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은 1990년 6월 당시 소련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9월 전격 수교했고, 1992년 8월엔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를 통한 화해 분위기 조성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았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긴급 보도했다. [AP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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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외신도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노 전 대통령이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면서 "한국이 독재자에 의한 통치에서 민주적 선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또 그가 군사 쿠데타 공모자에서 한국의 민주화 뒤 1987년 국민이 직접 선출한 첫 한국 대통령이 됐지만, 반역과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불명예스럽게 정치 경력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노 전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와 정치 스타일을 자세히 소개했다. 통신은 "북방 외교 정책 하에 공산주의가 붕괴된 옛 소련, 동유럽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구축했다"고 평했다. 이어 한국은 당시 북한과의 경쟁 관계 때문에 반공산주의 경향이 강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1989년 공산주의 국가인 헝가리와 수교했으며 90년 소련, 92년 중국과 잇따라 수교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 그의 재임 시절 북한과의 관계도 개선됐다고 평했다. 남북은 1990년 사상 첫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고, 1991년엔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면서다.
그러면서도 통신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든 1979년 군사 쿠데타의 핵심 참가자였다"며 "쿠데타와 1980년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군부의 탄압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평했다. 이어 그의 정치 스타일에 대해선 "그는 군 출신임에도 선거 운동 기간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부르며 온건하고 상냥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1987년 12월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했다.
주요 외신은 노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로이터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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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통신은 "고인은 임기 첫해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해 한국을 국제 무대에 널리 알렸고, 그의 재임 기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배로 뛰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부정부패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들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노 전 대통령이 “동서냉전이 종결된 후인 91년 말 북한과의 화해와 불가침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고, 구 공산권인 소련, 중국과 국교를 맺은 인물”로 소개했다.
한·일관계에 있어선 1990년 5월 노 전 대통령의 방일 당시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관련,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痛惜)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힌 내용을 소개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일왕의 말을 평가해 미래지향 관계의 중요성을 주창했다”고 전했다. 당시 방문에선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고도 소개했다.
NHK방송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서울 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끌어 성장하는 한국의 모습을 국제 사회에 어필했다”고 평가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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