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이슈 공식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손준성 구속영장 기각…"공수처 전례없는 무리수, 망신 자초"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손준성(47·사법연수원 29기)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구속의 필요성·상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이번 구속영장은 법원이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기각한 지 사흘 만에 청구됐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피의자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첫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서울중앙지법 이세창(53·31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오후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 진행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심문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체포영장이 기각되자마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전례 없는 무리수로 망신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손 검사에 대한 두 차례의 영장 청구가 연이어 기각되면서 여권이 ‘몸통’으로 지목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데에도 일단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수처는 영장 기각 후 “아쉽지만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추후 손준성 검사에 대한 조사와 증거 보강 등을 거쳐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김진욱 공수처장이 26일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송영길 “빨리빨리” 다음날 구속영장…공수처 “기각 아쉽다”



손 검사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일하던 지난해 4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관련 자료 수집을 성명불상의 직원에게 지시하고 ▶MBC ‘검·언유착’ 보도의 제보자 지모씨 실명 판결문을 유출하는 한편 ▶이를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전달해 4·15 총선에 개입하려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공직선거법 위반)를 받는다.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그간 제보자 조성은(33)씨가 제출한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 한 결과를 토대로 손 검사가 고발장의 전달자라고 특정, 그에 대한 소환조사 일정을 조율해 왔다. 실제 조씨와 김웅 의원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화면에 ‘손 준성 보냄’이라는 문구가 남아있다는 게 근거다. 텔레그램은 메시지 전달 기능을 사용할 경우 최초 메시지 생성자 이름이 남는다.

공수처는 지난달 10일 손 검사와 김 의원의 자택·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와 수사관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해 왔다. 압수물 분석을 마칠 무렵인 지난 4일엔 손 검사에게도 “10월 14일 또는 10월 15일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지만, 손 검사는 변호인 선임이 지연되고 있단 이유로 출석 일자를 미뤄왔다. 그러다 지난 11일 “10월 22일엔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공수처에 전달했다.

중앙일보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체포영장 기각 직후 구속영장 청구 전례 없어



그러나 공수처는 이 같은 손 검사의 말을 믿지 않고 지난 20일 전격적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피의자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손 검사는 이튿날인 지난 21일 변호인을 선임했고, 변호인의 사건 파악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11월 2일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공수처 수사3부는 손 검사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선 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해 조속한 출석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정당한 이유 없이 예정된 출석에 불응하면 강제수사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지난 23일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어떠한 형태의 피의자 조사도 없이 신병부터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재청구를 통한 출석 담보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보고, 대신 사전구속영장 청구를 통해 법관 앞에서 양측이 투명하게 소명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처리 방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손 검사 측은 “헌법상 권리인 변호인의 조력을 필요 최소한이라도 받기 위해 소환 시점을 조율한 것”이라며 “피의자의 방어권을 형해화시키고 헌법상 기본권 행사도 완전히 침탈하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변협 “구속영장 청구 남용, 기본권 경시” 비판 성명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도 이날 “체포영장이 기각된 피의자에 대해 이례적으로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공수처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냈다. 변협은 “피의자가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인신(人身)을 구속하는 영장을 거듭 청구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여 우려스럽다”며 “이러한 수사방식이 용납될 경우 체포영장이 기각되면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수사 관행이 자리를 잡게 되어 구속영장 청구가 남용될 소지가 있으며 장기적으로 기본권을 경시하는 문화가 수사기관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공수처가 영장 청구 과정에서 여권의 입김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온다. 조씨가 지난 19일 김 의원과의 통화 녹음파일을 MBC를 통해 공개한 뒤 체포영장을 청구(지난 20일)하고, 지난 2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왜 손준성, 김웅을 빨리빨리 소환해서 수사하지 않느냐”며 “즉각 강제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지난 23일)한 게 서로 무관치 않다는 주장이다. 한 검찰 간부는 “직권남용 피해자도 특정하지 못해 피해 진술도 없는데, 직권남용 피의자를 구속한다는 게 상식적인 수사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