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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과일의 위기... 그럼에도 이 나무를 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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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등으로 위기 맞은 충북 옥천 사과 농가, 오래도록 우리 과실 지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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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농가에서 재배하는 사과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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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여름 사과 아오리, 빨갛고 윤이 나 '제수용'으로 인기 좋은 홍로, 한입에 쏙 '미니사과'로 불리는 루비에스, 단맛과 신맛이 조화로운 '황금사과' 시나노 골드, 저장성이 좋아 봄까지 두고 먹는 부사 등등. 참으로 다양하다. 수입 과일에 밀려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 매력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하루에 사과 한 알을 찾는다.

그런 사과를, 언젠가 한반도에서 재배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날씨는 사과 재배지가 경북에서 강원도까지 북상한 원인. 실제로 강원도 사과 생산량과 재배면적은 2010년 1522톤, 216ha에서 지난해 8215톤, 1124ha까지 증가했다.

그 사이 경북의 사과 생산량과 재배면적은 2010년 29만2707톤, 1만9543ha에서 지난해 27만7942톤, 1만8705ha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오르는 기온과 함께 점점 북상하는 재배지. 이대로면 2100년쯤엔 국산 사과를 먹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건 아열대 과일일 테다(월간옥이네 2020년 9월호 특집 참조).

충북 옥천에 사과 농가가 생겨나기 시작한 건 1980년대쯤. 청성면, 그중에서도 능월지구를 중심으로 200여 농가나 있었지만, 지금은 약 60곳만이 남았다. 고온 현상에 강수량 증가, 잦은 태풍 등 기후변화 최전선에 놓인 농촌. 이런 때에, 사과 농사를 짓는다는 건 어떤 과업일까. 옥천 사과 농민을 만나봤다.

[청성면 도곡리 주재인 농민] "5년 전만 해도 사과 농사 짓길 잘했다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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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 청성면 도곡리 주재인 농민. 수확인 끝난 루비에스 나무 앞에서.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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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능월리 일대가 옥천에선 사과 주산지지. 보은에 사과가 유명하잖아요. 보은하고 여기가 경계잖아. 이쪽 능월 사람들은 보은 사람들이랑 윗논, 아랫논도 붙이곤 하죠. 옥천에서 기후적으로 사과를 지을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요. 해발 200m는 돼야 사과 농사가 잘돼요."

고향 도곡리에서 평생 밭을 일궈온 주재인씨. 홍로 수확으로 바쁘던 시기를 지나, 9월 12일 마지막 출하를 마쳤다. 올해 작황을 묻자, "그전만 못해요. 평년작만 못햐. 냉해를 받아서 과일이 많이 안 달렸어"라고 답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몇 년 전부터 더 심각해졌다. 꽃필 시기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정화(중심에 피는 꽃)가 망가지고, 살아남은 액화(가장자리에 피는 꽃)에는 상품성이 덜한 열매가 맺힌다. 뜨거운 햇볕에 과일이 데는 일소피해도 빈번하다.

"지금 기후변화 때문에 사과뿐 아니라 모든 농사가 잘 안돼요. 사실 우리는 괜찮아. 나 같은 사람들 살아야 몇 년 살겄어?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큰 걱정이야."

사과농사만 5천 평, 주 품종은 부사다. 올봄엔 황금사과도 300주 정도 심어뒀다고. "나 먹을 만큼만" 짓는다는 루비에스, 감홍, 홍옥 등도 몇 줄씩 골고루 심겨 있다. 무엇이 가장 맛있냐면, "사람 입맛 따라 다르다".

"원래 인삼 농사를 30년 했어요. 애들 다 키우고 우리 식구가 몸이 안 좋으니 사과 농사로 바꿨지. 인삼 농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해야 하거든."

"제일 오래된 나무가 13년생"이라며 사과 농사 지은 지는 얼마 안 된다고 말하는 그. 사과는 먹을 줄밖에 몰랐던 처음, 힘든 시기를 겪은 후 그 길로 충북농업마이스터대학을 찾았다. "사과나무는 심어놨는데 아무것도 모르니 어떡해. 공부를 했지."

그렇게 사과마이스터 1기를 수료한 그는 현재 '옥천향수사과영농조합법인' 회장을 맡고 있다. 청성 사과 작목반이 전신인 사과영농조합은 2014년 만들어졌다. 회원은 18명, 한 해 생산량은 800톤 정도다. 설립 이듬해 공용 저온저장고와 작업장을 지었고, 그 옆 사과 직판매장도 오는 11월 완공해 내년부터 운영할 예정. 산지 직송 싱싱한 사과를 제값에 선보일 수 있다. '생산자는 적자, 소비자는 봉'인 지금의 농산물 유통체계를 벗어날 방법일 테다.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체계에선 유통 수수료가 너무 커요. 그러니까 우리는 과일값을 제대로 못받아 적자가 나도, 소비자는 사 먹으려면 비싸지. 정부 차원의 유통 개혁이 필요해요."

40년 넘게 지어온 농사. 심각한 기후변화에, 불안정한 물가까지 그 기반은 점점 흔들리고 있다. 사과 시세가 괜찮았던 5년 전만 해도 농사 잘 지을 걱정만 하면 됐다. 인건비나 농자재비가 계속 오르는 지금은, 작황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남는 게 없다. "사과 1kg당 농민이 받는 값이 평균 2500원은 돼야 하는데 2천 원도 못 되는" 현실. 그가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는 이유로 낮은 소득을 꼽는 배경이다.

"유럽은 농민연금 같은 제도가 있어요. 농사를 20~30년 지은 사람이라면 국가에서 연금을 주는 거야. 우리나라는 그런 제도가 없어요.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하는 거죠."

농민에게 정당한 몫이 주어져야 함을 말한 그는 '자급'의 가치도 함께 이야기했다. 우리 땅에서 난 농산물 없이, 과연 건강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주재인씨의 어깨너머로 펼쳐진 사과나무에 오래도록 빨간 열매가 맺힐 수 있길 기대해본다.

[안내면 오덕리 김형석·이영일 농민] "어렸을 때부터 사과 향이 참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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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 안내면 오덕리 김형석·이영일 농민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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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홍로 수확 중이에요. 거의 다 따고 몇 줄만 남았어요." 9월 6일, 안내면 오덕리 '능금향 농원'에선 수확이 한창이다. 비 오는 궂은 날씨지만 멈출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손은 더 바쁘다.

"비를 맞으면 과피가 얇아져서 꼭지 부분이나 밑 부분이 터지거든요."(이영일씨)
"수분을 빨아당기니까요. 더 크려고 그러는 거죠."(김형석씨)

능월리 근처, 능금향 농원이 자리한 안내면 오덕리 역시 지대가 높다. "옥천에도 사과 재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다 사라지고 이 지역만 좀 남았죠. 원래 옥천읍에도 사과 농원이 있었는데 다 사라졌어요." 고향인 청성면 능월리로 일찍이 귀촌한 후 30년 가까이 사과 농사를 지어왔다는 김형석씨가 옥천에도 사과 농가가 많았던 과거를 회상한다.

"점점 강원도 쪽으로 재배선이 올라가잖아요. 옛날에는 강원도에선 추워서 사과 농사 못 했어요."(김형석씨)

하늘이 도와줘야만 하는 농사일. 극단적으로 변한 날씨는 속을 끓였다. 봄 냉해는 '연례행사'다. 지난해엔 강수 피해가 컸다면 올해는 냉해가 특히 심했다. 삼한사온은 옛말이 된 지 오래. 따뜻하다가도 꽃 필 때 되면 확 추워진다. 몇 년 전부터 유독 심해진 늦봄 추위다.

"점점 기후피해가 심해져요. 비도 많이 오기 시작했죠. 작년에는 거의 해를 못 봤어요."(김형석씨)

봄에는 냉해, 여름에는 더위와 비. 그 피해는 심해지지만 사과 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사과 농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유다.

"냉해 때문에 얼어 죽거나 더워서 다 '삶기는' 것 아닐까 매번 걱정해요. 수확할 때까지 달려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거죠."(이영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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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이영일 농민이 재배 중인 사과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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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이주 노동자의 유입이 끊기며 심해진 인력난은 또 다른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일손 찾는 게 쉽지 않은데 올해는 그 어려움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라고. 인건비도 껑충 오르면서,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

묘목값과 농기계값도 부담이 된다. 이상기후로 죽는 나무가 많아지면서 묘목 지출이 무시 못 할 정도로 늘었다. 농기계 부담은 더 크다. 4년 전쯤 구매한 고소작업차는 편리했지만, 가격대가 무척 높았다. 정부 보조금도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원가가 2천만 원인 농기계가 보조 품목에 들어가면 3천만 원으로 가격이 뛰는 형국이기 때문. 보조금 1천만 원에 자부담 2천만 원, 결국 제 가격인 셈이다.

"농기계 웬만하면 몇천 씩 해요. 트랙터는 1억이 넘죠. 열심히 일해서 돈 좀 모아놨다 하면 기계가 낡아서 교체해야 하고. 그런데 기계 없이는 일손이 부족해서 농사지을 수가 없어요."(김형식씨)

이런 상황 속,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농사를 계속할 수 없기에 부부는 뚝심 있게 일해왔다. 사과밭 8천 평에 벼농사 1만6천 평, 콩밭 1500평까지. 1년 내내 할 일이 빼곡하다. 정해진 휴일도 없이 성실히 일한 배경에는 딸과 아들을 향한 애정도 뒷받침됐다. 딸 셋에 아들 하나, 여느 집보다 더 북적북적하다. 아무래도 마음가짐이 달랐던 이유다. 이제는 다른 지역에 사는 딸들이 농사일을 거들러 종종 찾아온다.

"일에 파묻혀 사는 부모 밑에서도 잘 자라준 4남매가 보람이라면 큰 보람이죠."(이영일씨)

2019년부터는 옥천로컬푸드직매장에도 출하하면서 더 쉴 틈이 없어졌다. 그래도 누군가 능금향 농원의 사과를 찾는다고 하면, 수익보다 '얼른 가져다드려야겠다' 생각부터 드는 것이 부부의 마음. 농원 옆 오두막, 서로를 의지하며 농사지어온 부부가 닮은 미소를 짓는다. 어디선가 사과 향이 물씬 풍겨온다.

[청성면 대안리 김명수 농민] "앞으로 바람은, 농사를 잘 짓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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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 청성면 대안리 김명수 농민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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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붙잡고 해나가는 중이에요." 서울이 고향인 김명수씨는 8년 전 귀농했다. 어렸을 적 동경했던 과수원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키다리 사과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사과밭 1500평 정도를 꾸린다. 현재 홍로와 부사, 황금사과를 재배 중. 올해 초 동해로 홍로가 많이 죽었다.

"올해 처음으로 많이 죽었어요. 한두 나무 죽는 건 자주 있는 일인데, 100주 이상이 한 번에 죽으니 농사일이 또 힘들어지려는구나, 했죠."

이제 홍로는 점점 줄이고, 그 자리에 황금 사과를 더 심을 예정이다. 늘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가 발생하는 농사일. 특히 귀농한 직후에는 더 어려웠다. "처음 1년은 약값도 안 나왔어요. 돈을 벌고 싶은 생각으로 귀농한 건 아니었지만, 오기가 생겼죠."

건설업 현장에서 오래 일했던 그는 마음으로 농촌을 찾았지만, 어느새 불붙은 열정은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지식 밑천을 채우기 위해 충북농업마이스터대학 사과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2019년 졸업까지, 전국 사과 농가를 견학하고 농사 관련 서적도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 이제는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새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예전엔 키 큰 사과나무를 키우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키 낮은 나무를 밀집해서 키우는 추세죠. 우리 키에 맞춰서요." 키 낮은 나무는 사다리나 고소작업차 없이도 손쉽게 사과를 수확할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한 기후피해에 맞설 대책도 고민하고 있다. 첫 번째로 도입한 방법은 바로 꽃을 '얼리는' 것. 4월 꽃 피는 시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미세살수 기계로 물을 뿌려 꽃봉오리를 아예 얼려버린다. 냉해를 피할 묘책이었다.

"바깥 날씨가 영하로 떨어질망정, 얼음 온도는 0도 이하로 안 내려가는 걸 이용하는 거죠."

두 달 전쯤 설치했으니 내년에 효과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사과나무 중간중간에 불을 때는 방법도 있다. "(농진청에서 개발한)'따시따시'라는 제품이 있어요. 이걸 골 따라서 펴 놓으면 주위에는 온도가 덜 떨어지죠. 1도 차이로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거든요." 앞으로 여러 방법을 차차 적용하며 기후피해에 대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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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 농민이 재배 중인 사과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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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고민이 하나 더 있다. '어떤 사과든 15브릭스 이상 나온다' 자부할 만큼 맛에는 자신이 있지만, 색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완숙됐는데도 빨갛지 않으니 시장에서 좋은 가격을 받기 어려웠다.

대신 "번쩍거리고 새빨간 사과"에 더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 이는 '우리나라 사과 가격을 결정짓는다'는 안동 공판장에 내놓았을 때도 체감했던 사실. 색깔과 크기가 우선인 공판장에선 역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 어떻게 맛만큼이나 좋은 색깔을 낼 수 있을까 고민이지만, 착색제를 사용하고 싶진 않다고.

제초제도 쓰지 않지만, 그의 농원은 풀 없이 깔끔하다. 떨어진 사과로 식초를 만들어 제초제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 끝, 4년 전에는 저탄소 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사과가 많이 열려 있는 걸 보면 보람을 느껴요. 하루하루 색깔이 달라지고 커진 걸 보면 기쁘죠. 내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열매가 열렸을 때, 여태까지 공부한 보람을 느끼는 거죠."

옥천로컬푸드직매장에도 사과를 출하하며 뿌듯함을 느껴가는 김명수씨. 10월부터는 황금사과도 직매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착색제 없이 건강한 빨간빛을 뽐내는 사과를 만나볼 수도 있을 테다. "배움은 계속 이어진다"는 그의 열정처럼 빛나는 사과를.

월간옥이네 통권 52호(2021년 10월호)
글·사진 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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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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