끌리네.” 연모 상대의 실명을 거론하는 당돌한 여인. 그녀가 불러낸 김태현(1261~1330)은 ‘고려사’에서 단아하고 미목이 그림 같은 미남 학자라고 묘사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문선집인 ‘동국문감’의 편찬자이기도 하다.

과부가 되어 친정에 머물던 화자가 그 집에 드나들던 그윽한 눈매의 선비에게 완전히 반한 모양이다. 하여 석 달을 가슴앓이하다 용기 내어 건넨 짝사랑의 고백은 ‘김, 태, 현.’ 그 어떤 시어보다 이름 석 자에 담긴 망설임과 설렘, 간절함과 연모가 여울진다. 김태현은 국자감시에 장원급제한 이후 그 집에 발길을 끊음으로써 거절을 표명한다. 하지만 그녀가 부른 그 이름 덕에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문학으로 지속되니, ‘네이밍 파워’의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지 싶다.

전해지는 고려시대 여인 묘지명 중 아주 드물게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남긴 이도 있다. “아내의 이름은 염경애로, 사람됨이 영롱하면서 조심스러웠고 자못 문자를 알고 대의(大義)에 밝아 말과 용모, 솜씨와 행실이 남보다 뛰어났다.” 남편은 고려 전기의 문신 최루백(?~1206)이다. 그는 25세에 시집와 23년간 4남 2녀를 낳고 기르며 고생하다 떠난 아내에 대한 애틋함을 묘지에 새기며 다시금 아내를 불러본다. ‘염, 경, 애’라고. 그러곤 “그대를 감히 잊을 수가 없소이다. 아직 함께 무덤에 묻히지 못하니, 심히 사무치고 슬프구나”라고 고백한다.

불렀을 때 꽃이 되는 비밀을, 관심을 기울일 때 유의미해지는 관계를, 자세히 볼 때 발견하는 어여쁨을 알았던 두 사람. 그들을 보며 결심해본다. 지금 당장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리라. 그들처럼, 오래오래.

[이영숙·동양고전학자·'사랑에 밑줄 친 한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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